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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이 May 17. 2020

독일에서 내 첫 구직활동 경험기

소심한 자의 어깨가 펴지기까지


코로나가 한풀 꺾이고 두 달만에 식당이 문을 열었다. KFC에서 세트메뉴를 한 번 먹어보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메뉴를 시키고 먹고 갈 것이라고 했더니 직원이(40대 아랍남자로 보이는) A4 용지를 사등분한 크기의 종이쪽지를 내밀었다. 먹고 갈 손님들은 이 종이에 개인정보를 작성해야 한다는 거였다. 순간 1초 정도 망설였다. 코로나가 여럿 귀찮게 한다며 미간을 찡그리면서도 이왕 식당에서 뭔가를 먹기로 하고 왔으니 적자 적어.


내 이름, 전화번호, 방문 날짜, 방문시간을 적은 쪽지를 직원에게 건네주며 물었다.


"혹시 개인정보 적는 걸 거부하는 손님 없나요?

"저희 가게에서 식사를 하시는 분들은 다 작성해야 합니다."

"그건 알겠는데요, 혹시 손님 중 개인정보 적는 걸 거부해서 따지거나 하는 일 없나요? 개인정보 보호법 때문에 요새 이런 거 민감하게 생각하는 분들 많거든요."

"코로나 때문에 저희 가게에서 식사를 하시는 분들은 다 작성해야 합니다."


아마도 그는 문장의 키워드인 거부란 단어의 뜻을 못 알아들은 게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대답은 명료했고 태도는 매우 당당했다. 최선을 다해 친절하게 답변하려는 것이 느껴졌다. 나라면 손님이 말하는 소릴 못 알아듣는 상황에서 저렇게 당당할 수가 있을까 싶었다. 나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치킨버거 메뉴를 들고 뒤돌아 서면서 내 친구 J를 생각했다.


J정도면 여기서 일할 수 있을텐데...


J는 독일에 온 지 10년 정도 된 친구인데 남편이 대기업에 다녀 안정적으로 살고 있다. 얼마 전 둘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년이 되면서부터 집에만 있기가 심심하여 직장을 가지려고 애썼다. 알음알음 작은 한인업체에 들어가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한 적도 있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맥도널드에 원서를 내볼까 하고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결국 포기했다. 친구는 거기서 일할 엄두가 안 난다고 했다. 독일어로 주문을 받고 직원들과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 일들이 아득하게만 느껴진다는 거였다.


친구는 독일어 중급 2단계를 수료했다. 대부분의 이민자들은 중급 2단계를 수료한 후 취업 세계로 뛰어드니 내 친구는 취업하기에 적절한 독일어 실력을 갖추고 있는 거였다. 내 생각엔 친구가 눈 딱 감고 한 두어 달 눈물 콧물 흘릴 각오를 하고 뛰어든다면 맥도널드에서 일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프랑크푸르트와 같은 대도시에서는 많은 패스트푸드점 서비스직이 독일어가 완벽하지 않은 외국인으로 채워져 있고. 친구가 포기하는 걸 보자 나이 들면 엄두 내는 것도 이렇게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독일에서 취업하기 그 첫 단계를 '엄두내기'라고 생각한다. 물론 석박사를 수료하고 억대 연봉을 받으시는 분들의 취업 세계를 나는 모른다. 나는 그 세계에 속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말하는 것은 특별한  전문적인 기술이 없이 이민 와서 맨땅에 헤딩하시는 분들에 한해서다. '엄두내기'를 잘하는 사람 치고 집에서 노는 사람 없다. 심지어 '엄두내기'를 유난히 잘하는 사람은 감히 자기 실력보다 높은 자리에서 하는 일보다 많은 급료를 받으며 일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므로 취업시장에서 감히 엄두를 내보는 것은 것은 실력만큼이나 중요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독일 생활 초기 나의 엄두내기는 어떠하였는가. 나는 소심해서 엄두를 잘 못 내는 사람 축에 든다. 늘 당하고 난 후에 집에 와서야 후회하는 사람이다. 외국서 살면서 외국말을 유창하게 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그 사람이 그동안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를 막론하고 주눅 들게 만든다. 내가 정말 이렇게까지 소심한 사람이었던가? 하고 자문하기도 한다. 문법에 맞는 말을 하기 위하여 늘 한 박자 늦게 대답하거나, 했던 말을 정정해서 다시 말하거나, 피곤하면 아예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다 보니 독일어 회화가 늘 리가 없었다.


