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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이 Sep 23. 2020

덕질이 정신건강에 좋은 이유

조지 마이클 한 번 좋아해 보셔. 효과있어, 내가 보장해!

며칠 전  운전하며 들판길을 달려 가는데 라디오에서 Do they know it's christmas가 나왔다. 이 곡은 80년대  내노라하는 영국출신의 뮤지션들이 총 출동하여 부른 노래로 영국판 We are the world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성탄절  무렵이라 라디오에서 종종 틀어주는 모양이다. 조지 마이클은 이 곡에서 독창으로는 폴 영, 보이 조지 다음으로 명성에 걸맞지 않게  아주 미미하게 서너 마디 정도를 부른다.


그의 목소리를 들었을때 갑자기 가슴속에서 형용할 수 없는 뭉클한 무언가가 피어올랐다.


흡사  이삿짐 정리하다 오래전에 죽은 오라비의 사진을 우연히 본듯한... 글쎄 오라비가 아직 죽질 않아 그런 느낌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비슷할  것 같은 깊은 그리움이 몰려들었다. (사실 나보다 두 살이 많은 살아있는 내 오라비는 조지 마이클에 비해 내 인생에 끼친 영향이 미미하다.) 안그래도  동지무렵이라 오후 3시반이면 어둑신해지는데 비까지 내려 스산하기 그지 없었던 그날, 나의 뇌는 다시금 그간 잊고 살았던 조지  마이클을 소환했다.


조지 마이클!


그를 빼고는 내 청춘을 얘기할 수가 없다. 나는 언니와 함께 썼던 공붓방 벽에 온통 조지 마이클 사진으로 도배를 하고, 동네방네 티를 내면서 조지 마이클을 요란하게도 좋아했었다. 조지 마이클의 기사가 실린 잡지가 나오거나 앨범이 발매되면 불이나케 달려가 그것들을 샀다. 나는 그의 노래들을 한국말로 소리나는 대로 적어서 따라부르는 수준이 아니라 TV가이드에 적힌 가사들을 일일이 해석하고 영어가사를 읽고 따라불렀다. 그러므로 당시 나는 고딩이 알아야할 핵심 영어단어 숙어 이외의 표현들도 좀 알고 있었던 편이었다.


예전에 길을 가다 고등학교 동창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 애가 오랜만에 만난 나에게 이런 반응을 보였었다.


'아 너, 그 조지 마이클 좋아하던 애!'


고등학교 친구들사이에서도 내 말이 나오면,


'그 왜 소영이 옆에 옆에 앉은 애 있잖아. 커트 머리에 등빨 좀 있고. 야간자습때 한영지랑 하이틴 로맨스 빌려보던 애. 그래도 누군지 모르겠어? 그왜 조지 마이클 좋아한다고 티내고 다니던 애 있잖아. 걔가 독일 남자랑 결혼했대 글쎄.'


성적, 외모 무엇하나 튀지 않았던 학창시절 나의 아이덴티티는 내 이름 석 자보다 조지 마이클 좋아하던 애로 정의됐던 모양이다. 이렇게 남자친구 하나 없이 보냈던 내 틴에이저 시절에 그는 멋진 남자친구로서 내 귓가에서 언제나 노래불러줬다. 그것 뿐인가. 응답하라 1994의 성시원처럼 나 역시 조지 마이클로 인하여 연예계로 발을 디디게 되었고, 그쪽 업계에서 일하는 내내 어쩌면  조지 마이클이 내한해서 기자회견이라도 하지나 않을까 늘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살았다. 당시 나는 본 조비, 브라이언 아담스, 데프레퍼드, 딥퍼플, 산타나, 메탈리카 등의 내한공연에 스탭이라는 명찰을 달고 입장할 수 있었지만 끝끝내 조지 마이클의 공연은 보지 못했다.


평생 조지 마이클 실물을 보진 못했지만 조지 마이클과 굳이 비슷한 점을 찾자면 머리카락 색깔 정도가 비슷한 유럽 남자와 결혼해 살고 있으니 그가 내 인생에 끼친 영향이  적다고 하진 못하겠다.(이 머리카락 색깔이 사실 닮기가 아주 힘들다. 조지 마이클과 우리 남편의 머리카락 색깔은 그냥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낙엽 갈색이 아니라 갈색과 국방색을 2대1의 비율로 혼합한 색이다. 수퍼마켓에선 절대 이런 색깔의 염색약을 살 수가  없다)


어쨌든,  그에 대한 그리움에 사로잡혀 어젯밤엔 조지 마이클의 주옥같은 곡들을 새벽 3시까지 듣고 잤다. 초기 푸릇푸릇했던 왬 UK시절의 노래부터 미국에서 그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놨던 왬 시절 노래들, 솔로로 전향한 후의 노래들, 엘튼 존과 그리고 알리사 프랭클린과 듀엣으로 불렀던 노래들. 프레디 머큐리 헌정무대에서 불렀던 Somebody to Love까지.


