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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ng Feb 14. 2022

[상념] 돌아가기,

다시 또다시 앱등이로 

지난주 부산에 짧게 다녀왔다.

모두가 내게 빨리 가서 말해야 된다고 했고, 그게 지당히도 맞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늦었지만, 이제서라도 부모님께 고해성사하였다. 


16시 30분에 집을 나서서 새벽 01시 20분 정도에 다시 집에 도착했으니 9시간 정도 걸렸나, 

19시 40분 정도, 집을 떠난 지 3시간 10분 뒤 핸드폰을 보니 배터리가 65% 정도 남아있었다. 

비행기에 있을 때는 비행기 모드로 해둔 채 노래만 들었고, 

배터리가 걱정되어 그 외 이동 시간에도 딱히 만지지 않았다. 

그리고 부산 집에서 짧게나마 충전을 한 뒤 다시 서울로 향했건만, 서울 집에 도착하니 배터리는 30% 대였다. 


9시간, 그리 많이 만지지도 않았는데, -70%,

배터리가 닳는 속도만큼 내 마음의 여유도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결정했다,  바꾸자 





쓰고 있던 갤럭시 노트 10은 2년 반 정도 사용했다. 

그 전에는 아이폰 7을 3년 넘게 사용했었던지라 첫 갤럭시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하지만, 주변 친구들이 나쁘지 않다고 추천하는 걸 보고 선택하였다. 

주변에 당당히 말하지 못 했지만, 사실 당시 내 선택의 가장 큰 이유는 100만 원에 달하는 가격차이 때문이었다. 

그 돈을 아껴서 난 내 핸드폰뿐만 아니라 그녀 어머니의 핸드폰까지 살 수 있었다.


근데, 너의 어머니가 아닌 나의 어머니는 늘 아버지가 2년 쓰고 감가상각이 완료된 핸드폰을 그저 받아 쓰셨다. 

아직까지도 그렇게 사신다. 

그렇다. 




처음 써 본 갤럭시 노트 10은 장단점이 확실했다. 

장점은 통화 녹음 기능과 인증서 관리의 편리함이었다. 

통화 녹음 덕에 지저분한 소송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고, 

비록 그 증거를 직접적으로 쓰진 않았지만 심리적으로 큰 안정감이 있었다. 

그리고 인증서를 한 번만 받으면 앱마다 바꿔가며 인증서를 받지 않아도 되는 것도 큰 편리함 중 하나였다. 

일반적인 이들에 비해 금융 앱을 많이 쓰는 나로서는 매우 큰 장점 중 하나였다. 



하지만, 

장점만큼 단점도 컸다.  

특히, 손이 건조해서인지 지문인증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인식을 못하였다. (무인민원발급기의 지문인식도 매번 몇 분씩이나 고생한다.) 

아이폰 7의 지문인식에 길들여져 있던 나는 이 정도로 인식이 안 될 줄은 몰랐는데, 급한 거래가 있거나 회사 시스템 접속을 위한 OTP 인증 시에도 지문 인증은 오류가 나기 십상이었다. 

아마 하루에 적어도 1분 이상 지문인증 오류에 시간을 허비했다. 

그리고 오타도 너무 많았다. 

그동안 내 손가락이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바꾼 아이폰을 30분 정도 써보니 내 손가락이 문제가 아니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결심을 한 이상,

뽐뿌를 열어 집 근처에서 가까운 소위 성지를 찾았다. 

그 결과 아이폰 13 프로 256기가를 정가의 67% 수준으로 구매하였다. (뿌듯하다) 

덕지덕지 조건들이 붙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렴히 구매했다. 

더불어 워치와 에어팟까지 장만했다. (이건 쿠팡에서) 

순식간에 앱등이가 된 내 모습이 조금 낯설기도 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통화 녹음되고 가벼운 내 노트를 자랑스럽게 까진 아니지만 유용하게 생각해왔었는데 며칠 새 태세 전환이라니..




많은 이유들을 한움큼 앞에서 나열했지만, 

사실, 한 켠에는 더러운 증거들이 켜켜이 쌓여있는 전화기를 이제 그만 쓰고 싶기도 했다. 

다 끝난 것 같지만 끝난 거 같지 않아 전화기 한 켠에 버려둔 너저분한 흔적들,

이제는 마음 편히 지워도 되겠지만, 사람일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단 생각에 선뜻 손이 나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4시간 항상 내 몸과 붙어있는 물건이 그걸 계속 품고 있는단 생각을 하니 그것 또한 역겨웠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비워 보고자 수명이 다해가는 전화기에게 안녕을 고했다.

나의 자유의지로 뭐라도 바꿔 보고자, 그렇게 다시 돌아갔다. 





갓 사회에 발을 내딛었던 시절, 

항상 한 발씩 늦었던 나보다, 먼저 근사한 직장인이 되어 미래를 일구어 나가고 있는 친구가 아이폰 3gs를 물려 주었다. 

생애 첫 스마트폰의 아릿한 추억, 아마 그 신기함과 설레임에 한껏 고무되었던 기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그래, 그 때로 돌아가자, 

마음만이라도, 

조금만이라도, 

힘들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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