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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ng Feb 19. 2022

[상념] 별을 세다,

발악과 망각, 그 간극에서 

북한산 자락을 시작하며,

노래를 흥얼거리고 싶었다. 

비오의 카운팅 스타를 듣고 싶어서, 그걸로 스타트를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유튜브 뮤직을 틀었더니 오묘하게도 추천 노래 가장 위에 카운팅 스타가 있었다. 

역시 미제는 내 마음까지 읽어 준다며 흐뭇해하며 산을 향해 다가갔다.


숨 가쁘게 올라가다 빈지노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Dali, van, picasso 

아픈 추억이 있는 노래가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그렇게 소환되었다.   






Dali, Van, Picasso. Dali, Van, Picasso. Dali, Van, Picasso…
파블로, 당신은 당신이 살던 유럽, 그 지구 반대편에서 젊은 청년이 이런 노래를 만들어 흥얼거린다는 사실을 아시오? 젊은 친구들의 노래를 잘 듣지 않는 나에게 저 구절이 귀에 들어왔던 건 공교롭게도 그대의 흔적을 만나러 갈 무렵의 무더운 여름날이었소. 라디오에서 들려오던 그 낯선 청년의 목소리는 마치 나를 당신에게 인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흔하디 흔한 클리셰 같았소. 그렇게 나는 그 뜨거웠던 한국을 등지고, 머나먼 만리타향, 스페인으로 당신을 만나러 갔었소.
 
 
 파블로, 난 당신이 뱉은 말을 똑똑히 기억하오. “저급한 자는 베끼고, 위대한 자는 훔친다.” 이 말을 되새기며 나는 당신이 그린 “시녀들”을 바로셀로나에서 마침내 만났소.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재창조한 것으로 너무도 유명한 당신의 그 작품을 말이요. 다양한 구도와 인물, 사실주의적으로 그려진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이토록 섬세하게, 그러나 확연히 다르게 재창조해낸 당신의 작품을 보며, 그 어느 누구 하나 당신을 저급한 자로 치부하지 않으리라 확신하게 되었소. 그리고 나 자신이 순간 저급한 적이 없었나 돌아볼 수밖에 없었소. 일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다른 회사들은 어떻게 하는지, 과거에 우리 회사는 어떻게 했었는지 확인하게 되오. 그리고 결정이 어려울 땐 그와 유사한 해답들을 갈구하기 마련이오. 하지만 당신의 말처럼 그대로 답습하면 발전이 없고, 진전이 없으며, 같은 줄 알았지만 도리어 퇴보할 뿐이오. 벨라스케스의 세상과 파블로 당신의 세상이 다르듯, 모든 결정에는 배경이 있고 다름이 있기에 진정한 모방을 위해서는 단순히 베끼는데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 그 평범한 진리를 잊고 살지 않았나 하는 반성을 파블로 당신 덕분에 하게 되었소.
 
 벨라스케스의 작품이 당신의 오마주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당신이 집착하다시피 다양하게 해석한 ‘시녀들’이란 작품에서 나는 마치 비발디의 사계를 듣고 있는 것만 같았소. 당신의 해석은 봄처럼 신선했다가, 여름처럼 청량했다가, 가을처럼 쓸쓸했다가, 겨울처럼 스산하기도 하였소. 그리고 그 다양한 해석 뒤에 당신의 치열한 고민이 있었을 것을 생각하니, 당신이 말한 ‘내 작품은 예술이 아니라 연구의 결과’라고 한 말이 저절로 수긍이 되었소. 치열한 고민과 처절한 반성, 그리고 그것의 반복. 평생을 두고 이렇게 골몰해질 수 있었던 당신이 내심 부러웠고, 나 스스로에게 있어 ‘시녀들’은 무엇일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소. 그리고 나만의 ‘시녀들’을 이처럼 진중하게 고민하고 있었을까. 그 질문을 품은 채 난 당신의 혼이 살아 숨 쉬는 박물관에서 어느 때보다 차분히 나올 수밖에 없었소.
 
 
파블로, 당신이 내게 안겨준 고민을 그득 품은 채 한국으로 돌아와 진행된 수업에서 난 또다시 당신의 놀라운 모습을 만나게 되었소. 그것은 바로 수업 말미에서 만난 당신의 모습이요. 당신의 자화상, 스스로를 그려왔던 바로 그 자화상 말이요. 걔 중에서도 난 당신이 무려 아흔에 그렸다는 그 그림에 양 미간을 찌푸리며 시선을 고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소. 그것으로 당신을 접한 범인들은 말년에 자신의 모습을 왜 이리 우스꽝스럽게 그렸을까 하며 조소를 띠우기도 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이해하기 힘든 설들을 쏟아 내는 평론가 선생들은 당신의 그 모습에 당신의 살아온 삶을 투영하며 알 수 없는 의미를 부여하곤 했소, 늘 그들이 그래 왔듯이 말이요.
 
