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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ng Feb 10. 2022

[상념] 오르내림,

하면 된다, 산은 오르는 자만이 정복할 수 있다.

허억, 허억, 허어억,



심박수가 어느새 180을 넘나 들고 있다.

이렇게 높은 심박수는 본 적이 없는데 이런 내 마음도 모른 채 진정되지 않고 심장은 나대고 있다.

15년 전 집 앞의 관악산을 상상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힘겹게 올라가는 아부지, 어무니 들을 쉽게 제쳐가며 열심히 뛰어 올라가는 내 모습을 상상했었는데..

현실은 나보다 스무 살은 연배가 많을 것 같은 아부지의 뒤를 겨우겨우 한걸음 한걸은 쫓아갔다.




중턱 즈음 올라가니 망나니처럼 뛰어대던 심장이 조금 진정되기 시작했다.

심박수는 150 무렵으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숨도 조금씩 고르게 되었다.

이게 바로 그 세컨드 윈드야!

라고 속으로 되뇌며 내 몸도 아직 완전히 망가진건 아닌 거 같아 내심 뿌듯해했다.




마침내, 정상에 이르렀다.

처음으로 내딛는 매봉,

산책길 수준이라는 어느 블로거의 호기로운 멘트만 보고 맨몸으로 지축을 박차고 힘차게 올랐건만,

나의 적지 않은 나이와 평소 운동 능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했음을 여실히 느꼈다.

하지만, 그 힘듦을, 시원하게 뻗쳐 있는 서울의 전경이 심심치 않게 달래주었다.

이게 결국 등산의 목적이자 보람이 아닐까 생각하며,




숨 고르기도 잠시 빠르게 뛰어 내려가며,

내가 지나치게 목적지향적인 인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산에 오르는 걸까,

산의 풍경을 즐기고, 좋은 공기를 마시고, 맑은 계곡물을 눈에 담으며, 하늘과 맞닿은 봉우리에서는 광활한 풍광을 내려다보려는 게 아니었던가,

난 그저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올라가서 목적지를 찍고 내려오고 싶은 것일까,

난 운동부도 아닌데 왜 그리 급히 올라가고 내려가야 하는 것일까,

내려오면서 풍경을 눈에 담기보다는 힘겹게 올라오는 사람들을 보며 왠지 모를 우월감 따위를 느끼는 나 자신에게 흠칫 놀라며,

근본적인 질문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항상 남들보다 빠르기를 희망했다.

아마 신체 능력의 부족으로 달리기 빼고는 모든 걸 빨리 하길 즐겨했던 것 같다.

대학에서도 가장 먼저 자신 있게 답안지를 내고 나가는 걸 즐겨했고,

심지어 군대에서 샤워도 거의 제일 빨리 했다.

어릴 때부터 1등을 해야 된다고 세뇌당해서 그랬던 것일까,

내가 부정한 방법으로 남들보다 앞서가려 애쓴다거나 맹목적인 빠름을 지향하는 수준은 아닌 거 같아 크게 고쳐야 될 필요성은 못 느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득 궁금해진다.

왜 빠르게 빠르게 빠름만을 추구할까,




야, 너 대학 가면 친구들이랑 같이 산에도 올라가고 할 건데 혼자 그렇게 다님 안돼



고등학교 시절 가족 여행으로 지리산에 올랐을 때  뒤쳐지는 가족들을 두고 혼자 부지런히 뛰어올라가는 내 모습을 보며 형이 가벼이 충고했다.

형의 충고와는 달리 대학 가서 친구들이랑 같이 산에 올라간 적이 거의 없긴 했지만..

지금처럼 혼자 빠르게 올라가듯 등산을 한다면 누가 나와 함께 다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렇게 오롯이 홀로 올라간 등산은 내게 산의 오르내림이 아닌 다른 번민만 많이 남긴 채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을 하염없이 찾아다니는 시간이 시작되리라,

오르락내리락

오르 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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