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살아오면서 꽤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그 수많은 사람 중에서 내 인생에서 기억에 남는 사람을 꼽아보라면 얼추 Top 10안에 들어가는 사람이 바로 바버젝 여사이다. 바버젝 여사는 2000년대 초반 독일에서 내게 첫 직장을 준 사람이다. 사장님이자 유쾌하고 특이한 구석이 있는.
그녀는 독일 남부 자르브뤼켄에서 태어나 결혼하여 함부르크 인근으로 이사를 왔다. 함부르크 근처 엘베강 남단, 사과밭과 양들이 많은 Jork이라는 시골에 정착하여 자식을 낳고 살았다. 남편과 이혼하고 먹고살려고 사업을 하려고 보니 배운 것도 없고 경력도 없어 동네 들판으로 나가서 양털을 주웠다. 그 주운 양털을 욕조에 넣어 빨아 바싹 마르면 손수 물레로 털실을 자아 팔았다.
Jork, 엘베강가의 양 떼들
바버젝 여사가 썼던 것과 같은 물레. 내게 실잣는 법을 알려주었는데 해보니 실이 자꾸 끊어졌다. 바버젝 여사는 전문가 급으로 실을 잣는다.
사업이 잘되자 손뜨개할 사람을 고용하여 시장에서 목도리를 떠서 팔았는데 털실이 워낙 굵다 보니 1시간 정도면 목도리 하나를 완성할 수 있었다. 그렇게 뜬 목도리는 겨울철이면 불티나게 팔렸다.
몇 년 시장에서 털실 팔아 모은 돈으로 회사를 설립하여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그 사업은 대박이 났다. 일반 손뜨개 샵에서 파는 동그랗게 감겨진 털실이 아니라 여러 종류와 색깔의 얇은 털실을 구비해놓고 손님이 원하는 색깔을 믹스해서 원하는 굵기에 맞춰 기계로 감아주는 사업이었다. 얼마나 다양한 색깔을 갖추고 있었냐면 우리 매장에는 빨간색으로 100% 메리노 털실만 10가지가 넘었다. 와인 레드, 크림슨 레드, 차이니즈 레드, 라이트 레드, 상그리아, 마젠타, 퍼플, 스칼렛... 메리노 아크릴 혼방사, 메리노 면 혼방사, 메리노 실크 혼방사 등도 각 색깔별로 여러 가지가 있었으니 선택의 폭이 얼마나 넓었겠는가. 100평이 넘는 매장 내 털실 감는 기계 8대를 두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팔았는데 공장에서 감겨져 나온 털실보다 가격도 훨씬 쌌고 종류도 엄청나게 많았으므로 손뜨개 애호가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사업체가 성장해나갔다.
100% 메리노 털실, 50g에 당시 1500원 정도.
바버젝 여사는 오전에는 청구서를 쓰고 오후에는 주로 전화통을 붙들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다. 회전의자에 앉아 다리는 책상 위에 올려놓고 그 크고 호탕한 목소리로. 큰 목소리로 자지러지게 웃을 땐 그 목소리가 사무실에서 매장까지 들려서 직원들도 덩달아 웃었다. 보고 있으면 나까지 기분 좋아지는 유쾌한 사람이었다.
한 번은 내가 출근 전에 백화점에 문구를 사려고 들렸다가 한 개 주인에게 욕을 얻어먹은 적이 있었다. 개가 워낙에 작아 바닥에서 졸졸 돌아다니는 것을 보지 못하고 내가 개를 밟은 것이 있었다. 개 주인은 깽깽거리는 개를 가슴에 품고는 미안하다고 주억거리는 나를 한껏 째려보며 소리쳤다.
“Wozu hat man die Augen?“
눈은 뭐하러 달고 다닌 담?
나는 머뭇머뭇 대꾸도 못하고 그냥 서있었다. 출근해서도 그 말에 대꾸 한마디 못한 내가 너무 바보 같아 기분이 내내 안 좋았다. 그래서 바버젝 여사에게로 가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얘기해주었더니 여사는 내게 이런 대답을 해주었다.
„In dem Fall hättest du so sagen sollen. Soll ich mich die Treppe runter schmeißen?“
그럴 땐 이렇게 말했어야지. 그럼 저를 계단으로 패대기칠까요?
