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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 Mar 21. 2024

왜 모두 쥐가 되는 거지?

탄력, 탄력, 그놈의 탄력

그 애는 잘생기고, 웃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영화 <귀여운 여인>의 주인공 리처드 기어처럼 웃는 사람이었다. 나와 달리 빠짝 마른 몸인 그 애는 밥을 먹을 때도 아주 천천히 먹었다. 밥풀이 숟가락을 벗어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아니 조금 적다시피 떼어 입에 쏙 넣고, 오물오물 소리 나지 않게 씹어 먹었다. 돈가스 하나를 먹을 때도 나이프와 포크를 움직이는 손놀림이 어찌나 단정한지 그 애와 밥을 먹을 때는 나도 따라 속도를 늦추고, 혹여 숟가락이 접시에 닿아 소리를 내지 않을까 조심하며 먹었다.


남자 선배들하고 밥을 먹을 때면 막노동하고 와서 밥 먹는 사람처럼 우적우적 먹는 모습을 자주 보았는데, 먹는 데 있어서 그 애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사람이었다.

나는 특별히 식사 예절을 부모에게 배운 것은 아니었지만 쩝쩝대며 먹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사실 아빠랑 같이 식사를 할 때면 쩝쩝거리는 소리가 거슬려서 맘속으로 인상을 쓰곤 했다. 그뿐 아니라 치아가 불편한 할머니랑 먹을 때도 어딘가 입속에서 음식이 새어나가서 나는 소리가 들려서 상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그러니 그렇게 단정하게 밥을 먹는 그 애가 더 맘에 들었다. 멋진 생김새에 식사 예절까지 그 애는 정말 최고의 이상형이었다.        

   



“왜 그렇게 이상한 소리를 내?”

‘훌훌 훌훌’ 밥을 떠서 입안에 넣었는데 입술은 닫히지 않고, 여전히 벌려져 있다. 그리고 음식을 씹는 소리도 아닌 훌훌 거리는 바람 소리가 난다. 다른 음식을 먹을 때도 이런 현상은 계속된다. 나는 참지 못하고 묻고 만다. 남편의 답은 요상하다.

“뜨거워서 그래, 뜨거워서.”

“뜨거우면 식혀서 먹으면 되지. 그게 뭐야?”

남편은 별다른 대답도 없이 연신 그렇게 밥을 먹는다.

나는 젊은 시절 남편의 밥 먹는 모습을 떠올린다. 단정한 손놀림으로 나이프와 포크를 움직이던 그 사람은 어디 있단 말인가? 보통 여자들이 내숭을 떤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 반대인 건가? 연애할 때는 그렇게 좋던 식사 예절은 모두 내숭이었던 거야, 뭐야? 난 속으로 투덜댄다. 하지만 말로 내뱉어선 안 된다. 먹을 땐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밥도 편하게 못 먹게 한다고 화를 낼지 모른다.

그런데 사실 남편만 탓할 수도 없다. 나도 언젠가부터 음식을 먹다가 한순간에 목이 막혀 동동대곤 한다. 온몸에 물기와 윤기는 사라진 듯이 음식을 씹고, 삼키는 것이 공을 들여야 하는 일이 되었다. 예전에는 그냥 대충 씹어서 삼켜도 잘만 넘어갔는데 이제는 그랬다가는 급사라도 할 듯이 숨이 막혀오고, 가끔은 몇 시간이 지나도 속이 불편해진다. 우리의 식사 예절은 이제 조금 더 느슨해지고, 젊은이들이 보기에는 기궤하게 변하고 있었다.   

   



“뭐야, 모두 쥐라도 된 거야?”

삼삼오오 어울려 식당을 나오던 무리가 서로를 바라보고 웃는다. 한 손에 이쑤시개를 든 것도 모자라 이 사이에 낀 음식물을 간단히 해결하려고 이 사이로 바람을 불어대다 보니, 찍찍 쥐소리가 나는 것이다. 쥐소리로 해결되지 않을 때면 손에 든 이쑤시개가 출동할 것이다. 나이 든 사람이 모이면 일어나는 흔한 일이다.


나도 언젠가부터 음식물이 이에 끼기 시작했다. 식사를 하고 나면 함께 어울려 카페에 가는 일이 많은데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면서도 이 사이에 낀 음식물 때문에 불편했다. 그렇다고 함부로 찍찍거릴 수도 없었다. 나는 다른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게 입속에서 혼자만의 전쟁을 벌였다.

슬금슬금 혀를 놀려서 이 사이를 훑고, 입을 앙 다문 채로 압력을 높여 이에 낀 음식물 빼기에 나섰다. 하지만 그건 간단하게 되는 일이 아니었다. 혼자 입속 싸움에 열중하다가 눈앞 상대의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 지경에 이르면, 안 되겠다 싶어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하고, 숨어 들어가서 입속 정리를 하고 나왔다. 하루 삼시 세끼라고 하니 이런 일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일어났다. 참기 힘들게 불편했다. 나는 치과에 간 김에 의사에게 물었다.


“어디 불편하신 데 없지요?”

“예, 이는 다 괜찮은데요. 음식물이 자꾸 끼는 것이 너무 불편해요. 해결 방법이 없을까요?”

나의 질문에 의사는 많이 듣는 질문이라는 듯이 웃었다. 그리고 자기 팔뚝을 보여주며 다른 손으로 살짝 내리쳤다. 찰싹 소리와 함께 팔뚝살이 출렁였다. 강한 울림도 아니었는데 이리저리 힘없이 말이다.

“나이가 들면 피부에 탄력이 떨어져요. 얼굴만 피부 탄력을 고민하는데 온몸의 살들이 탄력이 떨어져 힘을 잃지요.”

충분히 이해가 되는 말이었다.

“아이들이 이쑤시개로 이 쑤시는 거 보신 적 없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릴 적 기억에 음식물이 끼어서 답답했던 일은 없었다.

“그게 다 탄력 때문이에요. 아이들은 잇몸도 탱탱해서 이 사이에 낀 음식물을 튕겨내요. 나이 든 사람은 그걸 못하는 거죠.”

아, 탄력이 그런 거였구나. 나는 무릎을 치는 깨달음을 느꼈다. 사실 잠을 자고 일어나도 한동안 베개 눌린 자국이 사라지지 않아서 고민스러울 때가 있다.


우리의 삶은 세월과 함께 사라진 탄력으로 모두 달라지고 있었다. 밥을 먹고 나면 이쑤시개를 찾는 어른이 이해되지 않는 아이들도 나이가 들면 식후 필수품이 이쑤시개임을 알게 될 것이었다. 그 순간 나는 아빠와 시아버지의 식후 모습이 떠올랐다. 두 분은 밥을 먹고 나서 이쑤시개가 아니라 젓가락으로 입안 정리를 하셨었다. 나는 그 모습에 밥맛을 잃곤 했는데 의사 선생님의 설명을 생각한다면 그 모습은 나의 미래일 수도 있었다. 어느 날부터 이쑤시개가 당연했던 것처럼 젓가락이 필요해질지 모르는 거였다. 아, 노화는 아직도 갈 길이 먼 거였구나. 인간의 교양과 존엄은 잃지 않는 선에서 멈췄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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