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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이 Dec 14. 2020

독일에서 주말농원 임대하기

깜짝 놀랐네, 임대료가 이렇게 싸다니!


나는 농부의 딸이긴 하지만 본가가 소읍의 시내 한복판에 있었던 지라 농사는 일절 모르고 살았다. 식물의 파종기가 언제인지, 이식기가 언제인지 수확기가 언제인지 아무 것도 모른다. 게다가 흙이 손에 묻고 손톱밑에 까맣게 남는 느낌이 싫어서  사춘기 이후로는 흙을 만져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안난다.


그러던 것이 코로나가 확산되고 셧다운으로 가게와 극장과 도서관 등이 문을 닫고 사람도 못만나게 되면서 도무지가  데가 마땅찮아 작게나마 농사를 한 번 지어볼까 하는 생각이... 방만구 씨가 그런 생각을 해냈다. 그는 도시에서 자라 도시에서 큰 사람으로 농사라곤 나보다 더 모르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데 먹는 건 우리가 한 번 길러보자고 했다.


그의 제안에 나는 핑크빛 꿈을 한 번 꾸어본다. 아, 정원에는 감자와 토마토가 자라고 개 두 마리가 뛰어놀고, 창문을 열면 보리밭이 펼쳐진 시골에 우리 집이 있다! 즐거운 상상이었다. 나는 심심하게 살던 차에 액션을 취할 일이 생기자 활기가 생겨 여기저기 쑤시고 다녔다.


일단 부동산 사이트에서 시골에 위치한 작은 정원이 있는 집을 찾아보았다. 프랑크푸르트에서 고속도로로 30-40분 거리에 있는 시골정도면 우리 주머니 사정으로 집 하나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집을 보러 다니다 우리 사정에 맞는, 초중고등학교와 작은 극장, 몇 개의 슈퍼마켓이 있는 그야말로 시골에 있는 작은 집을 하나 찾아냈다. 우리가 사려고 마음 먹었던 곳은 그 시골에서도 중심가에서 꽤 떨어진, 숲 바로 옆에 있는 집이었다. 감자와 토마토를 심을 수 있는 아주 작은 정원이 딸린, 창문을 열면 들판이 펼쳐진 내가 상상하던 그런 시골집이었다.


우리는 그 집이 마음에 들어 부푼 꿈을 안고 대출을 받으려고 은행까지 들락거렸으나...  긴 얘기 짧게 끝내자면, 결국 시골로 이사가는 꿈을 접었다. 어느 주말 오전에 우리가 이사가려고 마음먹은 시골의 교회앞에 하염없이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본 적이 있었다.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할아버지와 손자가 트랙터를 몰고 지나가며 한 아주머니와 반갑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것을 본 순간 우리 가족이 과연 이 시골 커뮤니티에 편입되어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생각처럼 집을 사고 이사를 간다는 것은 한 큐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먼 출퇴근길, 텃새 부리는 이웃, 전학가서 적응하지 못할 딸자식, 뭐 하나 제대로 고치지 못하는 똥손... 막상 집을 산다고 생각하니 나이 오십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생면부지의 시골로 이사가는 것이 겁이났다. 시골로 이사간 친구중 동네사람과 융화되기위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인 스토리를 알고있다. 나는 성격상 그런 것을 못한다. 그래서 결국 이사는 포기했다. 그 집을 놓친 것이 처음에는 너무 아까웠으나 시간이 좀 지나자 푸성귀나 심으려고 우리가 지금껏 쌓아놓은 삶의 터전을 떠난다는 것이 어리석게 느껴졌다. 이사 안가길 잘했다.


시골로 이사가는 대신 우리가 선택한 것은 주말농원 임대하기.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30개가 넘는 주말농원조합이 프랑크푸르트와 주변도시에 존재했다. 300-400개의 농원을 가진 거대 조합에서 30개의 농원을 가진 소규모 조합까지 크기가 제각각이었다. 우리에게는 규모가 크건 작건 상관없이 집에서 가까운 조용한 곳에 있는 농원이면 좋을 것 같았다.


주말농원을 임대하기로 마음먹자 그동안 눈여겨 보지 않았던 농원들이 눈에 들어왔다. 감자와 토마토는 물론 예쁜 판자집에 잘 꾸며진 잔디와 그릴, 울긋불긋 꽃. 여름이면 주말농원의 판자집에서 그릴해서 고기를 굽고 수확한 상추로 쌈싸먹기...