이 얘기를 듣고 나는 배를 잡고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그 이후로 나는 기분이 좋아져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계속 일할 수 있었다. 바버젝 여사는 이런 사람이었다. 어떤 상황도 웃음으로 마무리할 줄 아는.
한 번은 바버젝 여사가 고소를 당한 적이 있었다. 우리 매장으로 들어오는 길은 일반 손님 출입구가 있고 물건을 싣고 올라오는, 창고와 연결된 철물구조의 평평한 계단이 있었다. 아래의 사진 참조.
그 날 그 손님이 왜 손님용 출입구를 이용하지 않고 철물구조의 계단을 이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손님이 걸어오다 하이힐이 철물 사이에 끼어서 자빠진 것이다. 그 일이 있은 직후에는 괜찮다며 그냥 돌아갔는데 돌아간 지 몇 주후 변호사로부터 매장 측의 부주의로 고객이 다쳤으니 위자료를 지불하라는 편지가 한 통 날아온 것이었다. 화가날법한 상황인데도 바버젝 여사는 심심할 때면 매장으로 나와서 그 손님이 계단을 올라오다 자빠지는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흉내냈다. 뒤꿈치를 들고 엉덩이를 한껏 흔들며 오다가 꽈당! 얼굴표정도 우습게 일그러뜨리며 꽈당! 그 모습을 본 직원들은 모두 배꼽을 잡았고, 우리는 사장이 송사에 휘말렸으니 어쩌나 하는 생각보다는 맞아, 그때 그 손님 정말 우스웠어하면서 웃었다.
재판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그 일이 있은 직후 철물구조의 계단에 경고문을 붙였다.
하이힐 신고 올라오다 꽈당했을 시 책임안짐, 재판도 걸지 마시오!(농담)
10월이 되면 본격적인 손뜨개 시즌이 시작되고 우리는 옥토버 페스트를 준비했다. 옥토버 페스트는 원래 뮌헨의 맥주파티가 아니라 추수감사절과 같은 수확을 기뻐하는 페스티벌이다. 통상적으로 우리는 옥토버 페스티벌을 한 달 이상 준비한다. 유인물을 만들어 고정고객들에게 뿌리고, 각종 호박이나 양 인형으로 매장을 예쁘게 꾸미고, 무엇보다 엄청난 양의 털실을 확보한다. 기획상품 용으로. 악기를 연주할 음악가를 모시기도 하고, 기계로 10분 만에 목도리를 짜는 분을 섭외하여 털실을 구입하는 분들에 한하여 원한다면 무료로 목도리를 짜주기도 한다. 그리고 옥토버 페스트의 하이라이트 소시지 파티를 위하여 남부 독일에서 바버젝 여사의 부모님, 삼촌, 숙모가 도와주기 위해 함부르크로 온다. 그들이 오면 하루 종일 소시지를 굽고 음료수를 대접하고 손님들과 떠들썩하게 웃고 마신다. 직원들은 손님 맞이에 분주하고 금고에는 돈이 쌓여간다. 옥토버 페스트는 우리 털실가게의 최대 행사였다.
그때 즈음이면 세상을 돌아다니며 히피처럼 살던 바버젝 여사의 둘째 딸 티나도 엄마를 도와주기 위해 함부르크에 온다. 티나는 귀 뚫은 구멍에다 몽당연필을 꽂아 다녔다. 나는 그걸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린데 티나는 그런 내게 구멍에서 몽당연필을 빼 보이며, '이것 봐 구멍을 이렇게 넓혔어. 원래 총으로 작은 구멍을 뚫었는데 내가 연필로 쑤셔 구멍을 넓힌거야 하핫!' 하며 덜렁거리는 귓불을 보여줬다. 나는 진저리를 치면서도 신기한 마음에 그 구멍에 새끼손가락을 넣어본 적이 있었다. 티나는 자기가 중앙아시아나 동유럽 어딘가를 떠돌며 사다모은 알파카 목도리나 숄 같은 것을 매장에 진열해놓고 팔기도 했다. 그녀는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초봄이 되면 다시 히피가 되어 길을 나섰다. 이런 티나에 대해선 내가 따로 쓴 적이 있다.
