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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ng Jan 09. 2022

[상념] warm up,

다행히, 이제야, 

의도적으로 피하며 살았다, 

딱히 회사에서 '나'를 드러내 놓고 살 필요가 없었다.

회사는 친구들과 소꿉놀이하는 곳이 아니라 일하는 곳이고, 

난 '프로'까진 아니어도 '프로'를 흉내 내는 사람이기 때문에 굳이 드러낼 이유도 없었다. 


마음 맞는 입사 동기 소수에게 일상을 공유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 일상조차도 '나'에 대한 건 아니었고 회사 돌아가는 이야기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정도였다. 


학창 시절부터 점심도 잘 안 먹었고, 술도 좋아하지 않았기에 

점심은 늘 혼자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고, 저녁 회식 등 약속은 극혐 했다. 

 








최근 어려움에 처한 내가 살아보고자 나 스스로를 조금씩 열기 시작하면서,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회사 동료들에게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친한 친구들은 한두 번이지, 수시로 힘듦을 토로하고 끊임없이 타들어 가는 마음을 소화하기 위해 이야기를 지속하기 어려웠던 반면, 회사 동료들은 너무 바로 옆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의 상황을 마치 가족의 일처럼 걱정해주었고, 내가 겨우 일어설 수 있도록 부축해주었다. 

그리고 심해의 밑바닥까지 나를 보여주기 시작하자 그들은 당신들의 이야기도 쉬이 해주었다. 

회사를 12년째 다녔지만 몰랐던 당신들의 이야기를 이제사 알게 되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알게 된 것뿐만 아니라 당신들이 얼마나 인간적으로 매력적인 사람들인지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그동안은 '그냥' 옆에서 일하는 동료 정도로만 알았던 이들, 

때때로 나의 일을 동료로서 도와주는 정도의 사람들로 인지했었는데, 

나를 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자 더이상 그 전의 동료로 보이지 않았다. 



회사라는 곳에서 나의 고마운 마음을 그들에게 표현하는 것은 당장 돈을 쓰는 것 밖에 없었다. 

내가 그들의 일을 대신해줄 수도 없고, 내가 그들의 평가자라서 좋은 평가, 승진을 하게 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물론 그래선 안 되겠지만), 

그저 고마운 마음을 담아 맛있는 걸 대접하고, 선을 넘지 않는 수준의 선물을 간간히 해주는 것 밖에 없었다. 그들은 이런 나의 행동에 도리어 과하다며 그만하라고 하지만, 난 이마저도 안 하면 너무 마음이 불편해 견디기 힘들 것 같았다. 

그리고 여전히 더 갚아야 하고, 그러고 싶다. 




어떻게 보면 살아보고자 이용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선생님은 절대 그러지 않을 거라, 입장 바꿔놓으면 나도 똑같이 행동했을 거라고는 했었다만, 

사실 내가 그들만큼 환히 따사로웠을지는 의문이다. 

난 누구보다도 냉정하고 직관적이며 계산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나란 인간은 일반적으로 누군가 어려움을 급히 토로하면 '괜찮냐?'는 말보다는 '이렇게 해야 돼. 그 과정에서 너는 이런 아쉬움이 있었어.'라는 표현이 더 쉽게 나오는 그런 인간이고, 

심지어 '아 이 타이밍에 저 사람에게는 맹목적인 위로를 해야 돼. 그게 저 사람이 원하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계산된 '괜찮아?'라고 하는 치밀함도 때로는 가지고 있었다. 

이런 내가 나의 내적 평화만을 위해, 현 상황을 조금이나마 타개해보기 위해 그들을 고해소로 이용한 것은 아닐까, 그 미안함을 억지로 덜어 내고자 하릴없이 밥을 사고 선물을 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다.라고 명확히 말하지 못하겠다. 

모르겠다. 무의식적으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사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다 끝나가고 있는 줄 알았다

이제 주어진 퀘스트들만 훌훌 털다 떠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나의 혼탁한 마음을 더욱 더럽게 만드는 상황들이 발생하고 있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미약한 선택지를 놓고, 

과연 이게 나의 이 더러운 기분을 정화하는데 도움이 될까, 내가 의도한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까, 

하는 고민을 끊임없이 하며 나 자신을 갉아먹고 있다. 



사실 이 글을 쓰려고 마음먹으며 생각했던 주제는 '내가 마음을 열었더니 그들도 마음을 열었다. 그래서 정말 좋다. 그동안 마음을 열지 못했던 나 스스로가 참 아쉽다. 이제라도 잘하자' 였는데,  쓰다 보니 잡념이 스며들고 망상이 얽혀 엉망이 되고 말았다. 

이 어지러움마저 솔직한 내 감정이겠지, 억지로 꾸며 쓰고 싶진 않다. 

억지로 꾸며, 나를, 나의 어린 아이들을 절망으로 몰아 넣어 놓고는 뉴스 속에서 세상을 다 가진듯 환하게 웃고 있는 그 인간처럼 살고 싶지 않다, 

최소한 이 공간에서만큼은 조금이라도 솔직하고 싶다. 



미칠 듯이 미안하다, 

그리고 사무치게 고맙다. 

그렇다, 

그냥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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