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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이 Sep 08. 2020

통장에 찍힌, 주인 없는 돈 육십만 원

갚으세요! 주인 없는 돈이 세상에 어딨나요?

우리 회계부서에 린테너 부인이 있을 때였다. 당시 린테너 부인은 재무회계 담당이었다. 그런데 같은 부서에서 월급 회계를 담당하던 바스티안이 퇴사하면서 바스티안이 해오던 월급 회계를 그녀가 임시로 떠안게 되었다. 그 첫 달이었다. 때는 2018년 6월 월급날.


월급날이 되어 린테너 부인이 작성한 월급 파일이 내게 도착했다. 파일이 도착하면 나는 100개가 넘는 월급과 40개가 넘는 보험료를 클릭 몇 번으로  송금한다.  평소와 같이 월급을 송금하고 하루가 지났다. 그다음 날, 예전에 없던 일이 일어났다. 인사과의 전화통에 불이난 것이었다. 월급이 너무 적게 송금되었다, 너무 많이 송금되었다, 아예 송금되지 않았다 등등. 이런 일은 인사과 기네스 양도 나도 처음 겪어보았다.


기네스 양은 화들짝 놀라며 내게 와서 얘기했다.


직원들 일한 시간을 제대로 작성해서 린테너 부인한테 넘겼거든. 다시 한번 확인해봐도 오류가 날 일이 없는데 도대체 어디서 잘못된 거지?


나야 린테너 부인이 준 파일을 클릭만 하는 사람이라 오류를 저지르고 말고 할 입장이 안되었다. 잘못이 생겼다면 린테너 부인이 한 것이 분명했다. 당시 린테너 부인은 당뇨가 와서 눈이 멀게 된 남편을 데리고 대학병원에서 눈 수술을 시켜야 한다며 하이델베르크로 떠나고 없었다.


할 수 없이 나는 린테너 부인을 대신하여 오류가 난 월급 파일을 샅샅이 읽어보았다. 그러던 중 리스트에서 2년 전에 퇴사한 매장 매니저의 이름을 발견하였다. 2년 전에 퇴사한 이의 월급이 송금되었다는 것은 2년전 월급파일을 실행했다는 말이다. 들고 나는 직원이 많은 판매직이라 2년이면 그동안 입사, 퇴사한 직원이 많을터였다. 그들 모두에게 월급이 송금되지 않았거나, 적거나 많게 송금되었거나, 퇴사자에게 공돈이 송금되었을 것이다.


이런 일이 있나!


기네스 양, 이것 좀 봐, 퇴사한 헬러 씨한테 월급이 송금됐어. 이게 웬일이니... 잘못된 파일을 전송했나 봐. 이것 봐. 요 밑에 01/2016이란 숫자가 적혀있네. 어쩌지? 린테너 부인이 2016년 1월 파일을 나한테 줬나 봐. 보험료도 싹 다 잘못 나갔겠는데?


골치가 아파져 왔지만 이내 정신을 똑바로 차렸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으므로 이 일에서 빠진다. 기네스 양과 린테너 부인이 알아서 처리할 일이었다. 나는 이 귀찮은 일 투성이에서 빠져나오려고 기네스 양에게 말했다. 내일 린테너 부인이 오면 그때 둘이 같이 얘기해보라고.


