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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이 Feb 16. 2021

물물교환:코바늘 24개와 토스터 1개

4차 산업혁명을 앞둔 이 시점에 물물교환? 예스!


앞에서 나는 독일생활 초기 뜨게바늘을 한국과 중국에서 수입해서 팔았다는 얘기를 늘어 놓았었다. 장사가 잘될땐 기가 막히게 돈이 들어와 일시불로 자동차도 구입했는데... 15년이 지난 지금 그 많던 통장 잔고는 다 어디가고 남은 건 바늘뿐이다. 우리집 지하실엔 못쓰는 살림살이, 옛날 성적표, 기억을 떠올릴 장난감 등의 잡동사니는 들어갈 데가 없다. 모조리 바늘천지다.


정말이지 이 징한 바늘들...

좌우에 달린 화살표 클릭하지 마시길. 사진 안바뀜. 스크린 샷으로 따온 사진이라.



요즘도 장사를 아주 접은 건 아니다. 간간히 반찬값할 정도의 주문은 들어온다. 그렇게 찔끔찔끔 주문이 들어와가지고서야 아마 150년정도나 지나야 재고가 다 없어질 것이다.


얼마전 주문이 들어와 지하실 창고에 가봤다가 뜨아! 우리집 지하실에만 지진이 났나? 했다. 그동안 방만구 씨가 바늘을 배송했었는데 어찌나 창고관리를 지저분하게 해놨는지… 뜨게바늘 상자로 가득차 발디딜틈 없는 창고 꼬라지를 보고서는 내 손의 지문이 닳아 없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이것들을 싹다 없애버리던지 정리를 해야겠단 오기가 생겼다. 눈물을 머금고 다 갖다가 버리든가 아니면 하나씩이라도 저렴하게 팔든가.


다 갖다 버린다면이야 속은 후련하겠지만(이미 반 이상 갖다버렸음) 돈을 갖다 버리는 격이니 가슴이 쓰리다. 결국 갖다 버릴려고 10년동안 바늘을 창고에 처박아놨느냐 라는 원망스런 목소리가 내 귓전에 맴돌았다. 결국 고민을 하다가… 노느니 이잡는다고 결국 바늘들을 이베이에 올려서 팔아보기로 하였다. 바늘 하나당 저렴하게 천원. 사진을 찍어 올리고 설명을 쓰고 손님들에게 문의가 오면 문의에 답하고 바늘을 포장하고 입금확인후 보내고. 이 모든  잔손 가는 일을 다 해봐야 내 손에 쥐게되는 돈은 건당 12유로이다. 본전에 한참 못미친다. 그래도… 이거라도 일주일에 몇 개 팔면 한 달에 100유로는 번다. 반찬값이라도 벌어야지. 물건이 창고에 쌓였는데.


이리하여 이베이에 사진들을 좌라라 올리기 시작했다.



음하하하 보아라! 어제 올린 상품인데 이미 13명의 방문자가 있었지 아니한가?


요즘은 이 사이트를 들여다 보면서 몇 명이 방문을 했는지, 몇 명이 이 상품을 눈여겨 보고 있는지 체크하는 것이 나의 즐거움이다. 또다른 즐거움은 이베이 앱에 빨간 숫자가 뜨는 것이다. 누군가가 내게 상품문의를 하면 빨간 숫자가 뜬다. 대부분은 물건을 구입하고 싶다는 소식이다. 주로 나이드신 어르신들이 바늘을 구입하는지 물건을 판매하는 동안 페이팔 계좌를 가지고 계시는 분이 거의 없었다. 어떤 분은 송금조차 은행에 직접 가서 해야한다며 주말에 구입하고 월요일에 은행에 가서 송금하겠다고 하신 분도 계셨다. 이런 분들께 줄바늘 하나 공짜로 끼워서 선물로 드리면 엄청 고마워한다. 나는 문자가 뜰때마다 정성스럽고 공손하게 답변을 해드린다. 그리하여 내 이베이 계좌에는 만족도 TOP, 팔로워 13명이나 존재한다.


그러던 중, 어제 저녁때 하나의 구입문의가 살며시 왔다.


"바늘을 구입하고 싶은데요? 혹시 돈으로만 구입 가능한가요?"


