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rng Aug 29. 2021

[Thoughts] 루머의 루머의 루머,

발이 없어서 천리를 가는 게 아닐까,

"OO가 모르는 비밀은 없어. 보면 다 알고 있어."
"너 '나의 아저씨'처럼 내 전화기에 뭐 달아놓은 거 아냐?"



상사들이 위와 같이 내게 농담 삼아 건네었다. 사실 난 가십에 그리 크게 관심을 갖고 파해치진 않는다. (물론 재미있다. 알고 싶다. 근데 말해주는 사람은 한정적이다.) 다만, 항상 귀를 열어 놓고 사무실 내에서 흘러 다니는 대화를 놓치지 않는 편이고 - 이는 정말 open space의 폐해이다,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린다. - 신변잡기와 관련된 기억력이 좋으며, 그런 기억력을 바탕으로 퍼즐 맞추기를 잘하는 편이다. 이 덕분에 저런 오해를 받기도 한다.



회사 생활 2년 차에 어렴풋이 알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3년 차쯤 되니 완벽하게 인지했다.



회사에 비밀은 없다. 일단 내 입 밖에서 나가는 순간 그건 전사를 다 돌 수 있다고 봐야 한다.

(단, one hundred percent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다고 믿는 이들은 조금 있다. a little!)


그것을 체득한 순간 난 매사에 조심스러워지지 않을 수 없었다. 난 회사 fundamental에는 크게 중요하진 않지만 일반 직원들은 항상 궁금해 마지않는 HR에서 조직/평가/승진/보상 등 민감한 주제를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히 모두가 가장 궁금해하는 성과급 결정 시즌이 다가오면 알게 모르게 내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난 입이 무거운 편이다. (나 스스로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 나름 정보의 등급을 매기고 그 사람의 접근 권한을 고려하여 말을 할지 말지 결정하여 대화를 진행한다. 물론 그들이 묻는 것의 80% 이상은 내가 모르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때가 많다. (그만큼 말도 안 되는 소문이 많다)




최근 정말 흥미로운 일이 있었다.


회사에서는 비밀리에 어떤 일을 진행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임원급까지만 오픈하고 심지어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팀장한테까지도 함구하며 진행했다. 그리고 현재 여전히 진행 중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서로 루머를 탐닉하기 시작했다. 이유를 찾아내려고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서로 공유하며 심지어 가설을 써가며 퍼즐을 맞추기 시작했다.


같은 회사를 근 11년째 다녔지만 이 정도로 소문이 퍼지지 않는 것은 처음 보았다. 소문이 퍼지지 않았다기보다는 해당 행위의 이유를 직원들이 찾지 못하는 시간이 너무도 길었다. 보통 어떤 일이 발생하면 하루 이틀 내 정답지가 돌아다니기 마련인데 이번만큼은 전혀 그렇지 못하고 서로 가면무도회를 하고 있었다.

다 알고 지시하지만 모른 척 연기하는 사람, 우연히 알게 되어 모르는 척하는 사람, 우연히 알게 된 사람에게 들었지만 모르는 척하는 사람, 퍼즐을 맞추어 어렴풋이 짐작하는 사람, 퍼즐을 이상하게 맞추어 헛소문을 퍼트리는 사람,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고 불투명성에 적개심을 품게 된 사람, 이러든 저러든 관심 없는 사람 등등 정말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했다.


짧은 기간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귀한 시간을 루머의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쏟았다. 그리고 서로서로 누가누가 진실에 가까워져 가는가 경쟁하기 시작했다. 회사 생산성과는 전혀 무관한 전력 질주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상처 받고 누군가는 뿌듯해하고 누군가는 나처럼 고소 짓고 있다.


회사 경영에 있어 transparency의 정답은 없다. apple처럼 비밀을 탐닉하는 조직도 있고, netflix처럼 직원 자율을 철저히 지지하는 곳도 있다. 그 결과도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하지만, 눈에 뻔히 보이는 행위를 하면서 가면무도회를 한다면 과연 서로가 서로를 신뢰할 수 있을까, 원래 그런 거지 하며 고개를 저으며 묵묵히 자신의 일만 해야 되는 것일까,




사내에 협업 툴로 Confluence 시스템 도입할 당시 모두가 보안 위험에 대해 걱정할 때, Digital 조직 수장이 한 말은 당시 내 머릿속에 경종을 울렸다. 그리고 이 말을 되새기며 후배들에게 업무의 목적과 배경을 소상히 말해주려고 항상 노력하고 있다. 설명이 부족하여 납득이 안 되고 이해되지 않는 일에서 어떻게 후배들이 최대의 성과를 내주기를 바랄 수 있을까, 어불성설이다.


그는 말했었다.


"내가 뽑은 직원을 믿지 못하면, 대체 어떻게 믿고 일을 맡깁니까?"








작가의 이전글 [Thoughts] 싱그럽게 사무치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