시골 호수변에 제법 큰 주말농원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따르면 여름에는 거기서 자고오기도 한다고 했다. 별장처럼. 물론 대부분의 주말농원의 판자집들은 작고(10평방미터 정도) 화장실 시설이 그다지 좋지 않아 몇박 몇일 일정으로 가족들이 지내기에는 불편하다. 하지만 한나절 그릴파티를 하기에는 불편함이 없을 것이다. 왜 진작에 이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나는 얼른 우리집에서 아주 멀지 않는 20개의 주말농원을 골라 직접 작성한 지원서를 보냈다. 주말농원마다 각각 다른 지원서 양식이 있었지만 나는 한꺼번에 보내야하므로 내가 직접 지원서 양식을 만들었다.


지원서에 우리 가족 3명의 개인정보, 부부의 직업,2000-3000유로(300-400만 원) 정도로 판자집, 각종 집기류, 주말농장에 심어진 식물 등을 인수할 의향이 있다는 점, 지금까지 개인정원을 가꾸어본 경험은 없지만 꼭 예쁜 정원을 가지고 싶다는 의향 등을 밝힌 후 20개의 주말농원조합에 이메일을 보냈다. 알아본 결과 크기에 따라 임대료는 다르지만 평균 년 임대료는 30만원 선, 밭의 크기는 300에서 400 평방미터 정도였다. 생각보다 저렴해서 놀랐다.


알아본 결과 우리집 근처에 위치한 이 사진의 주말농원이 작년 5월에 1900유로에 새로운 주인을 찾았다. 이 정도 상태의 농원이라면 1900유로가 그다지 비싸지 않다.


이틀정도가 지나자 답장이 속속 도착했다.


"먼저 저희 주말농원 조합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코로나 시기가 겹쳐 이력서가 폭주하고 있습니다. 현재 웨이팅 리스트가 너무나 긴 관계로 귀하의 이력서는 부득이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점 이해부탁드립니다."


"저희 주말농원에 보내주신 지원서는 잘 받았습니다. 현재 빈 농원이 없습니다. 빈 농원이 생기는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위와 같은 답장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익히 생각한 바였다. 그러다 1주일 정도가 지났을까. 우리집에서 자동차로 7분거리에 위치한(걸어서 1시간) 주말농원에서 빈 자리가 생겼으니 보러오라는 이메일을 받았다. 많은 농원들이 고속도로변이나 기찻길 옆, 국도변에 있다고는 알고 있지만 빈 자리가 생겼다는 농원은 정말이지 국도에서 1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자동차 소음이 꽤 심할 것 같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찾아가 보기로 했다.


니다강이 흐르는 니다공원 안에 주말농원이 위치했다.
공원옆으로 기차가 지나다니고 그 옆으로 국도가 있어 생각했던것처럼 소음이 꽤 심했다.
뉴트리아와 오리와 백조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조화롭게 강가에서 살고있었다.
공원에서 주말농원으로 들어가는 길. 농원을 임대인들만 이 자공찻길을 이용할 수 있다.


담당자와는 토요일 오전 11시 15분에 만나기로했다. 우리는 조금 더 일찍와서 농원들을 둘러보았는데 이미 자동차 소음으로 인하여 임대하지 않기로 속으로 설정한 터였다.


우리 앞에 누군가가 이미 농원을 보고 나온듯 우리가 시간에 맞춰 도착하자 부부인듯한 두 사람이 농원을 나왔다. 그리고 내게 이메일을 보냈던 Kehm씨가 우리를 반겼다. 나는 혹시 그가 주말농원조합에 고용된 사람인가 싶어 물어보았더니 자기 역시 이곳에 농원을 임대한 사람으로서 무보수로 자원봉사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보러갈 주말농원은 한 할머니가 십오 년 넘게 가꾸던 것인데 80이 다돼가면서 기력도 떨어지고 해서 내놓는 것이라고 했다.