하지만, 난, 지금의 난, 비록 당신의 그때보다 절반 정도밖에 살지 못했지만, 왠지 당신의 심정이, 감성이, 가냘프며 곧은 심성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소. 그림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는 서로 다른 크기의 동공에서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다르게 바라보고자 했던 그대의 처절한 의지가 돋보이며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소. 소위 경영을 한다는 자로서 세상을 주변의 사람들과 같은 잣대로만 보고 있지는 않을까, 남들의 시선에 침잠되어 나 스스로를 옥죄고 있지는 않을까, 거울을 보며 좌우대칭이 세상의 선 인양 집착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들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단 말이요.
 
굳게 다문 당신의 입술은 어떻소. 난 당신의 그 입술에서 고뇌를 느꼈소, 번민을 느꼈소, 그리고 달관을 배웠소. 회사에서 낮지 않은 위치에 있는 나는 요즘 부하들의 말을 경청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고 있소. 부하의 위치로 있었던 때가 불과 몇 년 전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생각을 듣는 것보다 내 생각을 말하는데 더 치중해 있지 않나 하는 걸 당신의 수평 형태의 다부진 입술을 보고 배우는구려.
 
 
파블로, 당신이 살던 동네도 그렇듯 여기 크고도 작은 한국 땅에도 수많은 유원지가 있고, 그 유원지에는 어김없이 사람들을 그려주는 거리의 미술가들이 있소. 그들이 그림을 그려줄 때 우리네 속 마음은 ‘얼마나 나와 똑같이 그려줄까’ 혹은 ‘얼마나 나를 개성 있게 표현해줄까’가 아니라 ‘얼마나 나를 아름답게 잘 표현해줄까’인 경우가 대부분이요. 그런 고정관념을 타파해준 당신, 파블로, 난 당신을 경외해 마지않소. 예술이라고는 르네상스가 전부였던 내게 당신은 또 다른 드넓은 세상을 알려주었고, 초월한 현실을 인지시켜 주었으며, 진정한 진실을 되물었소. 나의 소박한 이 진심이 하늘의 당신께 전해질까 걱정되지만, 난 걱정하지 않소. 이미 파블로 그대는 내 마음을 환히 비추는 Mr. Sunshine이기 때문이요.
 
파블로 피카소, 그 흩어지지 않을 영혼을 기리며…






내가 사랑했던 그녀를 위해 내가 써 내렸던 그녀의 사랑이었던 그의 졸업 리포트,

아마 그들은 모를 거다. 

저따위 글을 써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번민과 고통이 따르는지.. 

그냥 잔소리 몇 번 하면 써지는 줄 알았겠지, 

심혈을 기울인 저 리포트 때문에 난 빈지노마저 싫어하게 되었고, 

어딜 가나 어디서나 접할 수 있는 피카소만 보면 소스라치게 소름이 돋곤 한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고민 중이다. 

내가 썼던 저 리포트를 제출한 학교에 내용증명을 보내서, 그의 정의롭지 못함을 고발할지 

이미 변호사 선생님이 내용증명은 잘 써주셨고, 보낼지 말지 선택만 하면 되는데

그 선택을 짐짓 미루고 있다. 

내가 내용증명을 보낸다고 달라질 건 없을 거다.

아마 학교 내에서 가십거리 정도로 다뤄지고 말겠지, 

기업 대상 각종 수업으로 부수입을 올리는 학교로서는 고작 이 정도로 크게 일을 만들 생각은 결코 없을 것이다. 

 


난 언제까지 이 고민을 마치게 될까,







어제 오랜만에 자전거를 타고 서강대교를 건넜다.

유난히도 칠흑 같은 강이 가까워 보였다. 

더 가까이 다가갈까 잠깐 생각을 하다가

아이러니하게도 내 망상을 가로막은 건 얼마 전 새로 장만한 아이폰이었다.

내가 물과 가까워지면 내 아이폰은 어떡하나 하는 걱정을 하는 새, 

자전거는 밤섬을 지났고 어느덧 광흥창에 다다랐다. 


문득 무소유가 정답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내내 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거 내가 갖고 싶은 거 내가 해주고 싶은 거 다 하고 가야지 





다시 가야 할 것 같다, 병원에.

이젠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아닌 거 같다, 

아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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