이 문의를 보고 나는 너무 귀엽고도 웃겨서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메시지를 가족들에게 보여주었다. 가족들이 박장대소를 했다. 돈으로만 구입이 가능하지 그럼? 뭐 조개로 구입하게? 엽전? 소금? 나는 이 문의가 너무 창의적이란 생각이 들어 나도 창의적으로 답변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예, 돈으로만 구입이 가능합니다. 저희 집에는 물건들이 넘치거든요."


"아... 그렇군요."


구입자가 이렇게 한발짝 물러나니 나는 좀 궁금해졌다. 이 분이 도대체 뭐와 바늘을 바꿀 의향을 가지고 계신지.


"뭐랑 바늘을 바꾸고 싶으세요? 제안이 흥미로운데요? 금? 은? 주식? 쌀?"



그러고 보니 Rice를 영어로 썼다. 독일어로는 Reis. 발음은 영어와 같다.


그랬더니 자기의 이베이 사이트를 한 번 방문해서 물건을 둘러보라는 답변이 왔다. 이베이 사이트를 둘러봤더니 영 쓰잘데기 없는 것들만 주르르. 그집 창고도 보나 안보나 150년이 지나도 안팔릴 것들로 가득차 있겠지. 접시처럼 생긴 자동차 브레이크, 드라이어, 전등, 베개, 이불요, 믹서기, 토스터, 전자 허리띠 비스무리한... 그나마 내가 필요한 것을 굳이 찾으라면 토스터. 몇 달 전부터 토스터가 작동되지 않아 후라이팬에 식빵을 구워먹던 중이었다. 그런데 그분이 판매하는 토스터를 보아하니 이름도 없고 생산지도 불분명한 한 마디로 잡표. 샀다가 고장나면 교환도 환불도 안될 것이 뻔한데...


그리하여 나는 Toaster... 라고 쳤다가 물물교환은 뒷전으로 두고 뜨게바늘에 대해 열심히 타자를 쳤다. 시중에서 파는 것의 반값도 안되게 팔고 있으며 사업을 정리하려고 이렇게 도매가도 안되는 가격에 팔고 있다고, 물건의 상태는 새것이라고. 손가락에 불이 나도록 치고 있는데 갑자기...


"저기 혹시 전화로 통화를 하면 안될까요?"


하고 물어왔다. 아니, 이 야밤에? 나는 갑자기 뜨끔해졌다. 혹시 남자가 아닐까? 내가 이모티콘을 써가며 농담을 해가며 대화를 했는데 혹시 자기에게 호감이 있는지 오해를 하는 건 아닐까... 그래서 나는 한발짝 물러서 저녁 늦은 시간이라 통화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럼 내일은 통화가 가능한지 물어왔다.


나는 좀 생각에 잠겼다. 이 이베이 판매자의 삶이 아주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이 분은 왜 이베이에다 전자기기를 파는 걸까? 전파상을 하다가 망한 것일까? 혹시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뜯지 않은 오래묵은 전자기기들을 파는 걸까? 장작은 왜 필요한걸까? 맞다, 장작. 이 분은 이베이 사이트에 장작이 필요하니 무료로 주실분이나 팔 사람은 연락하라고 작년 11월에 광고를 올렸다. 아직 내리지 않은 것으로 보아 장작을 구하지 못한 것 같은데 왜 Baumarkt에 가면 살 수 있는 장작을 굳이 이렇게 광고를 올려가면서까지... 혹시 생활에 필요한 전반적인 물건들을 물물교환으로 해결하는 사람인가? 아니, 이 4차산업혁명이 시작되려는 시기에?


궁금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라 나는 그럼 내일 점심시간에 전화통화를 하자고 했다. 그리고 약간 흥분된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다. 잠을 자고 일어나자 사람이 차분해져서 그런지 내 생각도 바뀌어 있었다. 내가 미쳤지, 이베이에서 만난 판매자와 뭐 할 말이 있다고 전화번호까지 알려준다고 했을까... 나는 당장 소식을 보냈다. 제 개인번호라 고객님께는 번호를 못드리겠다고. 그러니 궁금한 사항이 있으시면 문자로 보내라고. 그러면서 바늘이 아직도 필요한지 물었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뜨게질을 좋아해서 선물하려고 하니 바늘을 꼭 구입하고 싶다고 했다. 24개씩이나. 나는 24유로에 배송료 1,60유로, 도합 25,60유로를 페이팔로 보내주면 오늘내로 바늘을 배송하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코바늘 24개와 토스터를 바꿀 수 있을까요?"


