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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이 Dec 31. 2020

오늘, 자식을 데리고 출근했습니다

방학이라고 집에서 팽팽 놀게둘 순 없죠

나이가 드니 나도 GOD의 쭌이 형처럼 자꾸 옛날 얘기를 하게된다.


우리 어릴땐 어땠냐 하면... 여름방학이라고, 겨울방학이라고 어디 한 번 여행가는 일이 없었다. 비행기는 커녕 버스타고 가는 여행도 해본 적이 거의 없다. 여행이라고 하면, 어차피 여행이랄 수도 없지만, 친구 하나없는 외갓집에서 한 달동안 심심하게 지내며 할머니가 소죽을 끓이는 걸 들여다 보거나, 불때는 것을 들여다 보거나, 정미소 돌아가는 것을 구경했다.(외갓집은 정미소) 엄마 아빠는 사시사철 농사를 짓느라 바빴고 애들은 방학이 되어도 애들끼리 노는 것이 당연했다. 그랑에 미꾸라지를 잡으러 가든, 마당에 구멍을 파고 구슬치기를 하든, 동네 애들을 불러모아 숨바꼭질을 하건. 우리들은 방학이 한 달이건 두 달이건 상관치 않고, 부모가 있든 없든 신이나게 놀았다. 나의 유년기에 부모의 부재로 인해 결핍이 있었냐고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없다고 대답한다. 동네 어른들이, 동네 아이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울타리가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어떤가?


여름방학은 한달 반이지만 그중 한 두어 주 비싼 돈을 들여 휴가를 다녀오면 애들은 대부분 방구석에서 컴퓨터나 핸드폰을 끼고 뒹군다. 겨울방학은 2주 정도 되어 부모들의 근심이 줄어들었지만 올해는 코로나때문에 방학이 좀 늘었다. 방학이 시작될라 치면 부모의 근심걱정은 하늘을 찌른다. 이것들에게 뭘 시켜야 텔레비전이랑 좀 떼어놓을 수가 있을까, 컴퓨터와 좀 떼어놓을 수가 있을까. 학교가 없었던 시절, 세상의 부모들은 자식등쌀에 어떻게 살았을까... 


사실, 독일에서 맞벌이 부부들은 방학때도 애를 학교에 보낼 수 있다. 약간의 돈을 내면. 학교에서 맞벌이 부부를 위하여 방학용 종일반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좋을 수가! 이리하여 나도 예전에 미나를 방학때 종일반에 보낸 적이 있었다. 그런데 돈을 들여 보내놨더니 애가 점심때도 안돼서 일찌감치 집에 돌아왔다.


아니, 점심식대도 냈는데 밥이라도 먹고 오든가, 이렇게 일찍 오면 돈이 아깝지... 한 두 번도 아니고 매번...


애가 같이 놀 친구들이 없다는데 어쩌나. 친구들은 모조리 방학이라고 할머니집, 이모집에 놀러가고 지 혼자 학교에서 덩그러니 그러고 있으니 집에 오는 것이 당연지사. 할머니는 멀리 살고, 사촌들과 이모는 이역만리에 살아서 미나는 방학때 갈 데가 없다.


학교에서는 나름 플랜을 짜서 소풍, 수영장, 극장 등의 코스를 제공하긴 하지만 대부분의 애들은 미나처럼 학교에서 제공하는 이러한 플랜에 참여하기 보다는 집에서 빈둥거리는 것을 선호한다. 학교에서 제공하는 방학중 돌봄코스가 인기가 없다는 말이다. 그 증거로 미나네 반에서 이번 겨울방학때 종일반 돌봄을 신청한 아이들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러면 그 애들은 방학동안 뭘하고 놀까? 게다가 여행도 금지된 이 코로나 시기에.


미나에게 오는 웟쯔앱 메시지들을 참고삼아 보자면... 간간히 Movie Star Planet이라는 인터넷 게임에서 만나서 같이 게임을 하기도 하고, Among Us 라는 스마트폰 게임을 하기도 하며, 웟쯔앱 그룹 비디오로 통화하기도 한다.


애들이 내 자식마냥 집구석에 앉아서 컴퓨터 게임이나 핸드폰 게임을 하면서 노는 거다. 사실 코로나때문에 모든 코스들이 온라인으로 전환되거나 문을 닫아서 더하다. 좀 위로가 된다. 남의 자식이 이 시기를 보람차게 보냈다면 나도 어떻게 해서든 내 자식을 뭐라도 하게 해서 알차게 보내게 애쓸텐데, 즈이 친구들도 다 저렇게 집구석에서 컴퓨터 게임이나 하고 놀고 있다니... 안심이 된다.


