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하고 특별한 아이와 나만의 시간
아이가 태어나고 99일째 되는 날까지, 남들이 자는 시간에 맘마를 먹이는 '새벽수유'가 지속되었다. 신생아들은 1시간 반~2시간이 지나면 배고파하기 때문에 밤 중에 수시로 수유를 해야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아이가 깨어나 우는 것일 수 있어서 배고픈 것이 맞는지 파악한 후 수유를 하고는 했다.
모유수유를 부득이하게 한 달만 하고 완분으로 넘어가면서 초반에는 남편과 내가 번갈아가며 새벽수유를 하다가, 나중에는 내가 수유하고 남편이 트림시키는 순서로 변경됐다. 이내는 남편은 안방에서 최대한 잠을 자고 내가 아이 방바닥에 토퍼를 깔고 함께 자며 새벽수유를 도맡아 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산모들은 새벽수유로 인해 수면이 부족해지고, 그 수면량 부족으로 인해 피로가 쌓여 다음날이 힘들어지거나 성격적으로 예민해지게 하는 등 갖가지 부정적인 상황으로 이어진다고는 한다. 특히나 모유수유를 하는 대단한 산모들은 수유 바통터치가 안되기 때문에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한다.
아이가 울면 바로 벌떡 일어날 것 같던 남편은 생각보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못 들었는데 오히려 평소 잠귀가 어두운 나는 아이의 달라진 숨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 일어나고는 했다. 몇 번이고 다시 일어나 아이의 얼굴을 확인하고, 긴가민가 할 때면 귀를 가까이 대고 아이의 숨소리를 들었다. 일어나는 것, 수유하는 것, 트림시키는 것, 다시 재우는 것, 그리고 잠시 후 아이의 소리에 다시 깨어나는 것의 반복은 당연히 졸리고 피곤했다. 다만 내가 '생각보다 안 힘든데?' 했던 건 그동안 내가 해왔던 일들의 성격 때문인 것 같다.
미대 나온 사람들, 그리고 나처럼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들은 아는 그 단어 '야작(야간작업)' 덕분에 한밤중에 무언가를 한다는 것에 꽤나 익숙해져 있다. 사람들이 깨어나 있지 않은 시간에 그림을 그리거나 디자인 작업을 하면 방해받지 않는 상태에서 나의 창의력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낮보다는 밤에 작업하는 사람들이 많다.
게다가 4년 이상 근무했던 광고대행사에서는 해외 지사나 협력사와의 시차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 준비하고 컨퍼런스콜을 하는 일도 다반사였다. 콜을 마치고 나면 정신이 완전히 깨버려서 다시 잠들지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날을 자주 새고는 했다. 해외 출장 중에는 또 한국에서 기다리고 계실 상사에게 보고를 위해 현지 시간 새벽에도 뜬 눈으로 보고서를 작성하고 연락을 취하고는 했었다.
뭐 이런 가지가지의 경험들로, 나에게 새벽 수유는 그다지 챌린징 하지는 않았다. 아기가 알람시계처럼 울면 벌떡 일어나 사태를 파악하고, 원인이 밝혀졌으면 그에 따른 대응을 하면 되는 거였다. 평소 업무의 성질이 어떠냐에 따라 새벽수유를 그다지 겁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성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렇고, 감성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내 아이와 내가 단둘이 오롯이 고요 속에서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희미한 수유등 불빛이 내려앉은 작은 내 아기가 오물오물하며 맘마를 먹을 때, 아이의 눈썹, 솜털, 눈, 코, 입, 볼, 이마, 귀, 손을 하나하나 뜯어볼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게다가 유독 따끈따끈한 정수리와 뒤통수 온도에 나의 몸과 마음이 함께 노곤노곤 풀리고 힐링되는 느낌이다. 이 작디작고 소중한 생명체가 나에게 모든 걸 맡긴 채, 배가 불러올수록 스르륵 눈을 감는다. 그러다 가끔 행복한 듯 배냇웃음이라도 지으면 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두렵기만 했던 임신과 출산을 무사히 해 낸 나 자신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이 큰 우주 속에 이 아이와 나, 단 둘이만 있는 것 같은 기적 같은 새벽 시간이 된다.
이 기적 같은 새벽 수유가 두세 번 정도였다가, 한 번으로 줄었다가, 격일이 되었다가, 이내는 없어지고 말았다. 수유일지를 다시 펼쳐보니 가장 마지막 새벽 수유는 아기가 99일 되던 날 새벽 4시였다. 문득 서운함이 밀려오고, 그렇게 우리의 한 챕터가 또 지나가버린 것 같아 씁쓸했다. 앞으로 아이와의 모든 '처음'이 어느 순간 '마지막'이 될 거고, 그다음의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겠지.
내게는 힘들기보다는 특별했던 새벽수유라서 지난 99일 간이 참 행복했다. 앞으로 아이가 줄 행복은 지금까지의 것보다 더 크고 무궁무진하겠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내 아들과 나의 새벽 시간을 이 글로써 한번 더 머릿속에, 가슴속에 잊지 않게 담아두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