하고 문의가 들어왔다. 나는 또 한참을 웃었다. 맞다, 이 분 물물교환 하시는 분이지... 사실 내게는 코바늘 24개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창고에 천 개 이상의 바늘이 썩어가고 있으므로 내키면 이분 한테, 아니 이분의 어머니한테 선물로 백 개 쯤 드려도 상관없다. 그럼 까짓거 코바늘 24개와 토스터를 교환하지 뭐. 그리리하여 그분의 이름과 배송지를 물었다.


이름은 동유럽(코소보) 여성의 이름이었다. 그 고객의 독일어가 약간 어눌한 것에서 외국인일 것이라고 눈치를 챘는데 이모티콘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데다 대답이 짧고 무뚝뚝해서 남자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어쩌면 전화통화를 하자고 했던 것은 타자가 느리거나 독일어를 쓰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였을 수도 있었겠다. 괜히 오해한 것 같아 혼자 미안해했다. 이름과 사는 곳을 알게되니 나는 그 고객에게 다시금 호기심이 생겼다. 그 많은 물건들은 왜 가지고 있냐고 물었더니 자기는 벼룩시장 판매업을 하는 사람인데 코로나로 인하여 벼룩시장이 안열려서 어쩔 수 없이 이베이에 물건을 올렸다고 했다. 물건은 잘 팔리냐고, 수입은 어떠냐고 물어보려다 초면에 실례인 것 같아 그만두었다.


물건은 오늘 집에 가서 싸서 내일 보낼 것이며 어머님께 선물로 뜨게바늘 몇 개 더 넣어서 보내겠다고 했더니 아주 기뻐했다. 나는 그분에게 관심이 생겨서 내 소개를 간단히 해주고 혹시 오늘 저녁때 잠깐 전화통화 가능할까요? 하고 문자를 보냈더니 거의 한 시간동안 대답이 없다가 통화가 불가능할 것 같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젠장.


나는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았다. 특히 왜 장작이 필요한 걸까? 3개월동안이나 장작이 필요했으면서 왜 가게에서 사지 않은 걸까? 접시처럼 생긴 자동차 브레이크는 도대체 어디서 구한 것일까? 그 많은 잡동사니 전자기기들은 혹시 내게 제안한 것 처럼 물물교환으로 구한 것일까? 코소보에서 독일까지는 전쟁통에 온것일까?  러시아 말은 할 줄 알까? 코소보에서는 키릴 문자를 쓸까? 물어볼 것이 이렇게 많은데 전화통화가 안된다고 하니... 어쩔 수 없지.


물건 배송을 끝낸 뒤에 혹시 벼룩시장에서 내 코바늘이 잘 팔리면 언제라도 연락하라고 쓸 참이다. 어머니가 아무리 뜨게질을 좋아해도 그렇지 24개의 코바늘이 필요하겠나. 분명 벼룩시장에 팔 요량으로 코바늘을 24개나 받은 거겠지. 다음 번엔 혹시나 코바늘이 더 필요하다고 한다면 그때 가봐서 쓸만한 물건이 있으면 물물교환을 할 요량이다.


집안을 한 번 휘 둘러보았다. 우리가 필요한 게 뭐가 있나? 행주? 양초? 라디오 시계?


아무튼.


내가 물물교환으로 가지게 될 토스터는 인터넷에 찾아보니 베코라는 회사의 제품으로 가격이 34,95유로였다. 토스터 중에 제일 저렴한 것으로는 10유로짜리가 있는데 34,95유로 짜리면 그래도 싸구려는 아닌거지. 배송비로 판매자가 5유로를 지불해야하니 결국 토스터 가격은 40유로다. 음하하하, 내게 엄청 남는 장사다. 버릴 뻔한 코바늘을 가지고 이렇게 멀쩡한 토스터로 교환하다니!


세상에 이런 살림꾼이 있나...


방만구 같으면 생각도 못할 일이지.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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