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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 Apr 04. 2024

그럴 수밖에 없어서 그래!

이해할 수 없는 세 가지

   

젊은 날,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노인들의 행동이 있었다. 절대 이해할 수 없다는 건, 쉽게 말하면 진저리 치는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길에서 벽이나 땅을 향해 ‘팽’ 하니 코를 푸는 거였고,

두 번째는 전철에서 막무가내로 자리를 차지하는 거였으며,

세 번째는 아무 때나 참견하고, 가르치려 드는 거였다.


오래전 세상에는 계몽 운동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뒤이어 캠페인이라는 것도 있었다.

근현대로 들어서며 달라지는 세상에 맞춰 생각과 삶의 방식을 바꾸기 위해 계몽운동을 펼치고, 사회가 공통으로 요구하는 방향으로 캠페인을 펼쳐 국민을 가르쳤다. 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여전히 길바닥에서 한쪽 코를 막고 ‘팽’ 하니 코를 푸는 어르신이 많았다. 그리고 요즘에도 그렇게 코를 푸는 어르신이 가끔 있다.


앞에 가는 어르신이 그리 코를 풀 때면, 어린 나는 진저리를 치곤 했다. 휴지를 들고 코를 감싸서 풀면 될 텐데 왜 저러는 걸까?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더러운 짓을 집 밖에서도 서슴없이 한다며 인상을 썼다.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어가던 어느 날이었다. 샤워를 하며 코를 풀려고 하는데 쉬이 되지 않았다. 나이 들고 보니, 코를 푸는 힘도 온전히 써지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한쪽 손을 막고 한쪽씩 코를 풀었다. 그랬더니 수월했다. 나는 순간 그 옛날 내가 보았던 어르신이 생각났다.

‘이렇게밖에 되지 않아서 그랬던 거구나. 그래서 그랬어.’

나는 나이 든 노인의 행동이 주책이나 이기심 때문만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실제로 사람은 나이 들며 몸에 수분 유지 기능이 떨어진다고 한다. 노화로 인해 코와 콧물을 생성하는 점액 분비에 변화가 생기는데, 점액의 양과 질이 달라지니 자연히 문제가 생기는 거다. 점액은 코를 보호하고 수분 유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콧물의 농도가 짙어져 쉬이 코를 풀 수 없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온몸에 힘이 떨어져 코 푸는 힘도 줄어드는데 콧물의 농도까지 짙어지니 이중고를 겪는 셈이다.


수분 유지 기능의 저하로 생기는 흉한 모습은 또 있다. 바로 책장을 넘길 때 손에 침을 바르는 거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껌을 짝짝 씹으며, 손가락에 침을 묻혀 돈을 세는 모습으로 주책맞은 사람을 표현할 때가 있다. 이렇게 손가락에 침을 바르는 모습은 꼴사나운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손가락이 입에 가 닿았다. 다급하게 책장을 넘기려는데 잘 안될 때였다. 손에 물기가 사라지니 종이를 넘기는 일이 어려워진 것이다. 되도록 침을 바르지 않고 넘기려고 신경을 쓰고 애를 쓸 뿐 이런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사실 노화로 사라진 윤기와 물기에 대한 이야기라면 하루 종일이라도 할 수 있다. 나이 들고 나서는 여름이라고 해도 편하게 맨발로 다니지 못했다. 맨발을 드러내려면 반드시 발뒤꿈치를 살펴서 정리해야 한다. 목욕탕에서 발뒤꿈치를 바닥에 문지르는 어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뒤꿈치 밀기는 목욕의 필수 코스다. 간단한 샤워로는 발뒤꿈치의 각질을 해결할 수 없다. 공을 들여 각질을 밀고, 다시 공을 들여 오일을 발라야 그나마 매끈한 뒤꿈치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런데 가끔 각질 있는 뒤꿈치가 편할 때도 있다. 거친 뒤꿈치로 다른 쪽 다리를 문지르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적당한 강도로 긁어주어 살이 빨게 질 염려도 없어 좋다. 이건 젊은이는 모르는 노화의 쾌감이다. 하지만 쾌감에 빠져 교양과 품위를 잃지 않게 늘 조심해야 할 것이다.




전철에서 자리를 찾는 노인을 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전철마다 노약자석이 있지만 노인 말고 다른 사람이 앉은 것은 보기 힘들다. 노인들에겐 칸마다 있는 노약자석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전철에서는 앉아있던 사람이 내리면 그 사람 앞에 서 있던 사람에게 자리의 우선권이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건 서로 논의한 적은 없지만 전철 안의 불문율이다. 하지만 노인에게 나의 권리를 빼앗길 때가 많았다. 갑자기 나타난 노인이 나를 밀치고 자리에 앉아버리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노인은 약자라서 노약자석이 있는 건데 밀칠 때 보면 그 힘이 어마어마하다. 그렇게 자리에 앉은 어떤 노인은 나를 보고 웃었다. 미안하다는 표시인데,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그러려니 한다. 그냥 속으로 정말 왜 저러는 거야 하며 투덜거릴 뿐이다.


