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쿠로스의 쾌락과 진정한 평온
최근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를 보면 '도파민 디톡스'나 '마인드셋', 그리고 고통을 직시하라는 철학 책들이 가득합니다. 겉보기엔 각기 다른 주제 같지만, 결국 그 밑바탕에는 '어떻게 해야 내 삶이 더 평안해질까?' 하는 현대인들의 치열한 고민이 깔려 있죠.
TV를 틀어도, SNS를 켜도 온통 각자의 화려하고 "행복한 삶"을 전시하느라 바쁩니다. 그래서일까요? 상담실을 찾는 내담자들은 역설적이게도 '행복하지 않아서' 불행해합니다.
"선생님, 남들은 다 행복하게 사는 것 같은데, 저만 왜 이렇게 무미건조할까요? 제가 뭘 잘못 살고 있는 걸까요?"
수년간 마음을 치유하며 제가 내린 결론은, 현대인에게 '행복'은 도달해야 할 목적지가 아니라,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숙제'가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이 지독한 강박을 깨뜨리기 위해, 쾌락주의자로 오해받아온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지혜를 빌려옵니다.
흔히 '에피쿠로스학파'라고 하면 술과 고기, 육체적 쾌락을 탐닉하는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것은 역사상 가장 큰 오해 중 하나입니다.
실제로 에피쿠로스는 물 한 잔과 보리 빵 한 조각만 있으면 "신도 부럽지 않다"고 말했던 소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말한 '쾌락(Hedone)'은 흥청망청 즐기는 짜릿한 자극이 아니라, "몸에 고통이 없고(Aponia), 마음이 혼란스럽지 않은 상태(Ataraxia)"를 의미했습니다.
상담실에서 저는 자극적인 즐거움(도파민)을 쫓다 지친 내담자들에게 말합니다. "진짜 행복은 '플러스(+)'가 아니라 '마이너스(-)'에 있습니다." 로또에 당첨되거나 승진하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배고프지 않고, 춥지 않고, 누군가에게 미움받지 않아 마음이 편안한 상태. 그 '무탈함'이 바로 최고의 쾌락이라는 것입니다.
현대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입니다. "더 많이 가지면 더 행복해질 거야." (행복 = 소유 / 욕망)
우리는 이 방정식에서 '소유(분자)'를 늘리기 위해 뼈 빠지게 일합니다. 하지만 소유가 늘어날수록 '욕망(분모)'은 더 빠른 속도로 커지기에, 우리는 영원히 만족할 수 없는 쳇바퀴를 돌게 됩니다.
에피쿠로스의 해법은 간단하고도 혁명적입니다. "행복해지고 싶은가? 그렇다면 돈을 늘리려 하지 말고, 욕망을 줄여라."
제가 만난 가장 평온한 내담자들은 거창한 꿈을 이룬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대신 남과 비교하는 욕망,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분모(욕망)를 '지금 가진 것' 수준으로 낮추는 순간, 행복 값은 순식간에 1(만족)이 됩니다.
우리는 행복을 가슴이 터질 듯한 환희나 벅찬 감동으로 착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격정적인 감정은 반드시 그만큼의 허무와 고통을 동반합니다.
에피쿠로스가 추구한 최고의 행복 '아타락시아(Ataraxia)'는 '잔잔한 호수와 같은 평정심'입니다. 돌을 던져도 파문이 크게 일지 않는 단단하고 고요한 마음 상태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짜 행복입니다.
"오늘 특별히 나쁜 일이 없었나요? 그렇다면 당신은 오늘 아주 행복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 일도 없는 하루'를 지루해하지만, 사실 그것이야말로 재난과 고통이 비켜간 기적 같은 상태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에피쿠로스는 자신의 정원에서 친구들과 모여 소박한 음식을 나누고 철학적인 대화를 나누는 것을 인생 최고의 기쁨으로 여겼습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비싼 오마카세가 아니더라도 마음 맞는 친구와 나누는 떡볶이 한 접시, 따뜻한 햇살 아래서의 산책, 잠들기 전 읽는 책 한 구절. 이 사소한 것들이 주는 '잔잔한 기쁨'을 음미할 줄 아는 능력이 곧 행복 능력입니다.
행복해야 한다는 숙제를 이제 그만 찢어버리십시오. 당신은 무언가를 더 성취해서 행복해져야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고통이 없다면, 당신은 이미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