방학이 시작된 이후 이틀동안 미나는 집에서 혼자 있었다. 보나 안보나 종일 집구석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고 팽팽 놀았을 것이다. 함부르크에 사는 즈이 할머니가 신체를 단련하라고 크리스마스에 웨이브 보드까지 보내줬는데, 이것은 웨이브 보드를 타고 나가서 신체를 단련하는 것 보다는 편하게 집에 앉아서 손가락 놀림이나 하면서 심스를 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형편이 이런지라 나는 왠지 애를 저렇게 팽팽 놀게 두면 부모노릇을 못하는 것 같아서 사무실에 데리고 갈까 싶었다. 요즘은 홈오피스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많고, 게다가 12월30일인 오늘은 그나마도 휴가를 낸 사람들이 많아 사무실이 거의 비었다.  사무실에 데리고 가서 내 옆에 앉혀둔 후에 애가 하루종일 과연 뭘 하면서 노는지 한 번 보고싶었다.


"미나야, 내일 나랑 같이 사무실갈까?"


"좋아 엄마! 나 엄마 따라서 사무실에서 일하는 게 좋아."


사실 미나는 1년전엔가 한 번 사무실에 따라와서 내 옆에 앉아 종일토록 놀았다. 그때 아주 재미있어했다.


출근하자마자 모든 어른들이 미나를 알아봐서 친절하게 인사를 건넸던 기억, 공짜로 얻어 먹었던 맛있었던 점심식사,  학교와 비교하자면 자신을 귀여운 아이 취급해주는 어른들이 있는 사무실은 아이에게는 아주 안정적인 공간이다. 아이로서 보호받는 안정적인 공간말이다. 이 공간에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놀리는 아이가 있는가, 야단을 치는 선생님이 있는가, 하기싫은 체육수업을 하러 체육복을 갈아입어야할 일이 있는가, 생물수업에서 '양'을 받아서 스트레스 받을 일이 있는가, 하교하는 길에 빽빽한 버스를 타려고 달려가야할 일이 있는가 말이다.


사무실은 자판기 두드리는 소리만 빼면 고요한 편이다. 여기서 미나가 해야하는 일은, 아래와 같이 봉투를 접는 일. 신용카드 매출을 날짜별로 정리하는 일, 인보이스에 엄마가 하라는 대로 도장을 찍는 일. 엄마가 가져다 주라는 서류들을 다른 부서에 갖다주는 일. 다 열두 살짜리에겐 식은 죽먹기다. 도장을 찍었을 뿐인데도 지나가는 어른들이 혀를 내두르며 칭찬을 해댄다. 서류들을 갖다줄 때마다 애가 왜이렇게 쑥쑥 자라냐고 모두들 감탄을 한다. 이게 얘한테 남는 장사인가 아닌가?


우리 회사가 이사를 앞두고 거래처에 주소변경을 알리는 편지를 보내야 하는데, 미나가 여러모로 도움을 주었다.  독일에선 아직도 우표를 붙여서 보내는 편지 시스템이 건재하다.
점심시간에 미나와 근처 맥도날드에 가서 빅맥 세트를 사와서 먹었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패스트푸드다. 애들이 가끔씩 패스트푸드도 먹고 콜라도 마시고 그래야 쑥쑥 크는거지...



게다가 점심시간이 되니 엄마는 맥도날드 햄버거를 사준다. 왠만하서는 얻어먹을 수 없는 음식이다. 좀처럼 햄버거를 먹지 않던 엄마도 자기와 함께 햄버거를 먹어주고 콜라를 마셔준다. 학교식당에서 먹는 급식과는 차원이 다른 행복이다. 밥을 먹고나면 엄마와 산책을 간다. 회사 앞이 들판이라 뛰어놀기가 안성맞춤이다. 학교처럼 짜여진 시간표가 있어서 시간표대로 움직여야하는 것도 아니다. 나가고 싶으면 언제나 나가서 산책해도 되고, 듣고 싶은 음악을 늘 들어도 된다.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유투브를 보기도 한다.





2시간에 한 번씩 밖으로 나와서 산책시간을 가짐. 다행히 회사 앞이 들판이라 산책하기가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뛰어본 지가 몇 년 만인가. 미나가 없으면 사실 밖에 산책하러 거의 나오지 않는다. 사무실에만 처박혀서 일하다가 퇴근해서는 방만구 씨에게 각종 짜증을 부리곤 한다.


오후 4시가 지나면 해가 떨어진다. 며칠동안 계속 비가 오더니 오늘따라 날씨가 맑고 석양이 아름답다.
오늘 산간지방에 눈이 내린 모양이다. 산 끝자락에 눈으로 둘러쌓인  마을 Königstein의 자태가 눈에 들어온다. 오늘 Frankfurt엔 눈이 전혀 내리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연말 연휴라 거리가 텅텅 비었다. 오른쪽 지붕끝에 보이는 건 가로등이 아니고 보름달. 휘황찬란한 보름달이 퇴근길 내내 우리를 따라왔다.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하루를 돌아보니 오늘은 참 보람찬 하루였다 싶다.