하지만... 일은 내 생각만큼 수월하게 풀리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린테너 부인의 남편은 눈 수술 후에도 경과가 좋아지지 않았고 그 바람에 그녀는 남편의 병상을 지키느라...  비유하자면 자기가 싸지른 똥을 치울 시간이 없었다. 월급 회계를 담당할 후임자가 왔다면 그 직원이 이 일을 수습할 수 있겠지만 그 자리는 아직 공석이다. 결국 그 똥은 기네스 양과 내가 고스란히 치우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똥을 치우는데 변호사까지 동원되어 총 5개월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은행에 전화를 해보니 보낸 이가 실수로 보냈든 어쨌든 간에 송금이 완료된 돈은 다시 가져올 수 없다는 대답을 해왔다. 그러니 돈을 돌려받을 방법은 받은 이가 스스로 돈을 보내주는 방법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매장 매니저 헬러 씨로 말하자면 우리 회사와 안 좋은 일로 퇴사한 사람이다. 말하자면 긴 이야기인데 어쨌든 기네스 양이 전화해서 송금된 돈을 돌려달라고 말하기가 좀 걸쩍지근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불행 중 다행으로 퇴사한 헬러 씨의 계좌는 삭제된 계좌라서 다음날 송금된 액수가 고스란히 돌아왔다. 헬러 씨뿐만 아니라 몇몇 퇴사한 이가 가진 계좌는 없는 계좌라서 돈이 다 돌아왔다. 월급이 적게 송금된 직원에겐 추가로 송금이 진행됐고 많이 송금된 직원들은 나머지 금액을 회사 계좌로 돌려보냈다. 여기까지는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돈을 받고도 입을 싹 닦은 퇴사자들이 문제였다. 퇴사자들 중에 연락처가 바뀐 퇴사자들에겐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이 경우 아마도 매장 매니저들이 알음알음으로 연락을 하였던지 돈이 돌아왔다.) 연락을 받고도 월급을 돌려주지 않는 사람도 셋이나 되었다. 그중 둘은 한 달 넘게 고생을 시키다가 변호사의 편지 한 통에 돈을 돌려보내 주었고 나머지 한 명 클라인 씨(가명)는 변호사의 편지를 받고도 끝끝내 돈을 보내주지 않았다.


나는 돈을 보내주지 않는 그 클라인 씨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뭔가 어긋나는 것을 참지 못하는 강박이 있는 나는 통장에 원인불명의 돈이 들어오면 어떻게든 이유를 알아내서 내쪽에서 먼저 알아서 보내줄 것 같은데. 세상 사람이 다 나 같지는 않은 모양이다. 클라인 씨는 원인불명의 돈이 자기 통장에 일단 들어오면 자기 돈이 될 줄 알았던 것일까? 때마침 급하게 쓸 데가 있었던 걸까? 아니면 그럴 리는 없겠지만 돈이 들어온 걸 몇 달간 아예 모르고 있었을까?


우리는  달을 기다리다가 결국 법적 절차를 밟았다. 절차를 밟아 월급을 돌려주지 않는 클라인 씨의 통장을 묶어버렸다. 물론 법원에서 그 퇴사자에게 여러 번 무서운 통지를 보낸 후에도 리액션이 없자 취한 행위였다. 월급이 잘못 지급된 것이 2018년 6월, 그리고 클라인 씨가 우리 회사에 연락해온 것이 2018년 11월. 월급이 잘못 송금된 이 사건은 무려 5개월이 넘도록 지루하게 시간을 끈 이후 이제 끝날 조짐을 조금씩 보이고 있었다. 몇 달이 넘게 넘게 연락을 해도 리액션이 전혀 없던 클라인 씨는 통장이 묶인 당일날 스스로 우리 회사에 전화하여 인사담당자를 찾았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기네스 양은 자기가 당한 것에 복수라도 하듯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았고 전화는 내게로 돌려졌다.


아 네, 통장이 묶였다고요?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그런데 기네스 양이 현재 미팅 중이라서요. 끝나는 대로 전화하라고 얘기해놓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우리는 고소해서 낄낄거렸다. 물론 기네스 양은 그에게 전화를 하지 않았고 나는 그날 오후 똥줄이 탄 클라인 씨의 전화를 계속해서 받아야 했다.


아 예, 아까 전화하신 분이시죠? 기억이 나네요. 수퍼마켓에서요? 통장이 묶였으니 당연히그렇겠죠. 그런데 기네스 양이 아직도 미팅 중이라서요. 미팅 끝나는 대로 전화드릴 겁니다.


아 예, 급하신 건 이해가 되는데요, 어쩌죠? 기네스 양이 이미 퇴근을 해버렸네요. 아마 내일은 꼭 전화드릴 거어요. 예 예, 단단히 일러두겠습니다, 전화 꼭 하라고요.