테라스를 합쳐 판자집의 크기는 약 20평방미터 남짓해 보였다.
판자집 맞은편에 그릴이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편에 주방이 있다.
주방옆에 작은 공간은 거실로 사용할 수 있다. 물과 전기가 들어오니 날씨가 따뜻할땐 자고가도 될듯했다.
주방 맞은편 창문으로 보이는 테라스.
그릴옆으로는 각종 채소를 기를 수 있는 밭이 있다.

Kehm 씨는 이곳은 규정상 전체 면적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면적은 순수한 농사면적으로 사용해야한다고 했다. 만약 주말농원의 크기가 300 평방미터라면 100 평방미터는 감자, 토마토, 상추 등을 기르는데 사용해야한다. 그러므로 주말농장을 임대하여 전체를 잔디밭으로 활용한다든지 어린이 놀이터로 사용한다든지 꽃밭으로 활용한다던지 하는 일은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다. 물어보진 않았지만 주말농원의 집들이 거의 일정한 것으로 봐서 이곳의 집 크기 역서 규정상 일정한 넓이 이상으로 지을 수 없는 것 같았다.


이렇게 둘어본 후 Kehm씨는 가격에 대해 말했다.


"이 집을 물려받는 조건으로 3400유로를 내셔야 하구요, 매달 임대료는 전기와 물을 얼마나 쓰는지, 농장의 면적이 얼마인지에 달려있지만 1년에 300유로(40만원) 선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집 가격이 생각보다 좀 비싸네요. 이 조합 페이스북에서 작년에 1900유로에 팔린 집을 봤거든요. 그래서 저도 그 정도로 생각하고있었는데... 그 가격에 주방기기나 그릴같은 품목이 들어있나요? 아니면 그런 품목은 저희가 따로 지불해야하나요? 이 가격은 할머니가 정한 가격인가요, 아니면 조합에서 정한 가격인가요?"


"조합에서 정한 가격입니다. 임대인이 나간다는 의사를 밝히면 저희 조합에서 집과 밭의 상태, 집기류 등을 봐서 가격을 측정하거든요.  임대의사를 밝히시면 저희 조합에서 인보이스를 새 임대인에게 보내드리고 인보이스가 지불되면 곧 농장을 인수하실 수 있습니다. 아마 1월경에는 인수인계가 이루어질 수 있겠지요."


농장을 꼼꼼히 구경하면서 계속해서 바로 옆에 위치한 자동차 소음이 신경쓰였다. 물론 큰 나무들이 있어서 지나가는 지나가는 자동차가 직접적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자동차 소음은 이 주말농장의 치명적인 단점이었다. 농사를 잘 지어도 자동차 매연때문에 농산물을 먹기가 찝찝할 것 같았고 그릴파티를 할때도 소음이 방해가될 것 같았다. 같은 값이면 오래 기다리더라도 조용한 곳에 있는 농원을 임대하고 싶었다.


나는 Kehm 씨에게 잘 생각해보고 다음주 초까지 연락하겠다고했다. Kehm 씨는 친절하게도 나오는 길에 조합 사무실을 보여주었다. 사무실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무실이 아니었고 파티룸이었다. 아마 여름에는 이곳에 비어가르텐이 오픈하지않을까.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주방과 바, 식탁과 의자가 놓여있어 20여 명이 모여서 식사와 파티를 즐 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곳은 조합원들에겐 1일 50유로, 조합원이 아닌 사람에겐 1일 150유로에 임대를 해준다고했다. 생일파티나 결혼기념일파티 총각 처녀파티, 회사가 소규모라면 회사의 창립기념파티 등에 적합할 것 같았다. 농원은 임대할 의사가 없지만 이 파티룸은 언젠가 이용할 기회가 있을 것 같았다. 미나 생일이나 우리의 결혼기념일 정도에.


비가 조금씩 내렸지만 나는 걸어서 돌아가기로했다. 걸으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주변 사람들이 그랬다. 좋은 주말농원은 빌리기가 아주 어려울 거라고. 좋은 위치에 있는 저렴한 주말농원은 대부분 대를 이어 물려받거나 알음알음으로 지인들에게 물려줘서 우리같은 뜨내기들에겐 돌아올 기회가 없을 거라고. 맞는 말이다. 행운이 이렇게 원하자마자 찾아오면 그게 행운인가... 오래 기다릴 각오를 해야지.


혹시 우리가 멋진 주말농원을 임대하게되면 그때 다시 글을 올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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