티나에겐 언니가 하나 있었는데 언니는 독일 남부 룩셈부르크 근처의 트리어라는 도시(고대 서로마 제국의 수도)의 대학에서 공부를 했었다. 얘가 어느 여름에 엄마가 있는 함부르크에 와서 나이트엘 갔다가 원나잇을 잘못하는 바람에 애를 배게 된 것이었다. 내가 만일 처녀의 몸으로 애를 뱄다면 우리 엄마가 여기저기 주저리 떠들고 다녔을까 싶지만 바버젝 여사는 그런 건 아랑곳하지 않고 전 직원에게 자기가 곧 할머니가 됨을 밝혔다.
"남자가 은행원이라니까 돈벌이도 괜찮겠고, 애도 생겼겠다, 결혼하면 좀 좋아? 결혼을 안 하고 애를 혼자 낳아서 키우겠대 세상에..."
직원뿐만 아니라 손님들한테도 그 소식을 알려서 딸의 출산일이 임박하자 사무실에 유모차며 아기 옷이며 아기바구니며 하는 물건들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모두 단골손님들한테 얻은 물건들이었다. 그리고 아기가 태어나자 바버젝 여사는 용한 점쟁이한테 가서 아기의 전생을 받아왔다. 흰색 A4용지에 2장이나 프린트된 아기의 전생을 읽어보니 아기는 전생에 영국인 수학자 머시기라고 17세기인가에 살았던 인물이라고 했다. 바버젝 여사는 자기의 손녀가 수학자였다는 사실에 아주 흡족해하는 듯했다. 이런 황당한...
우리 바버젝 여사한텐 이런 점쟁이 기질이 있었다. 그녀는 점을 자주 보러 다녔다. 나를 뽑을 때도 면접을 보지 않고 관상을 보고 뽑았다고 했다. 문 열고 들어오는 걸 보고 이력서 볼 필요도 없이 쟤는 뽑혔다, 하고선 면접 때 물어보는 통상적인 것들은 안 물어보고 수다만 떨었었다. 뽑아줘서 고맙다만 그렇게 대충 뽑아놓는 바람에 내가 처음에 얼마나 고생했는데... 하여튼 엉뚱한 바버젝 여사.
나는 살아오면서 이따금씩 바버젝 여사를 생각했다. 그녀는 지금 어디 있을까? 뭘 하고 살고 있을까? 소문으로는 사업체를 팔고 스페인인가 남쪽나라 어딘가에 이주해서 바닷가에서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했는데... 어제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인터넷에 그녀의 이름을 쳐봤더니 페이스 북이 떴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인데 별로 변하지 않은 듯했다. 세월이 꽤 흘렀는데도 얼굴도 예전 그대로고 살도 찌지 않았고. 사진으로만 만났는데도 나는 얼마나 반가웠던지, 사진을 보자마자 내 얼굴에 미소가 생겼다. 혹시라도 중부 유럽에 살고 있다면 당장이라도 연락해서 정다운 저녁 한 끼 같이 하며 딸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손녀는 잘 크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페이스 북에 들어가서 친구를 신청하려고 이리저리 찾아보았으나 이상하게도 거기에는 친구를 신청할 수 있는 기능이 없었다. 내가 페이스북에 서투르다 보니 그런 건가? 싶어서 여기저기 살펴봤다. 페이스북 좌측에는 회원의 프로필이 있다. 나의 경우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거주라고 나와있는데 바버젝 여사의 페이스북에는 라스 팔마스에 거주했음이라고 과거형으로 나와있었다. 라스 팔마스라고 카나리아 제도에 속해있는 섬이 있다. 서아프리카 옆 스페인령이다. 소문대로 스페인의 섬으로 이사 간 것이 맞았다. 나는 바버젝 여사가 라스 팔마스에서 거주했다가 다른 어디론가 이사를 갔다고 생각했다. 친구를 신청할 수 없는 것이 좀 이상하긴 했지만 나는 바버젝 여사의 페이스 북을 찾은 것이 너무 기뻐서 급하게 메시지 보내기를 클릭했다. 그리고 내 안부를 적어서 보냈다.
안녕하세요 바버젝 여사,
저 은지예요. 생각나요? 우리 함부르크에 있을 때 같이 일했었죠.
이렇게 쓰고 나서 엔터키를 눌렀다. 그리고 계속해서 쓰기 시작했다.