그런데 나도 나이를 먹고 보니 자리를 열심히 찾게 되었다. 외출을 하고 집에 돌아갈 때면 다리가 아파서 당장 앉고 싶을 때가 많다. 50년 넘도록 쓴 관절과 나날이 줄어드는 근육의 영향이었다. 아직은 다른 사람이 눈치채는 건 창피해서 나름 조심하며 자리를 찾는다.

순전히 내 직감일 뿐이지만 일찍 내릴 거 같은 사람 앞에 선다. 전철에 사람이 많지 않을 때는 그 확률을 높이기 위해 앉아있는 두 사람의 사이에 선다. 이런 노력에도 도착지까지 자리가 나지 않을 때는 실망감이 컸다.


나이 든 노인들은 어느 시점이 되면 인공관절 수술을 받기도 한다. 오랜 시간 나를 지탱하던 무릎관절이 모두 닳아 없어지고 나면 뼈와 뼈가 닿아 걷기 힘들어진다. 서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인공관절을 끼워 넣어 다시 다리를 쓰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수술까지 결정하기까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을까 말이다.

요즘 식당에는 방바닥 탁자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다리가 아픈 노인들에게 방바닥에 앉았다 일어나는 일은 공포에 가깝다. 화장실도 마찬가지라 M자형 변기는 노인에게 무용지물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장애인’이 되는 것이라고 했던 누군가의 말이 정말로 진짜였다.      




마지막으로 함부로 참견하고 가르치려 드는 건 어떤 걸까? 노인들은 ‘안물안궁’이란 말을 모르는 거 같다. 안 물어보고, 안 궁금한데 이런저런 말을 늘어놓다.

나는 태생적으로 다른 사람에게 싫은 소리 듣는 걸 질색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더 조심하고, 나도 웬만해선 다른 사람에게 강하게 말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살았다. (애를 쓰긴 했는데 잘 안될 때도 있었지만.)


그런데 노인들은 자기 편할 때로 나에게 말을 걸거나 내 일에 참견을 하곤 했다. 나는 노인의 참견에 부응하기 위해 하기 싫은 리액션을 해야 했고, 듣기 싫은 말을 들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때는 노인과 눈을 맞추지 않으려고 했다.

요즘에는 사우나 가서 그럴 때가 많다. 어떤 노인이 당신의 일주일 스케줄을 늘어놓으며 오늘 아니면 사우나 올 시간도 없다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요일별 모임의 특징에 모임에 내는 회비까지 들려주었다. 사우나에는 나 말고도 몇 사람이 더 있었는데 그 노인과 눈을 맞췄다가는 오늘의 희생양이 될 거 같아 조용히 사우나를 나왔다.

아기를 키울 때는 지나가는 노인들의 잔소리를 들은 적도 있다. 아등바등 어린 아기를 돌보고 있는데 도와주는 것도 아니면서 잔소리를 할 때는 지친 마음에 더 힘이 들었다.


노인들은 왜 이토록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는 걸까?

나도 나이를 먹어보니 경험에서 나오는 시나리오가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하면 저렇게 되고 말 거야, 저렇게 하면 이렇게 되고 말 거야' 같은 시나리오 말이다. 그게 뻔히 보이니 나도 모르게 참견을 하게 되었다.

동네에서 어린 아기가 불안한 모습으로 놀고 있었다. 아이 엄마와 아빠는 다른데 정신이 팔려서 아이를 그대로 두었다. 나는 아이가 다칠 것만 같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그 아이 옆을 지키고 있었다. 아이 부모를 불러 살피라고는 차마 잔소리할 수 없어 그리 할 수밖에 없었다.




'한 노인이 죽는 것은 마을의 도서관이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예전 노인은 모르는 것을 물어 답을 듣는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은 포털의 검색 사이트도 있고, 챗GPT도 있고, 그보다 더 편한 것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굳이 노인을 찾아 경험을 구할 일이 없다.

다만 노인이 세상에 참견을 하는 것은 자신이 가진 경험과 지혜에서 나오는 예지력 때문임은 알아둘 필요가 있을 거 같다. 그리고 노인은 노화로 인해 생겨나는 불안감을 참견과 잔소리로 미리 차단하려는 마음이 있다고 한다. 같은 상황을 보고도 노인은 젊은이 보다 더 불안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야 노인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진저리 쳤던 것들이 ‘그럴 수밖에 없어서 그랬다’는 것을 말이다. 역시 가보지 않은 길을 쉽게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이런 생각도 했다.

‘나이 든 나는 어린 시절을, 젊은 시절을 지나왔다. 하지만 젊은이는 나이 든 시절을 아직 모른다. 그렇다면 이미 지나온 내가 그들을 더 포용하고 이해하는 것이 맞는 거 아닌가.’

젊은이들이 노인을 이해하기 힘든 건 어쩌면 당연한 일 같다. 가보지 않은 길을 일부러 알아보고 이해해 주는 젊은이가 있다면 그저 고마운 일인 것이다. 그러니 누구든 함부로 나무라지 말아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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