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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ng Apr 11. 2022

[일] 자기소개하기,

진부함과 창의성, 그 넓디넓은 간극 속에서, 

KB가 앱이 서비스마다 다 분리되어 있어, 근데 신한은 한데 모아서 성공했단 말이야. 그래서 요즘 KB도 한데 모으려고 준비 중 이래. 오빠는 이런 걸 중점적으로 쓰려고 하고 있어. 



취준생으로 보이는 건장한 청년이 여자 친구로 보이는 어여쁜 소녀와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나누는 담소를 의도치 않게 엿듣게 되었다. 

청년은 자신감이 넘쳤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웅장하게 자랑했다. 

소녀는 그런 청년을 한 껏 우러러보며 맑은 눈망울로 동조했다. 








인사로 부서를 옮기고 나서 한 7~8년 정도 자기소개서 심사를 했다. 

최근 2년은 연차가 차올라서인지 더 이상 맡지 않고 있다.

 

자기소개서 심사는 정말 흙 속의 진주를 찾는 기분으로 늘 임해 왔다. 

사실 정규 교육과정을 밟은 대학생들의 경험이란 게 크게 다르지 않다.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정말 가끔 담담한 문체로 빛이 나는 자소서가 있다. 

재능이다. 

이런 건 아무리 많은 자기소개서 작성 관련 강의나 첨삭을 받는다고 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그 사람의 재능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 

그렇다. 

수많은 보통 사람들은 이들을 이길 수 없다. 

이런 생각에 이르게 되면 어떻게 자기소개서를 써야 할지 감이 오지 않을까,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


아무리 짧은 글이라 할지라도 기승전결을 갖춰야 한다. 기승전결의 네 단락이 어렵다면 서론-본론-결론의 세단락을 갖추어야 한다. 

형식적으로 잘 짜인 글은 같은 내용의 글이라 할지라도 달라 보인다. 

생각보다 이러한 3단 혹은 4단 구성을 놓치는 자기소개서가 많다. 



쉼표를 잘 활용해라.


자기소개서를 보다 보면 비문도 많고 길게 쓰다가 주술 호응이 어긋나는 경우도 많다. 

나름 글짓기를 많이 한 나조차도 그런 실수를 빈번히 하는데 일반적인 대학생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런 비문이나 주술 호응이 어려울 때는 적절히 쉼표를 활용할 줄 아는 스킬이 필요하다. 

물론 난 브런치에서 글을 쓸 때 쉼표를 하나의 '묵음 처리된 단어'로 판단하기에 과하게 쓰는 경향이 있긴 하다만, 보통의 오피셜 한 글에서는 문장이 길어 보이면 중간 즈음 혹은 뜻이 달라지는 구간에 쉼표를 쓴다. 

이렇게 끊어주면 읽는 사람 입장에서 매우 독해가 쉬워진다. 



맞춤법/오타/회사명 실수는 네버 에버.


아무리 잘 쓴 글이라도 오타가 나오는 순간 그 느낌이 확 반감된다. 

더군다나 내가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고 판단되면 오타나 회사명 실수는 절대 절대 안 된다. 

자기 눈에는 안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주변인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 

사소한 띄어쓰기는 좀 틀려도 된다. 심사관도 잘 모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맞춤법이나 오타는 한눈에 딱 들어온다. 

정말 너무 사소해 보이지만 너무 중요하다. 




괜찮은 자소서는 질문을 유발하는 자소서. 


군대 이야기, 엄부자모 아래서 행복한 가정을 등등 이런 식상한 주제는 적지 말자. 

그리고 어 이게 뭐지? 궁금한데? 이런 주제를 적는 게 좋은 자소서이다. 

그렇다고 너무 허황된 주제를 적으란 건 절대 아니다. 

같은 축구 동아리를 했다고 하더라도 단순히 팀워크를 배울 수 있었다로 끝나는 게 아니라 FIFA 게임처럼 각 선수들의 능력치를 수치화하는 작업을 통해 장단점을 짚은 뒤 맞춤형 훈련을 도입하여 교내 대회에서 선전할 수 있었다와 같은 식으로 스토리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자소서를 내가 본다면 면접에서는 능력치를 어떻게 수치화했고 맞춤형 훈련은 어떻게 고안했냐 등으로 질문을 할 것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을 흠모하기에, 잘 쓰인 자소서를 애정 한다. 

심지어 내가 최고점을 주는 자소서의 경우 나중에 면접에서 그 사람이 왔는지 안 왔는지 확인까지 해본다. 

어떤 사람인지 너무 궁금하기 때문이다. 

근데, 보통 다른 회사가더라. 

당연하게도 내 눈에 이쁘면 다른 사람 눈에도 이뻐 보이기 때문이리라.

반대로 부서에 신입이 오면 그 친구 자소서를 꼭 다시 읽어 본다. 

그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글을 통해 알아보기 위해서다. 



영상이 온 세상을 알록달록 꾸미고 있는 세상에서 글의 가치가 예전에 비해 많이 떨어졌지만,

난 여전히 글만큼 그 사람을 잘 나타내는 도구는 없다고 생각한다. 


올해는 자소서를 보겠다고 한 번 말해봐야겠다. 

찰나라도 더 설레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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