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빌려드립니다

0. 삶과 죽음의 여정을 시작하며

by 스토

슬퍼도 슬픔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슬플 때 슬픔에 빠져 충분히 슬퍼하는 거죠.

사실 우리는 슬퍼도 온전히 슬퍼하지 못합니다.

슬픔은 혼자일 때 온전하지요.

슬픔조차 눈치가 보여 충만할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삶입니다.

미치게 외롭고, 그리워 보고 싶어도 입 밖으로 내놓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가식적인 말을 하고, 가식적인 편지를 쓰지요.

내 말을 듣고, 내 편지를 읽고 상대가 울면 안 되니까요.

내가 울리면 안 되니까, 긍정으로 나를 꾸미는 겁니다.

해가 뜬 낮이면 우리는 모두 ‘염창희’처럼 삽니다.

그러다 밤에 혼자가 되어서야 ‘구씨’처럼 술을 마시지요.

그제야 자유롭습니다.

그제야 온전히 슬퍼할 수 있습니다.




최근 몇 년간 모진 슬픔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슬픔은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지요.

허리를 다치고 몇년간 고생을 하시던 아버지는 얼마 전 저희 곁을 떠나셨어요.

다방면으로 아버지를 돌보다가 우리는 연명 의료를 포기하고 아버지의 떠남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그 와중에도 저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매주 병원에 다녔어요.

딸뿐 아니라 며느리로도 해야할 일은 늘 있었으니까요.

연명의료에 대한 논의는 언제나 뜨겁고, 평소 연명에 반대하는 의견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버지를 그리 떠나보내고 나니 무척 힘이 들었습니다.

자식으로서 못할 짓을 했다는 자책이 매일밤을 견딜 수 없게 했습니다.

당시 저는 온몸에 슬픔이 찰랑여서 걸음조차 조심하며 다녔답니다.

그러다 우연히 누군가의 슬픔을 보면 같이 울었어요.

내 슬픔이 아니라 그의 슬픔에 울어주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런데 나쁘지 않았어요.

내 슬픔만 있는 게 아니라는 위로,

얄팍하지만 내 슬픔은 그보다는 낫다는 안심,

그런 게 있더군요.

그러니 저도 슬픔을 빌려드릴게요.

편하게 빌려 사용하세요.

내 슬픔이 슬픔으로 끝나지 않고 쓸모로 이어진다면

그건 꽤 괜찮은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지금부터 슬픔의 여정을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