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미래의 내가 가질 단 하나의 소원
오늘은 아이를 안고 창밖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해주는데 문득, 나이 육십이 넘은 내가 얼마나 이 하루를 되살고 싶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내 품이 이 세상 전부인 것처럼 내 옷깃을 움켜쥐고 온힘을 다해 안겨있는 이 아이가 점점 자라 나에게 달려오다가 이내 다른데로 달려가고, 내가 없으면 잠을 못들다가 이내 방 문을 닫아야만 자유로워지고, 그러다 점점 언제 마지막으로 안아봤는지 언제 마지막으로 손 잡아봤는지 모르겠는 그 먼 어느날이 오고야 말겠지. 그러면 나는 분명, ‘하루만 딱 그때를 살게 해주세요’하고 하늘에 기도할 것 같다.
그렇게 돌아와 오늘 하루를 살게 된다면 우리 아가의 모든 것을 최선을 다해 담고 어루만지며 보낼거고, 지나가는 일분 일초가 야속하게 하루가 훌쩍 지나가버릴 것이 분명하다. 얼마나 그 하루를 붙잡고 싶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아이와 함께 보내는 하루가 참 짧다. 잠이 부족해서, 애가 보채서, 체력이 딸려서 지친 내 몸과 마음 따위 곱게 접어 치워두고 다신 오지 않을 우리 아가와 둘만의 시간을 한껏 들이마시게 된다. 모두가 힘들다고 하는 육아, 그거 참 별 거 아닌 게 된다.
이런다고 오늘날에 대한 미련이 적고 후회가 적어 돌아올 마음이 작아지겠냐마는 그래도 ‘시간이 왜 이렇게 안 가지’, ‘빨리 컸으면 좋겠다’, 와 같은 생각을 했을 때와는 분명 다른 하루, 다른 인생이 될 것이다.
그래서, 졸릴 때 눕혀 등대고 침대에서 재우는 연습을 하고 있지만 낮잠 한텀은 내 품에 안겨서 재운다. 수면교육도 교육이지만, 이렇게 지나가버릴 하루에 한번이라도 더 우리 아가를 안아주고 엄마가 옆에 있다는 걸 체온으로 알려주고 싶다. 내 심장과 아이의 심장이 맞닿아 함께 뛰는 기적 같은 시간이다.
아들아. 네가 성인이 되어 우리가 더 이상 손을 잡고 걷지 않더라도, 오늘처럼 빤히 서로를 쳐다보며 마음으로 대화하지 않더라도, 종종 서로를 두 팔 가득 벌려 안아주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