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와 무소유의 간극,
필기를 잘하는 편이었다, 남자 치고.
필기의 비결은 다른 게 없었다. 남들에 비해 2~3배 투자하는 시간이었다.
수업 시간에는 두서없이 선생님(혹은 교수님)의 말씀을 하나도 빠짐없이 받아 적은 뒤 수업이 끝난 뒤 하나하나 다시 내용을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잘 모르거나 궁금한 사항은 관련 도서나 웹을 찾으며 보충해 나갔다. 그러다 보면 필기는 구색을 갖추고 알록달록 다채로워지기 시작했다.
왜 그리 고생하며 만들어나갔냐면 복습할 때 깔끔한 내용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 가장 컸고 다른 이들이 보여달라고 했을 때 자신 있게 내밀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대학에 갓 들어갔을 때는 이런 나의 필기를 친구들과 관계를 맺는 도구로 활용했다. 미친 듯이 필기해서 깔끔히 정리한 후 친구들에게 복사해주는 것을 낙으로 여기는 홍익인간이었다. 결론적으로 그게 내게 큰 도움이 되었을지는 잘 모르겠다만, 그때는 그게 좋았다. 그랬을 뿐이다.
반면, 회사에 와서는 거의 필기를 하지 않는다.
매년 다이어리를 나누어 주지만 난 그 다이어리를 거의 쓰지 않는다. 회의를 해도 거의 필기를 하지 않고 적당히 머리에 욱여넣기 십상이다. 사실 회사에서의 회의는 같은 내용이 반복되기 일쑤이고, 회의 전에 대부분의 내용이 결정되거나 회의 말미에 윗사람이 정하는 몇 가지로 요약되는 것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혹여나 뭔가 기록할 일이 필요하면 모눈종이에 자유롭게 기재한 뒤 하루 이틀 뒤 파쇄하는 게 일상이다.
어쩌면 회사에서 필기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은 누군가에게 보여줄 일이 딱히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직 필기를 할 만큼 중요한 정보를 다루지 않기 때문일까. 모르겠다. 그냥 회사에서는 다이어리에 아무것도 적고 싶지 않다,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을 뿐이다.
만나면 반드시 헤어진다,
요즘 틈만 나면 책장 정리를 한다.
곧 홀로 될 나의 인생을 조금이라도 가벼이 하기 위한 처절한 몸짓 중 하나, 버리고 버려도 끝없이 버릴게 보인다.
그러던 중 책장 가장 아래 파일철에 고이 모셔둔 위 필기들을 발견했다.
필기에 소히 미쳐있던 대학 초년 시절의 흔적들, 버릴까 말까, 다시금 고민하다 결국 이 글을 적기에 이르렀다.
젊은 날의 풋풋한 초상, 이걸 버린다고 내 지난한 과거가 버려지는 것도 아닐 텐데 괜히 망설여진다.
이렇게 이사할 때가 아니면 다시 볼 일이 없을 텐데 대체 왜 망설이는 걸까, 무엇이 나의 손을 세차게 끌어내리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만 하릴없이 하고 만다.
그리고 결국 난 버리지 못했다,
애틋한 나의 20대의 흔적을.
하지만, 이내 곧 지워낼 30대의 애잔한 흔적은 하염없이 지워내고야 말 것이다, 기필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