나는  조지 마이클이 부른 퀸의 Somebody to love를 그의 주옥같은 히트곡과 같은 급으로 좋아한다.  조지 마이클은 프레디 머큐리 살아 생전에 평소 존경했던 그와 함께 이 곡을 듀엣으로 불렀던 적이 있었고, 퀸의 노래중 제일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다. 여담이지만 프레디 머큐리 사후에  퀸의 리더보컬로 조지 마이클을 영입한다는 설이 나돌기도했다.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조지 마이클과 퀸은 음악적 색깔이 너무 달라 그가 퀸의 보컬로 들어간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조지 마이클의 노래들은 밴드음악에 걸맞지않다.


내가 고등학교때 조지 마이클이 솔로로 전향한 후 첫 앨범인 Faith가 나왔다. 나는 이 앨범을 한달음에 달려가 샀던 것같은데 허무하게도 수록곡 I want your sex가 금지곡으로 지정되어 이 곡이 앨범에서 빠져있었다. 그것도 아마 한국에서 발매된 앨범에만 그런 것으로 안다. 물론 황인용의 영팝스, 이수만의 팝스 투나잇, 김기덕의 2시의 데이트에서 그 사실을 이미 경고했었다. 그래도 당시 나는 분노를 금할 길이 없었다. 한 아티스트가 발표한 앨범을 누군가가 청소년에게 유해하다고 판단하여 한 곡을 빼고 발매하다니. 요즘 사람들의 시선으로는 절대 이해가 되지않을 일이다. 미국의 힙합 아티스트 에미넴의 Fack(약 먹고 만든 노래라고도 함)을 들어보면 제 정신에 그런 노래를 부를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심히 예술인지 외설인지 헷깔리는 이 노래를 삑 처리도 없이 누구나 유투브로 감상할 수가 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있다. 물론 요즘 한국에서 조지의 Faith 앨범을 산다면  I Want Your Sex 가 들어있으리라 생각한다.


토니  블레어와 부시에게 두려움 없이 빡큐를 날렸고 공중화장실에서 남자와 섹스를 한게 만천하게 공개되고도 당당했으며, 여자들 뿐 아니라 전세계 게이들의 연인이었던 그. 내  나이 열넷이 아니라 사십대 후반의 나이에 다시 만났더라도 좋아했음이 확실한 나의 조지 마이클.

12월이 되면 그가 더 그리워진다.  조지 마이클은 재작년 크리스마스 날에 죽었기 때문이다. 그 날벼락 같은 소식을 들었을 때의 패닉이란! 사인이 심장질환이라고  알고는 있지만 나는 어쩐지 조지 마이클 자신이 크리스마스날에 맞춰 스스로 심장을 나쁘게 조절해서 죽은 것이 아닌가 의심해본다.  일년에 무싯날이 364일이나 되는데, 사람이 어떻게 크리스마스날에 죽을 수가 있는가? 흔적일랑 이렇게 많이 남겨두고.


남은 사람들이 이 날을 어떻게 기억하라고.




위의 글은 내가 2년전 크리스마스 즈음 쓴 글이다. 작년 번아웃 증상으로 힘들 무렵 나는 스스로 번아웃 증상을 해결해볼 요량으로... 요량까진 아니었고 증상이 생기다보니 궁여지책으로 얼떨결에 시작한 행동이 종일 음악을 듣는 것이었다. 작은 JBL 블루투스 스피커를 마련하고는 하루종일 내 책상에서 음악이 들리도록 해놓았다. 당시에 가장 많이 들었던 노래중 하나가 조지 마이클의 Heal the Pain이었다. 귀에 아주 딱지가 앉을 정도로 이 노래를 반복적으로 들었다. 하루종일 듣고 퇴근할 때도 차안에서 들었다. 이 곡은 앨범 Listen Without Prejudice  수록곡이다. 이 앨범은 조지의 어마어마하게 히트한 첫번째 솔로앨범 Faith(1987년작) 이후 3년만에 소니에서 발표된 솔로2집. 어마어마하게 성공한 1집에 비하면 2집은 상업적으로 폭망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앨범 판매량이나 명성이 미미하다. 좋은 곡들이 많이 수록된 명반인데 개인적으로 안타깝다.


