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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이 Nov 06. 2020

3억이상 예금시 이자를 내시오

네덜란드의 은행에서 그럽디다

네덜란드에서 편지가 하나 날아왔다.


다짜고짜 네덜란드에서 편지가 날아왔다고 하니 좀 불친절한 것 같아서 설명을 덧붙이자면 아래와 같다.


우리 회사에는 독일과 유럽의 큰 아울렛에 매장을 여러 개 가지고 있으며 이를  관리하는 회사이다. 그중 네덜란드에 있는 우리 매장은 해마다 매출 1위를 기록하는 꿀단지이다. 코로나로 인하여 매출이 꽤 줄어들긴 했지만 그래도 회사에서도 많은 공을 들이는 곳 중 하나이다.


외국에 매장이 있으면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많겠어요?


그렇지 않다. 네덜란드가 어떤 국가냐. 프랑스와는 달리 국민 대다수가 영어를 할 줄 아는 나라이다. 네덜란드에서 영어로 길을 물어보면 상당수의 사람들은 뜸들이지 않고 영어로 대답한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이 돌아서서 자신이 영어로 대답했던가, 네덜란드어로 대답했던가를 잊어버린다는 사실이다. 이들중 상당수는 상냥하게도 독일어도 구사할 줄안다.


은행업무 때문에 네덜란드 은행에 전화하면 직원 전원이 유창하게 구사하는 영어로 인하여 놀란다. 직원들 중 절반 이상은 독일어를 구사할 줄 안다. 나머지 중 절반은 구사할 줄은 모르지만 알아듣기는 한다. 얼마나 외국인에게 상냥한 나라인가 말이다. 나는 한 달에 두어 번 네덜란드에 있는 회계사와 전화통화를 하지만 그의 독일어가 훌륭한 관계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다. 매장이 독일과 네덜란드 국경근처에 있어서 매장 직원 상당수는 독일인이고 나머지도 독일어를 잘 구사하는 네덜란드인이다. 그리하여 커뮤니케이션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문제는 네덜란드에서 날아오는 문서들이다. 심심찮게 편지들이 날아온다. 처음에는 너무나 당황해서 이걸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며 그 이상한 것 투성이인 네덜란드 글씨를 인삿말부터 전부 구글 번역기에 쳐서 더듬더듬 읽었다. 연차가 쌓이자 편지속의 키워드를 구분할 줄 알게 되었고 키워드만 쳐서 빠른 시간내에 내용파악이 가능해졌다. 이제는 일단 네덜란드어가 가득적힌 편지가 오면 읽어볼 엄두까지 낸다. 네덜란드어를 평생 배워보지 않은 주제에 편지를 읽어볼 엄두를 내는 까닭은...


글씨로 씌어진 네덜란드어를 눈으로 읽으면 이게 무슨 소린지 알아먹기가 어렵지만 입으로 소리내서 읽어보면 대충 무슨 소리하는지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어의 어감은 혀가조금 풀린 독일인이 하는 소리와 비슷하다. 독일어만큼 격음이 많지 않고 자음 두개가 연결되어서(aa, ee) 길게 발음되는 단어들이 많아서 그런지 독일어보다 훨씬 부드럽게 들린다. 예를 들어보자면:


 독일어              네덜란드어                      영어

Über uns         Over ons                  About us

Bezahlen        Betalen                            Pay

Sparen             Sparen                            Save

Auftrag            opdracht                        Order

Montag            Maandag                    Monday


Waarmee kunnen we je helpen?(네덜란드어)

Womit könne wir dir helfen?(독일어)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비슷하지 않은가?

이러니 네덜란드어 일자무식인 내가 네덜란드어로 온 편지를 받으면 읽어볼 엄두를 내지.


하여간 그저께 은행에서 한 장의 통보가 날아왔다. 요렇게.


내용인 즉슨 이제까지는 1백만 유로(13억 원) 이상 예금시 이자를 부과했지만 새해부턴 아래와 같이 바꾸겠단다.


250.000유로 이하 예금시 이자율 0%, 250.000유로 이상 예금시 이자율 -0,5%


이 말은 돈을 계좌에 넣어둬봤자 이자는 안준다. 도리어 한국 돈으로 3억3천만원 이상 예금시 고객이 은행에다 0,5%의 이자를 내라는 뜻이다. 마이너스 이자율에 대해서 매스컴으로 들어본 적은 있지만 이게 직접 우리에게 닥칠줄이야.


이리하여 우리는 새해부터 이자를 내고 예금을 하게 생겼다. 거래은행을 바꿔볼까 해서 네덜란드에 있는 다른 은행도 알아보았지만 사정은 다 비슷했다. 돈놓고 돈먹기 하는 은행들이 얼마나 똑똑한데 이런 정책을 다른 은행과 상의도 안하고 단독으로 저지르겠는가. 다른 은행들도 이자를 부과하는 예금액이 약간씩 다르긴 했지만 높은 금액을 예치하는고객들에게 이자를 매기는 것은 비슷비슷했다.


독일에서도 백만 유로 이상을 은행에 예치할 경우 네거티브 이자율를 적용하는 은행이 있다는 뉴스를 읽은 적이 있다. 2014년 독일의 한 은행에서 최초로 네거티브 이자율에 대해 발표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네거티브 이자율이라는 생소한 단어에 대해 얼마나 놀랐던가. 하지만 이제부터 내 생각으로는 거의 모든 세계 은행들이 이런 전철을 밟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기업 뿐만 아니라 소액을 예치하는개인들까지도 이자를 내고 돈을 넣어두어야 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이제 현금을 많이 보유하신 분들은 은행에 이자를 내지 않으려면 그 돈으로 뭐라도 사야되게 생겼다.


이제 돈을 금으로 바꿔서 장농속에 보관해야하나?

아니면 은으로?

백금으로?

땅?

주식?


나는 경제무식자 인데다가 간뎅이가 작아 뭘 사야할지도 모르겠고 사기도 겁난다.


차라리...


현금을 막 써재끼는 건 어떨까?


 지금까지 마요르카의 3성급 자급자족 취사가 가능한 아파트 호텔에서 휴가를 보냈다면, 앞으로는 식사가 전부 제공되는 5성급 호텔에서 논다. 기차여행시에도 1등칸을 예약한다. 미슐랭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 지금까진 H&M에서 옷을 샀다면 앞으로는 최소 토미 힐피거에서 사는 거다. 비싼 유기농 슈퍼마켓에서만 장을 볼까. 갖고 있어봤자 짐만 현금, 죽으면 쓰지도 못할 돈 막 써재끼고 한 푼도 안남기고 죽는 거 어떤가.


최소한 좋은 추억을 내 뇌리에는 저금할 수 있지 않은가. 이자 안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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