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의 중국

중국견문록

by 후뉴


11월 11일, 빼빼로데이가 다가온다. 동시에 이 날은 중국의 광군제(光棍節, single's day)이며 최대의 쇼핑시즌이다. 찬바람이 불 때쯤 중국 전역에서 11.11을 걸고 세일을 시작한다. 이 날 하루만 소비심리를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약 2주 전부터 슬슬 입질이 시작된다.


현지인들은 대부분 쌍 십일(双十一, double 11)이라고 부른다. 문자 그대로 11이 쌍으로 붙어있어 쌍십일이다.


문득 한국에서는 광군제를 어떻게 소개할지가 궁금해서 지식백과에 쳐 봤다. 그 결과, 광군의 뜻이 '홀아비, 독신남' 이기 때문에 11.11은 중국에서 솔로를 위한 날이란다. 추가로 2009년 마윈이 타오바오의 매출을 높이기 위해 광군제를 만들었다고도 나온다. '외로운 솔로들이여, 겨울도 다가오는데 이 날 하루만큼은 갖고 싶은 것, 싸게 다 가져가라!' 뭐 이런 마케팅이다.


중국 생활을 막 시작할 무렵, 우리와 다른 몇 가지의 기념일 문화가 신기했다.

첫째, 중국은 크리스마스를 그다지 중요하게 보내지 않는다. 한국만큼 모두에게 특별한 날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애인끼리 크리스마스에 데이트를 하지 않아도 크게 이상할 것이 없다. 대신 사과(apple)를 선물로 주고받는다.

빨간 사과는 산타클로스를 연상케 하고 또, 사과 : '핑궈(苹果)'가 평안을 의미하는 '핑안(平安)'과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크리스마스를 좀 더 홀리 하게 보내는 느낌이다.



인구 대비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중국에도 기독교인과 교회가 꽤 있다. 하지만 중국은 불교 인구가 대다수이기 때문에 그런지 크리스마스를 굳이 성대하게 보내지 않는다. 무엇보다 12월 25일이 빨간 날이 아니라서 그냥 평소처럼 출퇴근을 하고 지나간다. 전 세계가 '메리 크리스마스'라며 들뜨는데, 이들은 시큰둥하다.

중국은 특유의 전통적이며 동양적인 문화가 일상에 배어 있다. 예를 들면, 나이 들어 보이는 황금이나 옥으로 된 큰 장신구를 착용하는 젊은이들이 많다.

또, 간식을 먹어도 뭐랄까, 뭔가 좀 더 향토적인 메뉴들이 많다. 외래문화가 한국만큼 많이 침투해 있지만 전통 또한 여전히 살아있는 느낌이다.

도심 곳곳의 건축과 도시 미화도 그렇다. 현대와 전통이 공존해서,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눈이 즐겁다. 그 맛에 나도 혼자서 8년의 시간을 견딜 수 있었다.


둘째, 중국은 남녀관계에서 챙겨야 할 기념일이 참 많고, 남자는 결혼에 골인하기 전까지 기념일 때문에 돈이 많이 든다. 분기별로 찾아오는 기념일마다 여친이나 부인에게 고가의 선물을 주거나, 용돈을 주거나 둘 다 한다. 그리고 여성은 그것을 sns에 전시한다. 선물과 꽃다발은 물론, 위챗으로 받은 홍바오(용돈)도 금액을 캡처해서 올린다.

아, 혹시 이러한 남녀관계의 '용돈 인증 문화'가 한국에도 있다면 유감이다. 나는 sns도 안 할뿐더러, 한국에서의 연애는 십 년 전이 마지막이다;;


셋째, 11월 11일은 솔로가 아닌 연인을 위한 기념일이며, 세일&쇼핑의 의미가 더 크다. 물론 빼빼로도 주고받지 않는다.

지식백과 작성자가 아마도 중국에 살아보지 않았나 보다. 광군제 때문인지 11.11을 솔로데이로 해석한 것을 보니 말이다. 중국인들은 이 날을 11+11의 개념, 둘이 같이 서 있는 커플의 모습으로 여긴다. 여기에 대대적인 소비(선물과 여행)력을 추가하면 된다. 솔로들은 11.11라고 해서 특별히 뭘 하지는 않는다. 특히 이 날 동성친구끼리 저녁 약속을 잡거나 혼자 외롭게 다니면 은근 배알이 꼬인다. 거리와 식당엔 온통 꽃다발을 든 커플들 뿐이다.


