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토 Mar 14. 2024

점점 공손해집니다

1. 공손해야 어른

난 오른손잡이다. 

힘 조절을 하고, 균형을 맞추는 일을 언제나 오른손으로 한다.

그러다 보니 어떤 일이 건 먼저 나서서 하는 것도 오른손이었다. 

오른손이 왼손보다 혹사당하고 있다는 것은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입시 스트레스가 몸으로 전해지던 고등학생 시절, 팔이 너무 무겁게 느껴졌다. 

‘이렇게 팔이 아픈데 쓸모없는 왼팔은 잘라내도 되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할 정도로 나는 오른손에 의지해 살았다. 

그런 영향이었을까? 

아이를 키우며 힘을 쓰고, 힘을 쓰다 보니 오른쪽 팔힘이 세지기 시작했다. 

팔뚝도 더 두꺼워졌다. 팔목도.

난 그렇게 내 오른팔이 강해지는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오른 손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마감 일정이 급해서 자판을 두드리고, 마우스를 움직이는 것을 쉬지 않고 이어가자 

오른손 검지 손가락 마디가 쑤셔왔다. 

사실 난 오래전부터 오른손을 베개 밑이나 엉덩이 밑에 넣어 누르고 잠을 잤다. 

그렇게 해야 아픔이 덜했고, 좀 편안했기 때문이다. 

그런 본능적인 움직임을 잊어버리고, 쉬지 않고 손을 쓰고 손가락을 놀리다 결국 탈이 난 거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픈 손가락과 손목을 아끼니 그 아픔이 팔꿈치로 갔다. 

골프도, 테니스도 해본 적이 없는데 ‘엘보’가 왔다. 

자다가 이불자락 하나 당겨 덮기도 버거웠다. 

실수로라도 팔꿈치를 스치면 ‘아!’ 하며 고통스러워했다. 

나는 갑옷을 입듯이 팔꿈치에 보호대를 차고 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른팔을 아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왼팔도 같은 증세가 나타났다. 

그래도 왼팔은 아직 여력이 있었는지 팔 쓰는 걸 조심하자 나아졌다. 

하지만 오른팔은 아니었다. 

치료를 받아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가끔 무서운 기분이 들었다. 

'그냥 아픈 게 아닌 건 아닐까?'

어떻게 이렇게 계속 아플 수 있나 싶을 때 그랬다. 

오른팔에게 미안했다.  

내가 질 무게를 모두 오른팔에 떠넘긴 거 같아서. 

왼팔에게도 미안했다. 

알게 모르게 애쓰고 있었는데 너무 무시한 거 같아서. 

    



팔이 아픈 덕분에 나는 아주 다소곳해졌다. 

이제 웬만한 건 한 손으로 들지 않는다. 

커피를 내릴 때면, 전기 포트의 손잡이를 오른손으로 잡고, 

왼손으로 밑을 받쳐서 물을 따른다. 

그렇게 공손할 수가 없다. 

평생 내게 보이지 않았던 공손함이다. 

난 앞으로 이런 모습으로 살아야 할 거 같다. 

뭐든 두 손으로! 

두 손이 서로 도와 무게와 짐을 덜어

무리하지 않게 말이다. 

내 삶의 모습도 왼팔과 오른팔을 쓰듯이 조심하고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      

나이가 들면 모두 장애인이 된다고 말한다. 

이 나이에 실수로 넘어지기라도 하면 바로 장애인이 되는 거라고도 말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몸에 하나둘씩 불편한 것이 생기게 마련이고.

그래서 움직임이 둔해지고 불편해지는 장애가 생긴다. 

비오는 날,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던 친구는 넘어져서 이른 나이에 무릎 수술을 하고 말았다. 

여전히 굽 놓은 신발을 신기는 하지만 멀쩡히 걷다가도 계단이 나오면 주춤한다. 

그리고 내가 전기 포트를 다소곳이 잡아 물을 따르듯

다소곳이 천천히 계단을 내려간다. 

차 트렁크에서 급하게 물건을 꺼내던 친구도 허리를 삐끗하고 나서는 아주 공손해졌다. 

카페에 가면 의자를 조심히 빼서 살며시 앉고, 또 천천히 일어나 자기가 앉았던 의자를 제자리로 옮겨둔다.

 우리는 모두 조금씩 공손해졌다. 그리고 공손해진 몸놀림만큼 마음도 공손해지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공손함은 필수다.

우리 사회는 나이로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이 여전히 너무 많다. 

많은 나이가 무기가 되곤 해서, '나이가 깡패'라는 말도 하곤 한다. 

제대로 나이 먹은 어른이라면 나이를 무기로 해서는 안된다. 

공손한 마음으로 행동도 생각도 가다듬어야 그나마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거 아닌가 싶다. 

이전 01화 프롤로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