Listen Without Prejudice 앨범 재킷


어쨌든 Heal the Pain을 하루종일 듣는 것은 내 정신건강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일이 힘든 순간순간마다 그의 목소리가 들리면 다시 기분이 좋아지고, 내가 혹은 동료가 저지른 중대한 실수를 발견해서 발작을 하려는 순간 그의 목소리가 들리면 다시 기분이 진정되고, 벽 너머로 기분 나쁜 상사의 목소리가 들려도... 흠, 그는 점심때마다 고기를 섭취하고 키운 스테미너가 다 목소리로 가는지 전화할때마다 기차화통 삶아먹은 목소리를 낸다. 벽 너머라고 말하긴 했지만 벽 너머가 아니라 그의 방은 내 자리에서 방 두개나 지나서야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나 그의 목소리가 큰지 전화를 할때마다 온 사무실에 그 큰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그럴때마다 나는 귀를 씻고 싶어진다. 짜증이 솟구친다. 이때 나는 빨간색 JBL 블루투스 스피커를 내 귀에 갖다대고 상사의 기차화통 목소리와는 천지차이로 달콤한 조지 마이클의 Heal the Pain을 알뜰히 듣는다. 그의 목소리는 내 기분을 사무실에서 엄마의 자궁으로 데려다 놓는다.


이렇게 그때그때 노래를 들으므로써 화가 저절로 사그라지니 퇴근때가 되면 약간은 가벼워진 기분으로 퇴근할 수가 있다. 이것보다 더한 힐링이 어디있겠는가. 조지 마이클한테 너무 고맙고, 조지 마이클을 좋아하는 내가 너무 고맙고.


나는 이쯤에서 덕질이 인생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에 대해 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내가 조지 마이클을 좋아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번아웃을 이겨냈겠는가. 뭔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좋아하는 대상이 아닌 내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싫어하는 것이 문제지 좋아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좋아하는 대상이 사람이건 축구건 책이건 음악이건 동물이건 식물이건 물건이건 간에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것이 있다는 것은 인생을 풍요롭게 해준다.  박현욱 작가의 장편소설 아내가 결혼했다도 축구를 좋아하는 남녀( 각각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의 팬)가 축구가 계기가 되어 연애를 시작하고 결혼에 골인한다. 이러니 덕질을 잘하면 연애도, 결혼도 할 수가 있다. 눈뜨고 지켜보면 세상엔 좋아할만한 건덕지들이 참으로 많다.


참고로 나의 남편 방만구 씨는 좀비들과 로보트들, 괴물들에 색칠하는 것을 좋아하는 덕후다. 한동안 인기척이 없어 슬며시 방문을 열어보면 책상에 앉아서 손가락만한 괴물들과 좀비들에게 색을 입히고 있다. 살때는 플라스틱 덩어리였던 것들이 색을 입히고 나면 '이름을 불러주니 내게로 와서 꽃이 되는 것'처럼 의미가 부여되는 존재가 된다. 흡사 내가 수많은 가수들 중 조지 마이클을 좋아해 그가 나의 꽃이된 것 처럼. 소파에 누워 종일 비비적대는 것에 비하면, 또 놀아달라고 파트너를 보채는 것에 비하면 덕질은 얼마나 사랑스러운 행위인가. 그래서 나는 덕질을 권장한다.


얘들아 시간있거들랑 덕질 좀 해봐. 재미져. 게다가 덕질은 국가경제에도 도움이 돼.


그런데 권장해봤자 아무도 조지 마이클을 좋아하진 않더라. 갱년기에 접어들어 우울한 친구에게 조지 마이클을 한 번 좋아해보라고 권유했더니 콧방귀를 뀌었다. 십대때 빠순이가 오십이 돼서까지 빠순이 짓을 하냐고 하면서. 아니, 사랑에 나이가 있나? 덕질에 나이가 있나? 우리 오빠가 얼마나 잘생기고 노랠 잘하는데 콧방귀를 뀌긴 뀌어! 노래 한 번 들어봐, 사진 한 번 봐봐. 안 반하고 배기나.


1987년 앨범 Faith 시절 우리 오빠. 이때가 조지 마이클의 음악적으로도 전성기, 인물적으로도 전성기가 아니었나 싶다.



PS.

그가 죽고나니 후회가 된다. 내가 독일로 온 것이 2000년. 아무리 사는게 바빴어도 조지 마이클의 유럽 콘서트 정도는 찾아가 볼 수 있었을 텐데 한 번도 그의 콘서트에 가볼 생각을 해보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 후회스럽다. 뭘 좋아하려면 정말 가열차게 좋아해 봐야한다. 그래야 나중에 후회가 남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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