징동(쇼핑몰)전국열애절 : 열애를 축하하며 세일 중(11/1-11)

기념일 홍바오는 상대방과의 관계나 자신의 경제적 상황에 맞게 한다. 꼭 연인이 아니더라도 친구나 동료끼리는 11.11 또는 111.1위안(한화 2천원 또는 2만원), 남친이 여친에게는 1111위안(한화 약 20만원), 부자들은 11111위안(한화 약 200만원). 다양한 금액으로 주고받는다.


연인을 위한 또 다른 기념일은 5월 20일인데, 줄여서 520(우알링)이라고 부른다. '우알링'이 '사랑해'의 '워 아이 니(我爱你)'와 비슷해서 기념일이 되었다.

이 날은 5.20 / 520 / 5200위안으로 홍바오를 보낸다.


중국에서 돈은 곧 선물이다. 회사 단톡방에서 상사가 '오늘도 파이팅!' 이라며 홍바오를 뿌리면, 직원들이 몇 백원에서 몇 천 원씩 나눠 받으며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한다. 팀의 관리자는 영업 성과가 좋은 날에도, 안 좋은 날에도 재량껏 홍바오를 쏘며 직원들의 사기를 높인다. 상사의 지갑 걱정은 할 필요 없다. 상사는 그들의 윗선에게 더 큰 홍바오를 받는다.


특히 남녀관계에서는 생일과 2월 14일, 5월 20일, 7월 7일, 11월 11일을 빠짐없이 챙긴다. 대부분 남자가 여자에게 돈과 꽃, 선물을 준다. 물론, 결혼에 골인하면 점진적으로 생략한다.

나는 처음에 중국 여성들이 썸남 또는 남친, 남편에게 받은 용돈을 sns에 인증하는 것을 보고는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이유는 굳이 얘기하지 않겠다.


나도 한 번 중국 남자에게 적지 않은 돈을 받을 뻔한 적이 있다. 몇 년 전 중국에서의 어느 날, 거래처에게 받을 잔금이 한화 200만원 정도 있었는데, 거래처 대표가 입금 날짜를 어겼다. 그는 코로나로 경기도 어렵고, 최근에 월세도 1년 치를 연장하느라(중국은 집이나 사업장을 임대할 때 6개월 또는 1년 치의 월세를 미리 낸다) 당장 돈이 없으니, 다음 달에 꼭 주겠다는 것이다. 나는 참지 못하고 중국인 썸남에게 연락했다. 그는 상해 토박이라서 금융에 해박했고, 또 주로 회사의 계약을 성사시키는 업무를 했다. 이런 그가 돈거래 및 회수에 능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SOS를 친 것이다.


나는 그에게 못 받은 잔금의 액수와 상황을 설명한 다음, 이대로 내용증명을 보내고 싶은데 문어체로 좀 엄진근하게 써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일상 대화의 중국어와 서류작성 중국어에는 어법과 단어의 차이가 크다.

썸남은 당장 그 사장의 연락처를 달라고 했다. 자신이 연락해서 대신 돈을 받아 주겠다고 것이다. 나는 그 방법은 싫다고 거절했고, 그냥 문장만 작성해서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그는 곧, 한화 200만원 가량의 홍바오를 내게 보내면서, "일단 이 돈을 받고 안심하고 있어, 내가 그에게 연락할 테니 번호를 알려줘."라고 했다.

그때까지 그와 나의 관계는 서너 번 식사를 했을 뿐이었다. 서로의 거리가 80km가 넘어 자주 만나기도, 연인으로 발전하기도 애매한 사이였다.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러려고 도움을 구한 게 아닌데... 하지만 그때 나는 이미 중국 생활 n년차였던 터라, '듣던 대로 참 중국 남자답다'라며 혼자 웃어넘겼다. 물론 나는 정중히 거절하며 홍바오를 수령하지 않았고, 내가 알아서 해결해 보겠다며 오히려 그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1시간 뒤, 나는 다른 방법으로 거래처 대표에게 잔금을 받을 수 있었다. 여러 명에게 돈을 빌려 줬다가 몇 년에 걸쳐 모두 받아 낸 조선족 친구의 도움으로 말이다. 회수한 방법은 다음 기회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