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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ng Apr 22. 2022

[상념] 나비처럼,

언제쯤 잘할 수 있을까,

최 과장, 골프는 어떻게 되고 있어?



신입 시절 팀에 처음 배치된 지 30분 만에 참석한 팀 회의에서 팀장님이 말씀하셨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들었지만 또박또박 받아 적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과장님이 나지막이 '적지 마'라고 하셨다.

극비라는 뜻이었다.


전략 부서에 얼떨결에 배치된 신입사원은 마치 대단한 비밀이나 알게 된 것처럼 황급히 다이어리에 적힌 골프라는 글자를 검은 펜으로 죽주욱 그어대며 지웠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잠자코 있었다.


회의가 끝난 뒤에서야 알았다.

M&A 프로젝트를 할 때는 아무도 모르게 피인수회사와 전혀 무관한 것으로 프로젝트명을 짓는단 것을.



어쩌면 골프와의 운명은 그때서부터였는지도 모르겠다.








회원님 나비 같으세요 어쩜 이렇게 살랑살랑 치세요?




처음 만난 지 몇 분도 되지 않은 프로님께서 나를 곤충 따위에 비유하였다.

다른 것도 다 별로였지만 특히 비거리는 심각히 짧았던 내게 이렇게 대놓고 면박을 주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간 다른 프로님들은 다른 것들도 심각하니 비거리는 크게 괘념치 않았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이 프로님과의 만남은 매번 내게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두어 번 레슨을 했을 뿐인데 비거리가 2~30미터씩 늘었을 뿐만 아니라,

비거리가 붙으니 공을 반복적으로 치는 행위가 더 재밌어졌다.



어제 프로님께 메신저가 왔다.


제가 다음 주 화요일까지만 나와서 그 뒤는 새로운 프로님과 하셔야 해요.
일단 레슨 예약해놓은 건 취소해주세요.

또다시 이별,

이 정도면 정말 내게 무언가 있는 걸까?


매일 짧은 시간이지만 내 비루한 몸뚱아리와 의미 없는 몸짓을 주제로 실없는 농담을 던지며 조금씩 나아지는 모습을 확인하는 게 하루의 낙이었는데 순식간에 또 이별이다.









힘이 잔뜩 들어가면 결국 잘 안 맞고 스윙도 엉망이 된다.

힘을 빼고 헤드 무게로 가볍게 돌려줘야 원하는 방향으로 공은 올곧게 나간다.

누구나 아는 진리지만 어렵다, 여전히.


오늘 아침, 문득 생각했다.

힘을 빼야지, 의존적이지 않아야지, 기대지 말아야지,

아무리 상대가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는 이라 할지라도

지나치게 기대어 무언갈 하려고 안달 나지 말고 혼자 생산적인 일을 하며 살아야지,


내 감정의 조심스런 때론 넘나드는 의탁이 당장의 내겐 큰 힘이 될 순 있어도,

결국 영원하지 않을게 너무도 자명하기에,

힘을 빼야겠다,

스르륵 스윽 그렇게,

조금은 가볍게 잡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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