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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ng Jan 29. 2022

[상념] 소고기브로콜리토마토덮밥,

what is your favorite food,

부끄러웠다,

그래서 말을 못 하고 살았었다. 

모든 친구들은 아이 엄마가 도맡아 만들거나, 이모님이 만들어 주시거나, 시판 이유식을 사 먹였다.

남자인 친구나 남편이 직접 매일 만든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주변에 차마 말하지 못했었다.  








첫째 아이는 소고기브로콜리토마토덮밥을 참 좋아했다, 

다른 이유식들에 비해 만들기도 쉬운데 좋아하기까지 해서 못 해도 백번은 넘게 만들어주었지 않을까 싶다. 



재료 준비: 

   - 소고기: 첫째 때는 덩어리 소고기 안심을 사서 내 손으로 직접 다졌다. 잘 들지도 않는 이유식 칼로 질긴 소고기를 다지다 보면 말 그대로 현타가 오곤 했다. 다행히(?) 둘째 때로 넘어가면서는 정육점에서 다져준 소고기를 써도 되는 것으로 재가를 받아 소고기를 다지는 격무는 사라졌다. 

  - 브로콜리: 깨끗이 씻어 가볍게 삶아준 후 곱게 다진다. 많은 야채 중에 브로콜리는 매우 행복감을 주는 채소였다. 삶고 나면 질긴 감이 없이 잘 다져졌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의 이유식은 칼질과 다짐의 연속이었다. 

  - 토마토: 십자가로 칼질을 살짝 내준 뒤 20초간 데친다. 그러고 흐르는 찬물에 식히면서 껍질을 벗기면 껍질이 잘 벗겨진다. 책에는 10초만 데치라고 하는데 10초만 데치면 껍질이 잘 안 벗겨질 때도 있어서 그냥 20초를 데쳤다. 껍질을 벗긴 토마토는 다지고 또 다졌다. 다지는 과정에서 물이 잘 나오기 때문에 도마 밖으로 튀거나 새어나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요리과정: 

  - 이유식용 스텐 냄비에 올리브유를 살짝 두르고 소고기를 볶는다. 소고기를 볶을 때는 절대 중불 이상에 볶으면 안 된다. 스텐 냄비기 때문에 금세 눌어붙기 때문이다. 눌어붙을 것 같으면 잠깐 불을 끄고 겉을 익혀주는 세심함이 필요하다. 

  - 소고기 겉이 뿌옇게 익어나가면 초록 하양의 브로콜리를 함께 넣고 볶는다. 브로콜리를 넣으면 물기가 나오기 때문에 스텐에 눌어붙을 걱정은 조금 내려놔도 된다. 

  - 브로콜리의 숨(?)이 가라앉을 만큼 볶아지면 이제 다진 토마토를 넣는다. 토마토를 넣으면 물이 매우 많이 생기는데 이때 불을 중불로 올려서 5분 이상 저으며 익히다가 마지막 1분 30초 정도는 센 불에 익혀 토마토 물기를 날려 준다. 

  - 뽀얀 쌀밥이 담긴 스텐 식기 위에 소고기브로콜리토마토볶음을 슬며시 얹어 준다. 

  - 덮밥을 비벼서 아이에게 한 입, 한 입 차례차례 먹여 준다. 


  

다른 이유식이나 유아식은 먹는데 한참 걸려서 빨리 먹으란 독촉을 그렇게 많이 했지만, 

보통 토요일 점심에 만들어주는 소고기 브로콜리 토마토 덮밥은 10분도 안 되어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해치웠다. 

너무 잘 먹어서 내가 직접 맛을 보기도 했는데,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간을 하지 않아서 맛이 너무 밍밍하며 토마토 자체의 맛이 많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마도 토마토의 시큼달콤한 맛을 좋아했던 게 아닐까 싶었는데, 예닐곱 살 이후 질려하기 전까지(소금과 설탕의 맛을 보기 전까지) 매우 즐겨했다. 그리고 이것이 이어진 것인지 아님 원래 아이들 입맛이 그러한지 지금은 케첩을 너무너무너무 좋아한다. 






평소에 아침을 해주시는 외할머니가 없는 주말 아침, 

아이들은 어김없이 배고프다며 나를 깨웠다, 아니 나만 깨웠다. 

그럼 간단히 유부초밥, 야채볶음밥, 어묵탕, 누룽지, 계란밥 등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밥을 먹기 시작하는 동안에는 사과, 블루베리, 딸기, 귤 등 최소 세종류 이상의 다양한 과일로 후식을 마련했다.

그러다 보면 그녀는 방에서 그제사 스르륵 눈 비비며 나오곤 했다. 

금요일마다 늦는 이유가, 토요일 아침이 피곤한 이유가 그것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된 이후에도 여전히 토요일 아이들의 아침은 나의 몫이었지만, 분노가 한 스푼 더해질 수밖에 없음은 아이들에게 미안하기 그지없다. 



요즘 육아에 남녀 구분이 없는 것은 잘 알지만, 여기에 구구절절 밝히기 어려운 나의 구체적인 육아 사정을 이제사 알게 된 지인들은 왜 그렇게 살았냐고 반문했다. 




하루 종일 욕먹으며 일하다 들어온 사람에게 그것까지 자연스레 맡긴 그녀의 잘못일까, 

아님 하라는 대로 순순히 한 나의 잘못일까, 


결국 결과가 파멸이었기에 모든 행동에 잘잘못을 따지고 본전을 묻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만약 파국을 맞이하지 않았다면 누구보다도 자랑스러운 아빠였고, 자상한 지아비였겠지,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 다짐하면서도, 

문득 떠오른, 아이가 참 좋아했던 소고기브로콜리토마토덮밥의 추억은 지워내기 쉽지 않다. 


얼른 모든 제반 잡무까지 종료되었으면 한다.

조금은 더 당당해질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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