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rng Sep 16. 2021

[상념] 슬기로운 동기 생활,

판타지와 리얼리티, 그 간극 속에서.

동경해 마지않는 의사, 그리고 서로 목숨을 내놓을 만큼 친한 친구들. 

그리고 그 친구들은 조금씩의 아픔을 각자 가지고 있지만 서로 의지하며 그들 자신의 상처뿐만 아니라 서로의 흉터까지 치유해가는 착한 어른들이다. 

심지어, 극 중에는 그 상처들마저 따스하게 보듬기에 그들이 상처가 있다는 사실조차도 순간순간 망각한다. 


지난 11화에서는 동기들끼리의 끈끈한 우정이 강조되었다. 요즘 내가 부쩍 느끼는 감정을 드라마에서 이렇게 주제로 다루어 주다니 크나큰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너무 힘들어서 병원 밖으로 뛰쳐나간 전공의에게 끝없이 연락하고 펑크 난 당직까지 대신 서주는 동기, 그리고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복귀한 후 자신을 기다려준 동기를 위해 쉬이 당직을 서주는 친구. 그리고 이런 동기 지간은 99s와 오버랩되며 세상에서 둘도 없는 동기 지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학에 처음 입학했을 때, 선배들은 '동기사랑, 나라사랑' 이란 말을 끊임없이 강조하였다. 동기 사이를 소중히 여기고 항상 서로 도와주고 도움받는 그런 참된 사이가 되어야 된다는 당연한 이야기들이었다. 상식적으로 이해는 되지만 과한 주입식에 조금의 거부감이 있었던 나는 막연히 군사정권의 잔재가 아닐까 생각했다. 계급사회인 군대에서 동일 서열은 같은 날 입대한 동기뿐이기에 동기끼리는 의지하고 기댈 수 있어 동기 사랑 '나라' 사랑이란 말이 붙은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동기와 '나라'가 붙어 있는 것도 너무 뜬금없지 않은가, 




내게 있어 동기는 크게 네 부류이다. 고등학교, 대학교 1, 대학교 2, 회사. 


고등학교에서는 기숙사에 살며 3년간 지지고 볶고 산 스무 명의 친구들이 있다. 쾌활하긴 했지만 조금은 아싸 기질이 있었던지라 대학에 오면서 이 친구들과는 자연스레 연락이 뜸해졌다. 술을 못하고 게임도 못하는 내게 술과 게임을 좋아하는 고향 친구들이 조금 낯설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나를 의도적으로 피하거나 (혹은 반대 거나) 하진 않았지만, 무리무리 모여서 노는 곳에 가기에는 난 너무 어울리지 않는 존재 같았다. 그래도 다행인지 단톡방에 초대되어 서로의 경조사를 챙기거나 안부를 가끔 묻기는 한다. 대학에 들어가고 졸업한 뒤 서로 인생의 궤적이 너무 달라져서 만약 서로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생긴다면 기꺼이 도울 수는 있겠다만 일상을 공유하고 공감하기는 어려운 그런 사이가 되었다 (최소한 내게는) 


 처음 입학한 대학에 온전히 2학기를 다니며 반수 아닌 반수를 하였다. 더군다나 학교를 옮길 생각이 크게 없었기에 첫 학교에 매우 열과 성을 다해 친구들을 사귀고 수업도 들었다. 거기서 같은 반에 소속된 70여 명의 친구들 중 지금 연락하는 친구는 극히 소수에 드물다. out of sight, out of mind라고.. 그 친구들과 새내기 시절을 매우 즐겁게 보내고 그 이후에도 종종 만났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그 친구들끼리의 추억이 쌓이기 시작했고 나는 어느새 스트레인저가 되어 있었다. 그들만의 추억 놀이에 나는 함께하기 힘들었고, 그들끼리의 수업 이야기, mt 이야기, 선후배 이야기에 나는 낄 수도 공감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난 계속 함께 하고 싶었지만 하릴없이 멀어져만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히 드문 몇몇의 친구들은 한 번씩 연락하며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고 안부를 묻곤 한다. 거의 대부분 내가 먼저 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들은 조금 낯선 나를 반갑게 맞아 주어 예전 스무 살 핏기 어린 시절의 소소한 추억을 자연스레 되살려 주곤 한다. 


두 번째 대학의 친구들과는 지금 생활 반경이나 인생의 궤적이 가장 가깝다. 아무래도 동일한 교육을 받고, 20대 뜨거운 시절 유사한 고민을 하며 시간을 공유하고 장소를 향유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회사에서도 모두 크게 다르지 않은 중간관리자급의 위치에 있는 데다 키우는 아이들의 연령대도 비슷하여 화젯거리가 늘 넘쳐난다. 업종까지 비슷했으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도 하는데 난 상대적으로 소수 업종, 소수 직무인지라 가끔씩 소외되는 느낌도 있지만 나름 공부를 하며 그들의 대화를 캐치 업하려 노력하고 있다. 이들과는 여전히 한 달에 수 회 이상 만나고 단톡방 등을 통해 수시로 연락한다. 불혹에 다다른 나이지만 여전히 이렇게 연락하고 만나는 게 신기하면서도 대학 친구와는 진솔한 사이를 맺을 수 없다고 한 어린 시절 선배들의 말을 혼자서 속으로 반박하곤 한다. 


마지막으로 회사 동기들은 애초 입사 때의 기대보다 훨씬 더 소중한 존재들이다. 입사 초기에는 함께 놀기 위해 만난 마치 대학 동아리 같은 느낌이었다면 회사 생활 10년이 지나고 절반도 안 남은 동기 지간은 더욱 의지되고 궁금한 게 생기면 언제든 연락하고 도움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로 발전하였다. 그리고 걔 중의 몇몇은 정말 간이고 쓸개고 다 내줘도 아깝지 않은 믿음이 가는 존재가 되었다. 최근 힘든 일을 겪으며 수시로 고민을 나누며 슬픔을 반으로 혹은 반의 반으로 인수분해 해준 친구들이 바로 이 친구들이다. 물론 이들에게 나의 모든 것을 털어놓진 못 했지만 내 고민뿐만 아니라 그들의 고민도 엿들으며 짙게 공감하고 나아갈 방향을 희미하게나마 그려보는 작업은 내게 절망적인 상황을 망각시켜주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귀한 시간들이었다. 직접적인 시도는 거의 해보지 않았지만 상상 이직을 수도 없이 하는 상황 속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다른 회사에는 소중한 동기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나 스스로가 나라를 얼마나 사랑하는진 잘 모르겠다만, 동기들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해 마지않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최소한 지금 내가 살아 숨 쉬는 것도 모두 이들 덕분이기 때문이다. 아마 이들조차 없었다면 칠흑 같은 삶 속에 올곧은 선택들을 내리기 쉽지 않았으리라, 

복숭아 따위로 보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은 자명하다. 

시나브로 사랑하자. 

진심을 다해, 정성을 담아.  

작가의 이전글 [상념] 만남, 그 아릿한 따스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