 다음날이 되어서야 겨우 그 퇴사자는 기네스 양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클라인 씨는 잘못 송금된 월급을 되돌려줘야함은 물론이고 변호사 비용과 법원에서 날아온 법적 절차를 진행하는데 소요된 비용까지 다 옴팡 뒤집어써야할 지경이었다. 잘못 송금된 월급은 소액이었다. 450유로. 그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미니잡(월 450유로 이하의 월급을 받으며 세금, 연금, 의료보험을 내지 않고 세전과 세후 받는 금액이 일정한 잡)으로 일하는 직원이었다. 형편이 어려울 것이 뻔했다. 클라인 씨가 돈을 제때 돌려주지 않아 발생한 비용은 아래와 같다. 물론 담당직원의 스트레스는 덤.


4,77유로      이자

36,61유로    집행관의 인보이스(우편요금, 각종 서류 작성 요금)

78,03유로    법적 집행료

117,00유로  변호사비

총 236,41유로


클라인 씨와 회사 간에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 모르겠지만 변호사 비용은 그 퇴사자의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을 고려하여 회사에서 부담해 주었다. 클라인씨는 이자와 법적 집행료, 집행관으로부터 온 인보이스 비용만 지불했다.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은 것을 생각하면 생각같아서는 변호사 비용은 물론이며 Mahngebühr(인보이스 등의 비용을 제때 내지 않을 때 붙는 경고 비용. 보통 1회에 2,5유로에서 5유로 정도 붙으며 리액션이 없을 경우 보통 최대 3회까지 보내진 후 인카소로 넘어간다.) 혹은 Bearbeitungsgebühr(수수료)까지 붙여서 클라인 씨에게 청구서를 보내고 싶었지만 회사에서는 그렇게까지는 하지 않았다.


어쨌든 이런 일이 예전에 있었다. 이 일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연말 결산시에 또다시 문제가 되어 나는 잊혀진 옛날 기록을 깡그리 다시 찾아 회계사에게 넘겨야 하는 수고를 해야 했다. 나에겐 정말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은 Pain in the ass와 같았던 사건이었다.


사진출처 https://www.t-online.de/finanzen/geld-vorsorge/id_75965018/falsche-ueberweisung-erhalten-darf-m


찾아보니 잘못 송금된 돈을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글이 인터넷상에 꽤 많이 올라온다. 아래의 변호사 링크에서 흥미로운 기사를 접했다. 기사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은행에서 계좌주와 계좌번호가 일치하는지 체크할 의무가 없다. 그래서 독일에서 송금시 계좌번호만 맞으면 계좌주의 성명이 틀리더라도 송금이 진행된다. 잘못 송금된 돈을 수령하고 썼을 경우 이것은 독일 민법상 부당이득을 취한 것으로 간주된다. 한 괴팅엔의 교수가 잘못 송금된 돈 25.000유로를 수령했고 그는 그 사실을 모른채 돈을 쓴 사건이 있었다. 교수는 그 돈이 통장으로 들어온줄 몰랐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계좌주는 정기적으로 자신의 통장을 관리해야할 의무가 있으므로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질 수 없다고 판결을 내렸다. 그리하여 그 교수는 전액을 반환해야했다.(아마 소송비도 지불해야하지 않았을까?) 마찬가지로 현금자동지급기에서 더 많은 금액이 인출되었을 경우에도 그 금액을 은행에 돌려주지않으면 부당이득을 취한 것으로 간주되어 법의 처벌이 가능하다.


https://anwaltauskunft.de/magazin/gesellschaft/panorama/muss-man-falsch-ueberwiesenes-geld-immer-zurueckgeben


그런데 남의 돈을 운좋게 꿀꺽할 수 있는 경우도 있다. 통장에 알 수 없는 돈이 들어왔는데 송금인이 연락이 없을 경우. 3년동안 송금인에게 연락이 오지 않을 경우엔 이 돈을 가져도 괜찮다는 법이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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