너무 오랜만이죠? 뭐하고 지내세요? 저는 프랑크푸르트로 이사 왔는데요, 그새 아이를 하나 낳아서 엄마가 되었습니다. 애가 벌써 중등학교에 들어갔어요. 마쿠스는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일하다 그만두고 이직을 준비중이에요. 그동안 일이 좀 많았어요.
반가운 마음에 주저리주저리 글을 쓰다 보니 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두 번째 메시지는 일단 지우고... 그녀의 페이스북을 다시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것저것 누르다 보니 아래의 글이 떠있었다.
회원님과 바버젝 여사는 페이스북에서 연결되어있지 않습니다.
뭐지? 꼭 연결이 돼야하나? 모르는 사람끼린 연결이 안되는건가? 아니지... 예전에 타게스차이퉁에 기사가 난 사람한테 친구 신청한 적이 있었는데 그땐 저런 메시지가 뜨질 않았는데... 여사가 페이스 북 사용을 일시 중단했나? 이러 생각들이 머릿속에 맴돌고 있을 때 페이스 북 맨 상단에 써져있는 글씨가 보였다.
바버젝 님의 삶을 추모하고 위안을 찾으시길 바랍니다.
뭐야? 아직 일흔도 안됐을 텐데 벌써 고인이 되었단 말인가? 도대체 왜? 병으로? 사고로? 가장 최근 올린 글을 보니 벌써 2년 전이다. 그때만 해도 이렇게나 건강해 보이는데 2년 만에 고인이 되다니. 나는 너무 놀랐다. 순간 반가웠던 그녀의 프로필 사진이 다르게 보였다. 빛을 잃고 죽은 사람의 사진처럼 아련하게 보였다. 한 때 나와 알고 지냈지만 지금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보는 기분이 참 야릇했다.
내가 죽으면 페이스 북을 어떻게 해야 할까 싶어 이것저것 클릭하다가 페이스북 회원의 사망이 확인되면 계정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 회원의 사망이 확인되면 계정이 기념 계정으로 전환된다.
* 프로필에서 고인의 이름 옆에 고인을 추모하며 라는 문구가 표시된다.
* 고인이 올린 사진과 게시물은 페이스북에 공개, 유지된다. 하지만 친구 추천 기능이나 생일 알림 표시는 뜨지 않는다.
* 기념 계정 관리자가 없는 기념 계정에는 아무도 로그인할 수 없다.
* 기념 계정 관리자는 회원이 계정을 관리하도록 선택한 사람이며 회원을 대신하여 페이스북을 관리한다.
* 회원이 원할 경우 사망 후 계정이 영구적으로 삭제되도록 선택할 수가 있다. 삭제를 선택하면 모든 게시물이 영구 삭제된다.
나는 페이스 북 활동을 거의 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그렇더라도 죽음을 앞두게 되면 내 계정을 닫을 것이다. 내가 죽고나서 누군가가 내 페이스 북에 들어와서 사진들을 보고 퍼가고 내가 읽지도 못할 메시지를 남기는 것이 못마땅하기 때문이다. 나는 죽음을 앞두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상으로 남기는 것 없이 모든 것을 깨끗하게 정리해놓고 죽고싶다.
내 페이스 북은 그렇게 정리하고 싶단 말이고, 이와 별도로 여사의 페이스 북이 영구히 사라지기 전에 그녀의 사진을 퍼다가 어디엔가 저장해놓고 싶었다. 한때 6년이나 함께 일했던 정다운 사람이었으니... 그런데 고인의 저작물을 동의도 없이 퍼가려니 그것도 좀 마음에 걸리는 일이고, 동의를 얻자니 누구한테 얻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녀의 사진을 퍼다가 내 블로그에 올리겠다고 했다면 살아생전 바버젝 여사께서는 흔쾌히 그러라고 했겠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으니... 아쉽지만 그녀의 사진은 그런 연유로 여기 올리지 않는다.
바버젝 여사의 프로필 사진을 보니 그녀는 어느 바닷가 바위 위에 빨간색 윗도리를 걸치고 앉아있었다. 손에 카드를 들고 있는 것을 보니 인생 말년에 타로카드를 했던 것 같다. 정다운 얼굴, 이제는 볼 수 없는 얼굴. 오늘은 그녀를 위해 촛불을 밝혀야겠다. 조금 늦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