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맛없는 구내식당 점심(찰기 없는 굵은 쌀과 여러 종류의 야채를 볶아 소스에 버무린, 비주얼도 맛도 사료에 가까운)을 12시에 꾸역꾸역 먹은 적이 있었다. 그 후 속이 계속 거북하더니 16시가 되자 제대로 허리를 펼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이 찾아왔다. 체한 것이다. 평생 체한 적이 없었는데 나이 40대 후반이 되자 소화기능이 떨어져서 그런지 어쩌다 한 번씩 체한다.
나는 그대로 18시까지 버틸까 하다가 고통이 시시각각으로 커지는 바람에 결국 조퇴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인사과에 가서 체해서 조퇴하고 싶다고 말하려는데...
근데 체하다가 독일말로 뭐지?
독일서 20년을 살면서 나는 체하다를 독일말로 들어본 적도 구사해본 적도 없었다. 그래서 그저 밥 먹고 속이 막혀서 아프다 정도로만 얘기하니 인사과 직원이 알아들었다.
집에 와서 방만구 씨에게 체하다가 독일말로 뭐냐고 물으니까 잘 모르겠단다, 그런 말 없단다. 참고로 그는 독일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독일 국적자이다.
뭐야, 이 성의 없는 답변은?
그래서 내가 오늘 잘못 먹고 꽉 막혔다고 얘기했는데 이런 표현이 이상하지 않냐니까 알아 들었으면 됐네 뭐 이런 투다. 체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체하다란 말이 독일말로 없을 수가 있나. 방만구 씨가 귀찮아서 모르겠다고 말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한국말을 잘 구사하는 친절한 독일 교포에게도 물어본 적이 있었다. 체하는 것이 독일어로 뭐냐고. 그랬더니 그 사람 역시 그런 표현은 독일말로 없는 것 같단다. 그러면서 우리 엄마도 예전에 체하다란 말이 뭔지 자기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런 단어가 없다고 말하자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단다.
이럴 수가 있나? 독일 사람도 분명히 체할 텐데 그런 말이 없다니 그게 말이나 되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독일말에 변비라는 증상도 따로 해당 명사가 없고 동사에서 빌어와 '막힘'(Verstopfung)이라고 표현된다. 막힘은 변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좁은 통로에 내용물이 꽉 들어차서 변통이 되지 않는 상태를 일컫는 동명사로서, 하수구나 변기가 막혔을 때에도 사용하는 단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변비로 고생하고 있는데 고작 그 병명이 허접한 '막힘'이라니...
변과 소화에 대한 단어가 이렇게 구체적이지 않은 걸 보면 독일인들은 대체로 소화가 잘되고 변이 술술 잘 나오는 모양이다. 태음인인 우리 남편은 평생 체한 적이 없고, 통변이 잘되어 똥이 몸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현상에 대해 아주 기이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힘주면 나오지 그게 어떻게 안 나올 수가 있어? 이렇게.
독일 사람들을 한 번 둘러보면 체격 조건이나 성격이 우리 남편과 비슷한 태음인들이 많은 것 같다. 태음인들은 신체조건상 소화기가 발달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체하다라는 낱말이 없는 건가?
나중에 병원에 가면 꼭 의사에게 물어봐야겠다. 체와 변비를 지칭하는 의학용어가 따로 있는지.
이 외에도 독일어에는 화병과 체통, 체면, 효도 같은 단어들도 없다고 들었다. 번역가들은 참 힘들겠다.
PS. 독일에는 변과 소화에 대한 단어가 빈약할 뿐만 아니라 공공 화장실 수도, 화장실 인심도 아주 빈약하다. 손님용 화장실을 갖춘 지하철이 없고, 거리 페스티벌이나 공원에서도 화장실을 찾기가 힘들다. 힘겹게 화장실을 찾아도 화장실 이용료로 1유로를 받는다. 1300원. 심지어 시내에 위치한 식당이나 맥도널드에서 조차도. 밥사먹고 화장실 이용료로 1유로를 따로 내야 하는 억울함 이해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