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들은 말이 없어야 한다
젊고 호기로운 남성 하나가 살기 딱 좋은 이 집에서 -나의 첫 전셋집에서- 홀로 서기를 시작한 지도 어엿 7년 하고도 반년이 다 되어갑니다. 군 전역 이후 내 조막만 한 예산에 맞춘 이 작은 집은, 독립 12년 차 만에 처음으로 집을 꾸밀 수 있는 여유가 생긴 내 주머니사정과 맞물려 이래저래 많이도 바뀌어 왔습니다.
수번의 변화 속에서도 이 집의 탄생 첫 순간부터 지금까지도 자리를 잃지 않고 계속 있어 준 -이를테면 개국 공신과 같은- 이들도 있답니다. 벌써 수년 째 가까이 붙어 살아왔기에 언제나같이 계속 같이 있어줄 줄만 알았건만.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 하나 없듯이, 자연스레 나의 옛 것들은 하나씩 나를 떠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나 봅니다.
예를 들면 얼마 전에 고장 나버린 세탁기 같은 것들이 있겠습니다. 나 죽을 때까지 영원히 나의 빨래를 맡아 줄 것 만 같았던 그 녀석이 뻗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첫 가전 마련에 부담 스러 중고로 구입한 올해로 연세가 15세 되시는 우리 할아버지 세탁기는 그렇게 수리 불가 판정을 받고 내 곁을 떠나갔습니다.
이 외에도 얼마나 많습니까? 처음으로 같이 살 집이랍시고 맛있는 거 많이 해 먹자는 등 Y에게 선물 받은 에어프라이기는 얼마나 부려 먹었는지 이가 다 나가 너덜너덜 해졌고, 분수에 없는 고양이 털을 과식해 버린 청소기는 이제 소화불량으로 청소기로서의 제 노릇을 하지도 못하고 있으니.
나는 그들에게 생명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하는 괴짜는 아닙니다. 다만, 지난 세월 간의 내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는 이들이었기에 내 일부라고 생각하며, 그들이 하나하나 죽어감에 있어서 나의 그 무언가도 같이 죽어감을 느낍니다. 사물 따위에 자기 연민 비슷한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 연민이라 함은 대체로 이런 것들입니다. 그네들을 처음 가족으로 들였을 때 가졌던 일련의 마음가짐이라던지, 다짐이라던지. 세월이 지남에 따라 무수히 변해버린 나의 내면 그 무언가 것들 말입니다. 그들이 죽어감에 따라 나의 옛것들 또한 같이 죽어갔음을 느끼다 보면 '아, 내가 이렇게 많이 변했구나' 하며 생각에 빠지다, 결국 결론은 자기 연민이었던 것 이더랍니다.
분명히 예전에는 이러지 않았는데, 지금은 왜 이러지?
옛 것을 잘 아껴주며 살았다면 지금은 이렇지 않지 않았을까?
죽어가는 것들은 대체로 서로를 괴롭혀왔습니다. 첫 만남의 그 설레는 기분은 온데간데 없어지고, 익숙함 속에서 어떻게든 관계를 이어 나가야만 하는 그 처절함만이 남아 서로를 괴롭혔답니다. 그 어딘가에 익어버린 편리함이 서로에게 독이 되는 걸 알면서도 - 나이가 들어 세탁도 탈수도 제대로 하지 못하지만 손에 익어 버릴 수 없었던, 그런 나 때문에 꾸역꾸역 세탁을 해나가던 나의 할아버지 세탁기처럼 말입니다.
옛것을 과감히 버리고 새것에 익숙해지기로 다짐을 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현재를 괴롭히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나는 이를 조금 늦게 배웠습니다. 그저 수명이 다한 것들을 감사히 놓아주는 법을요.
그 일련의 과정으로 어제는 새 세탁기를 결제해 버렸습니다. 300만 원씩이나 하는 거금을 들였지만 이제는 보내드렸습니다, 우리 할아버지 세탁기.
그 일련의 과정으로 어제는 과감히 Y와의 연락을 끊었습니다. 서로이 끝까지 엄청나게 질척대었지만 이제는 Y를 보내주기로 판단한 것입니다.
정든 것들이 떠나간 자리에는 언제나 적막이 남지만, 그 적막 속에서야 비로소 새로운 무언가가 자라나더군요.
다음은 이가 다 나간 에어프라이기도 버려내고, 소화불량 청소기도 과감히 버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새것을 들이고, 새것에 다시 익숙해지고. 그것이 헌것이 되면 다시 새것을 들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