오늘 내가 했던 사무는 상당히 소모적인 일이었다. 연말은 역시나 일년중 제일 할 일이 많은 때다. 게다가 년 1월 이사까지 앞둔 터라 일이 차고 넘쳤다. 평소같았으면 스트레스를 받으며 일을 했겠지만 오늘은 달랐다.나는 미나 옆을 지날때마다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귀를 만져주면서 기분이 좋아졌고, 때때로 미나가 자기가 그린 그림을 내게 보여줄때마다 나의 뇌는 잠시의 휴식을 취할 수 있어서 상당한 위로가 되었다. 보통 오후 4시정도에 찾아오는 두통과 명치끝의 불쾌함도 오늘은 찾아오지 않았다. 미나와 자주 산책을 나가 쾌적한 공기를 마셨기 때문일 수도 있고, 자주 미나를 바라보며 사랑 충만한 기분을 느껴 스트레스가 해소되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내가 자식이랑 쿵짝이 되어 놀기만 했느냐면 그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오늘 생각보다 많은 일을 완수해서 나의 업무에 대해 스스로도 만족했다.


나는 자식이 부모의 일하는 공간을 방문하여 부모와 하루를 함께 보내는 것이 부모가 일터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한다. 세상 어디에서 부모가 충만하고 사랑가득한 기분을 느끼겠는가? 어디가 됐던 자식이 있는 공간이다. 자식과 함께 있으므로 해서 기분 좋게 일하면 일의 능률이 오르는 것은 당연한 일. 이상하게 집에서는 애물단지같이 보이던 자식도 일터에 데리고 나가면 애가 그렇게 예뻐보이고 대견해 보일 수가 없다. 부모는 자식덕에 일의 능률이 오르고 자식은 부모가 어떤 일을 해서 자기를 먹여 살리는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많은 CEO들이 내 말을  귀담아 듣고 때때로 사원들이 애들을 데리고 회사로 출근할 수 있도록 배려를 좀 해줬으면 한다. 절대 밑지는 장사 아니고 윈윈이다.


내가 쭌이 형처럼 또 옛날 얘기를 해서 미안한데...


옛날에, 큰 기업체들이 요즘처럼 많지 않을때...  우리 부모들은 우리들을 데리고 업무를 보았다. 우리 동네에는 큰 회사는 없었고 삼미사, 유강식당, 미미 미장원, 신일약포, 모레알상회, 대구편물 등의 자영업 가게들이 즐비했는데 애들은 모두 방과후에 부모들의 일터에서 부모를 도왔다. 아이들은 부모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고 어떻게 하면 부모를 도울 수 있는지 잘 알았다. 나 역시 나의 부모가 일하는 목장에 자주 따라가서 소젖이 담긴 우유통을 옮기고, 소들에게 소금과 사료들을 주고, 소똥을 치웠다. 부모가 이런 일을 해서 우리를 먹여 살리는구나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야기가 좀 다른 곳으로 새는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제작년엔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함부르크에 있는 시댁엘 갔다가 114번 버스를 탄 적이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답이라 버스는 텅 비었고 나는 버스에 오르자마자 버스 운전사 좌석에서 서너 좌석 떨어진 곳에 앉았다. 나 말고 승객이라곤 버스 운전사 바로 뒷 좌석에는 열살 남짓돼 보이는 남자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는 보호자도 없이 혼자 앉아 있었다. 그 아이는 버스가 멈출때마다 버스 운전사 옆으로 가서 운전사와 두런두런 잡담을 나누었다. 처음에는 아이가 길을 물어보나 싶었는데 계속 보다보니 운전사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버스 운전사가 버스에 가족을 태우고 다니는 것이 사규에 위배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에 아빠가 운전하는 버스를 타고 아빠 바로 뒷좌석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내 눈에는 왠지 흐뭇해 보였다. 아들은 아빠가 얼마나 자랑스러웠을까. 크리스마스 이브에 시민들의 발이 되어주는 아빠, 솥뚜껑처럼 큰 운전대를 자유자재로 운전하는 아빠, 즈이 반에서 제일 큰 차를 몰고 다니는 아빠.



이야기가 이제 막바지에 도착했다. 이 그림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치려고 한다.

뜬금없이 왠 그림이냐고 하겠지만... 미나가 오늘 회사에서 그린 그림이다. 오전내내 컴퓨터를 들여다보며 저 그림을 그렸다. 그림은 미나가 요즘 즐겨보는 만화영화 등장인물로 초능력을 가진 주인공 커플이다. 이 그림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즈이 엄마는 사람을 그리라면 똥그라미 하나와 짝대기 4개로 완성시키는 똥손인데 비해 얘는 그래도 즈이 애비를 닮아 그림을 잘 그리는구나 싶어서. 사무실에서 이 그림을 보여주고 많은 칭찬을 받았다.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내새끼 내새끼 내새끼!


긴 글을 썼지만 결론은 자식자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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