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스트라 내륙 Roc이란 시골에서 일주일을 지내고 내일 크로아티아 남쪽 해안으로 내려간다. 이 아파트를 체크인 이틀전에 예약할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집주인 말로는 세르비아 가족이 1주일동안 예약을 했는데 병이나서 예약이 취소되는 바람에 다시 부킹닷컴에 올렸더니 한 시간도 안돼서 집이 나갔다고 했다. 그 재빠르게 예약한 사람이 누구? 바로 나! 음하하하!
이 동네는 어찌나 작은지 끝에서 끝까지 삼백 미터가 채 되지 않는다. 길도 읍내를 가로지르는 길 딱 하나 밖에 없어 길 이름이 마을 이름과 같다. Roc에 있는 모든 집의 주소는 Roc 1에서 시작하여 Roc 65까지 있는 걸로 봐서 총 60여 가구가 있는듯 하다. 마을 중심에 초등학교가 있고 그 오른쪽에 올드 시티, 왼쪽에 뉴 시티가 있다. 성수기에는 마을 주민 만큼이나 많은 휴양객들이 지내는듯 집집마다 외국 번호판을 단 자동차들이 세워져 있다.
Roc은 산꼭대기에 있는 시골마을이므로 앞을 보면 도시와 빌딩이 아닌 산과 하늘이 보인다.밤에는 덤으로 별과 달도 보인다. 머리를 들어 하늘을 보지 않아도 내 눈앞에 그것들이 펼쳐져 있다.
집주인이 정원사는 되는듯 정원을 아주 잘 가꾸었다.
나는 도착해서 넓은 테라스를 미나와 방만구 씨에게 보여주며 다 부지런한 내 덕에 이렇게 뷰가 좋은 아파트에서 지낼 수 있는 거라며 내 덕에 호강하는줄 알라며 내 수고를 스스로 치켜세웠는데... 순간, 미나가 옆집을 손가락질 하며 나즈막히 말했다.
엄마, 옆집 좀 봐. 옆집은 여기보다 훨씬 더 좋아!
슬쩍 보이는 틈으로 찍었음
어맛! 옆집은 넓은 테라스에 나이스 뷰에 수영장까지... 흠...
종종 수영장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첨벙거리는 소리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수영장 있어봤자 하루에 한 번도 안들어갈 거. 비싸기만 하고... 내가 실속있는 거지 암.
우리는 1주일동안 이 집에서 지내며 밀린 빨래를 하기도 하고, 카드놀이를 하기도 하고, 그릴을 하기도 했다. 저녁이면 셋이서 번갈아가며 좋은 노래를 한 곡씩 선곡해서 들었다. 밤이면 쏟아질 것처럼 빽빽한 별들을 보며 시골로 들어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밀린 빨래를 하기도 하고. 주인이 2층에서 살면서 퍈케잌을 주기도 하고 직접 만든 토마토 소스를 주기도 했다.
카드놀이 해봤자 미나가 늘 이김. 우리 두 양주는 이제 늙어서 머리도 잘 안돌아가는 걸까? 카드놀이를 할때마다 회의가 듦. 방만구는 늘 지면서도 하자고 들이댐.
테라스에 앉아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기도 하고
주인의 허락하에 방울토마토도 따먹었다
이 동네에는 학교 하나, 슈퍼 하나, 우체국 하나, 교회 하나.다행히 식당 하나도 있다. 이 지방 특산품은 트러플이라는 것인데 땅속에서 나는 버섯과 비슷한 식물이다. 한국어로는 서양 송로버섯이라고 하며 캐비어, 푸아그라와 함께 세계3대 진미에 꼽힌단다. 트러플은 땅속깊이 자라기 때문에 훈련을 받은 개를 동원하여 채집할 수 있단다. 어쨌든 트러플의 고장에 온 만큼 식당에선 트러플 요리를 주문해서 맛볼 수 있다.
처음 이 식당에 들어왔을때 메뉴에서 트러플을 보고 방만구 씨는 환호를 했다. 평생 먹어보지 못한 트러플에 이 식당에서 직접 담근 포도주를 마실 수 있다니! 하면서. 늘 로컬식당 염불을 하더니 드디어 소원을 이뤘다. 그리하여 그는 감자전과 고기가 곁들여진 트러플 요리를, 나는 굴라쉬 수프가 올려진 국수를, 미나는 계란후라이, 토마토 그리고 루콜라가 들어간 햄버거를 주문했다. 하나같이 우리가 맛본 요리와는 조합이 다른 요리들이었고 맛이 좋았다.
동네 식당의 바깥모습.
방만구 씨가 주문한, 식당에서 담근 500ml 포도주.
방만구 씨가 주문한 요리. 위에 올려진 감자칩처럼 얇게 저며진 것이 트러플.
방만구 씨는 트러플을 먹을 때 평생 먹어보지못한 에일리언 세상의 음식같은 맛이라고 표현했고, 미나는 오래된 고목나무를 씹는 것 같은 쓴맛이라고 표현했다. 나는 물론 맛보지 않았다. 나는 맛에 대한 호기심이 없어 처음본 것은 웬만하면 안먹는다. 그렇게 관광지 음식 말고 로컬음식 타령을 하던 방만구 씨는 식당에서는 연신 특이하면서도 맛있다고 만족해하더니 집에 와선... 설사를 했다. 그리고 사흘동안 속이 이상하고 초록색 똥을 봤노라고 하소연했다.
처음본 건 먹는게 아니라니깐 그러네.
빨간지붕이 공동묘지 카펠레. 그 뒤로 나있는 길로 우리는 산책을 갔는데 그 길로 다니는 것은 우리말고 개미새끼 한 마리도 없었다.
우리는 집에서 빈둥거리다 시간이 나면 뒷산으로 산책을 갔다. 마을뒤로 아담한 공동묘지가 있는데 그 길을 따라 1,5 km정도 걸으면 절벽이 보이는 산이 하나 나온다. 거기에서 사람들은 절벽타기를 한다는데... 웬 한여름에 절벽타기? 1,5km만 걸어도 땀이 비오듯 쏟아지는 날씨에. 이 35도의 땡볕 더위에 산책하는 사람은 모두 관광객이다. 까맣게 탄 사람도 다 관광객이다. 현지인들은 우리처럼 땡볕에서 돈주고 고생하지 않는다.
이스트라반도의 내륙도시에는 몇백 년이나 된 잘 보존된 올드 시티들이 많다. 대부분은 산꼭대기에 위치한다. 올드 시티들이 Roc에서 멀지않아 우리는 소풍가듯 도시들을 방문하고 로컬음식들을 맛보았다.
동네 Roc의 입구
Roc에서 9km떨어진 이웃동네 Buzet. 동네 중심가에 우물이 있고 그 주변으로 집들이 빙 둘러져있다.
Roc에서 6km 떨어진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도시 Hum. 당나귀 살라미, 트러플 시식하고 가세요!
Hum에 있는 식당겸 기념품 가게.
이웃도시 Groznijn. 예술가의 마을답게 종일 현악기 소리가 들렸다. 근처에 예술학교가 있든지 아니면 음악 세미나가 열리는 모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