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을 갈망하며,
"야, 그냥 비행기 티켓이나 하나 끊어. 일등석으로."
여행을 가야겠다고 생각한 건 유난히도 뜨거웠던 여름, 지독히도 차디찬 상황에 처한 내게 정말 우연히 친구가 건넨 이 한 마디 때문이었다.
고민이란 걸 별로 할 여유가 없었던 때였기에, 친구의 말을 듣자마자 바로 날짜를 확인하고 티켓팅을 했다.
회사? 돈? 그딴 건 내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당장이라도 다 내팽겨 쳐버리고 떠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지금 상황이 애석할 뿐이었다.
이후 날짜를 몇 번이나 바꾸었다.
회사 따윈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가도, 소심하기 그지없게 공휴일을 중간에 끼워 최대한 휴가를 적게 쓰는 방법으로 날짜를 정했다가, 지리한 그들과의 다툼 속에 도저히 못 참겠다고 빨리 가고파 날짜를 최대한 당겼다가, 오미크론도 심해지는 찰나 정신을 차려보니 그래도 최대한 이곳에서의 잡스러운 일들을 완벽히 처리하고 가야겠단 생각에 결국 어제 다시 바꾸었다.
꽃 피는 봄이 시작될 즈음에 훌훌 떠나려 한다.
비행기 티켓도 확정 지었고, 호텔도 예약했고, 렌터카까지 완료했다.
어느새 10년 전, 온갖 힐난을 들으면서 만들었던 첫 전자여권은 유효기간이 다 되어갔기에,
새로 바뀐 청색 여권으로 반듯이 만들고, ESTA와 국제면허증까지 준비했다.
근데,
여행책자도 마련했고, 유튜브에서 여행 브이로그도 보고, 여행 까페도 들락날락 하지만,
크게 설레지 않는다.
안 가면 죽을 것 같은데, 왜 가나 싶다.
얼마나 좋을까 싶다가도, 가면 뭐하나 싶다.
사람들은 일정을 다 짰냐고 묻는데, 뭘 해야 될지 잘 모르겠다.
식탐이 많아서 맛집을 찾아다녀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모델이 좋아서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현지 공기를 들이키며 현실과 유리됨을 느끼고 싶을 뿐일까,
48일을 어떻게든 버텨내면 결국 비행기를 타게 되는 걸까,
이렇게 된 김에,
별다른 준비 없이 가볼까 생각도 든다,
정처 없이 낯선 공기 속을 걸으며 다른 세상에 있는 나를 그저 느껴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마 그 사이에 또 많은 게 바뀌기도 하겠지,
부디 더 좋았으면 좋겠다,
너무 좋아서 부웅 떠가는 비행기 속에서 희미한 미소를 지었으면 좋겠다,
창에 비친 그 미소는 제발 설레길 빌어본다,
간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