당시 나는 빵집에서 빵을 주문하는 데에도 연습을  해야 했다. 빵 진열장엔 빵이 진열되어있고 그 아래엔 빵 이름이 적혀있다. 보통은 그 이름대로 주문하면 될 일이나 저녁답에 빵집에 가게 되면 종종 내가 사고 싶은 빵의 이름표가 누락된 경우도 있다. 그러면 나의 뇌는 바쁘게 돌아간다.  'Landbrot 아래에서 오른쪽에  있는 저 어두운 색 동그란 빵을 주세요.'라는 말을 문법에 맞게 만들기 위해. 그러다 전치사나 관사를 정확하게 모르는 경우가 생기면 머뭇거리다 결국 동그란 빵 사기를 포기하고 만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내가 주문하는 빵은 먹고 싶지 않더라도 이름표가 달린 Landbrot가 되는 것이다.


못난 것.


이렇게 소심했던 내가 독일 온 지 2년도 안되어 놀랍게도 어떻게 어떻게 한 자리를 비집고 들어가 돈을 벌게 되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돈도 바닥이 보이고, 남편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논문을 쓸 때라 수입이라곤 쥐꼬리다 보니 마냥 놀 수만은 없었다. 잡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어느 금요일 아침 일찍 잡센터를 찾았다.


이삿짐 나를 사람 구함, 사무실 보조 구함, 피자 배달원 모집,  Woolworth 진열대 채울 사람 구함, 학생 텔레마케터 구함, 털실 업체 판매원 구함... 수많은 구인광고 중  내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털실 업체 판매원 구함'이었다.


'매장 관리, 상품 판매할 학생 아르바이트 구합니다. 문의처 : Frau Waberseck Telefon 040-xxxx-xxxx.'


다른 건 할 엄두가 안 났는데 털실 정도는 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Frau Waberseck에게 전화를 했다. 전화통화는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월요일 이력서를 들고 찾아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야구방망이를 들어본적 조차 없는 초짜가 타석에 들어서자마자 안타를 날린 듯 기뻤다.


전화통화를 마치고 기쁜 마음으로 CD 플레이어를 사려고 버스를 타고 전자상가로 가는데 마침 그 털실 업체가 전자상가 바로 옆에 있는 것이었다. 월요일날 다시 올 필요가 있나, 내가 지금 여기 이력서와 함께 있는데. 나는 다시 털실 업체에 전화를 했다. 친절한 Frau Waberseck은 흔쾌히 나를 면접에 초대하였고, 인터뷰는 하는 둥 마는 둥 월요일부터 출근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Frau Waberseck은 사장님으로 후에 내게 말했다. 자신은 점쟁이 기질이 있어 사람을 1분만 보면 합격인지 불합격인지 알 수가 있다고. 때론 문열고 들어오는 순간 합격여부가 결정날 때도 있다고. 그래서 그날의 인터뷰는 제대로 된 인터뷰가 아니라 한국서 살았던 얘기를 주르르 풀어놓는 것에서 끝났다. 나는 소심하긴 하지만 내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치면 신이 나서 지껄이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그날 나는 우리 할머니가 일제 식민지 시절 만주에서 살았던 얘기까지 했다.


그래서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을 했고 그 직장을 6년이나 다녔다. 그런데 후일에 우연히 내가 잡센터에서 봤던 그 구인광고지(아마 구인을 할 때마다 같은 광고지를 쓰는 모양이었음)를 사무실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 꼼꼼히 읽어봤더니 광고지 맨 마지막 줄에 잡센터에선 내가 읽지 않고 지나쳤던 구절이 써져 있었다.


'독일어 상급자에 한함.'


'어머, 독일어 상급자를 구했던 거였어?'


차별법 때문이 독일의 구인광고는 남자, 여자, 국적, 독일인에 한함 등의 문구를 구인광고에 쓰지 못하게 되어있다. 독일어 상급자란 뜻은 때때로 독일인에 한함으로 통하기도 하므로 이 문구를 내가 제대로 읽었다면 나는 절대 그 털실 업체에 지원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출근 후 바닥인 회화실력 때문에 전화기가 울릴 때마다 도망을 다녔다. 혹시나 다른 직원들에게 민폐를 끼치지나 않을까 해서 첫 1년은 지레 힘들게 살았다. 그렇게 6년을 버텼고, 버티는 동안 나의 전화받기 실력은 조금씩 나아졌고 덩달아 자신감도 생겼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날 잡센터에서 독일어 상급자에 한함이란 문구를 못 읽은 것이 내게는 큰 행운이 아니었을까.


요요현상.


다이어트한 후에 몸이 원래 몸무게로 돌아오는 것을 말한다. 우리 몸은 이렇게 살이 찌든 빠지든 원상 복구하려는 경향이 있다. 취업 후 한껏 쪼그라든 나의 간뎅이도 마찬가지였다. 요요의 법칙에 의해 쪼그라진 간뎅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원상 복구되어 퇴사무렵엔 약간의 자신감까지 장착하게 되었다. 나의 직장에서 일했던 직원들은 대부분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받았다. 월급 협상이라는 것은 거의 생각도 못했고 아주 찔끔 사장 마음대로 물가상승 수준에 맞춰 주는 선에서 끝났는데, 나는 시간이 지나자 간뎅이가 점점 커지면서 사장에게 월급을 올려주고 휴가비도 달라는 소리까지 입밖에 내었다. 막무가내로 그랬겠는가, 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랬지.


어쨌든 옛날 옛적 이야기, 얼떨결에 엄두를 내는 바람에 취직까지 한 나의 경험담이다.


아니, 독일말도 안 되는데 다짜고짜 엄두를 내라니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을 위하여 스탭 바이 스탭으로 작은 엄두내기부터 알려드리겠다. 연습을 해야 한다. 일단 오늘 고기전에 가거들랑 계산대 앞에서 크게 말하는 연습을 해라. 마스크까지 썼으니 오죽이나 시기적절한가. 가서 큰 소리로 주문해라.


"다진 쇠고기 500g, 돼지고기 목살 뼈 없는 걸로 500g 주십쇼!"


문법이 좀 틀리더라도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 문법이 맞더라도 작은 소리로 말하는 것보다 효과적이다. 사람들은 문법이 틀려도 다 알아듣는다. 슈퍼마켓에 가거들랑 포장 치즈를 사지 말고 치즈 매대에 가서 큰 소리로 연습해보자.


"고우다 치즈 스위스 것으로 150g 주십쇼!"


이렇게 열심히 연습을 계속한다면 언젠가 새치기하는 사람 앞에서도 이런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새치기하지 마십쇼!"


그리고 이건 방만구 씨가 전수해준 방법인데 내가 생각해봐도 그럴듯하다. 혹시 누군가가 당신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비웃고 지나간다면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고 욕을 해주라. 그 시츄에이션은 순간의 승부이므로 발 빠르게 행동하라. 뜻은 알겠으나 회화도 안되는데 난이도 높은 욕을 어찌 독일말로... 욕은 굳이 독일말로 할 필요가 없다. 한국말로 시원하게 내지르면 된다.


"에라이 평생 엿이나 처먹어라!"


욕이란 것은  애시당초 의사전달의 방편이 아니라 당신의 기분이 엿같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기에.


흠... 얘기를 끝내려고 보니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빵집 얘기를 괜히 적었나... 내가 너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어 2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자괴감이 든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나 같은 못난이가 또 있다면, 제발 좀 빵집에서 맨 위 오른쪽에서 세 번째 어두운 색깔 동그란 빵... 이런 것 좀 머리로 생각해서 문법에 맞는 문장 만들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가리켜라. 집게손가락은 그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다. 알아 먹고 못 알아 먹는 것은 직원의 몫이다. 나는 손님이고.


 옛다 어두운 색깔 동그란 빵!  독일의 빵집 Nur Hier의 광고사진.




PS.

 내가 이 나이 먹도록 이곳저곳에서 살아본 결과 사람의 성격을 두고 소심하다 대범하다, 소극적이다 적극적이다 라고 단정적으로 말할 것은 못된다고 생각한다. 세상 모든 것이 상대적이듯 사람의 성격 역시 상대적이라서. 소심한 사람도 더 소심한 사람과 함께 있으면 대범해지기도 하고, 적극적인 사람도 낯선 상황에 혼자 남겨지게 되면 소극적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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