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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 Jul 01. 2024

3분이 준 기회

삶은 어떻게 이어지는 걸까?

모든 것이 내 의도나 바람대로 이어지지 않을 것을 알지만, 가끔 한순간의 작은 선택이 새로운 결과로 이어지는 걸 볼 때가 있다. 깃털처럼 작은 일이었는데 그 일로 인해 계속 이어지는 삶을 느끼는 것이다. 




사방으로 십몇 차선이 널려 있다. 나는 ‘대로’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사거리에 자전거와 함께 서있다. 십여 개의 차선이 종과 횡으로 이어져 송파대로, 양재대로로 불리는 곳에서 나는 양재대로 쪽으로 길을 건너가려 한다. 쌩쌩 달리는 자동차를 보면 잘 잡히던 중심도 흔들리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난 그 길을 신호등 파란불에 의지하며 건넜다. 그리고 이어지는 좁은 인도로 들어섰다. 

인도는 약간 경사가 있어서 조금 힘을 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무리의 남자들이 나를 향해 걸어온다. 물론 그들은 그들의 길을 가는 것일 텐데, 이른 점심을 먹고 느긋하게 걸어오는 모습이 나를 향해 오는 위협처럼 느껴진다. 며칠 사이 익숙해져 중심을 잘 잡았던 나는 무리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는 순간 휘청했고, 심하게는 아니지만 난간에 다리를 부딪치고 말았다. 

바람은 거셌다. 횡단보도 앞에서 급하게 챙겨 온 장갑을 끼기는 했지만 여전히 시린 느낌은 있었다. 그리고 다리를 부딪치며 이탈하고 나니 급하게 자신감이 사라져 버렸다. 나는 아무래도 돌아가야 할 것만 같았다. 시작부터 무리였다는 강한 후회가 밀려왔다. 나는 무리일 거란 걸 알고 있었다. 다만 무모한 시작을 할 수 있었던 건, 그 3분 때문이었다. 



얼마 전부터 따릉이를 타기 시작했다. 따릉이는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서울시장이 시행했던 서울시의 환경, 복지 정책으로 공유 자전거 사업이었다. 늘 눈독만 들였다. 따릉이 앱을 깔고도 실제 따릉이를 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언제나 처음은 어려운 법이었다. 하지만 발작을 떼듯 시작을 하고 나니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런대로 괜찮아 타고, 또 타니 그다음엔 아주 좋았다. 자전거를 탈 때 느껴지는 자유로움과 바람은 내가 좋아하는 요소를 모두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한 달 이용권을 끊었다. 이용권이 나를 더 달리게 할 거라는 생각과 11월 초까지는 춥지 않아서 탈 수 있겠다 싶었다. 

한 달 이용권 마지막 날, 나는 혼자서 자전거를 타고 탄천을 달려보기로 했다. 이용권이 준 마지막 기회를 잡으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대여가 되지 않았다. 따릉이 앱을 종료했다가 다시 열어 자전거 대여 화면에 댔는데도 마찬가지였다. 뭐가 문제일까 찬찬히 보니 나의 한 달 이용권 기한에서 3분 지나 있었다. 기한은 11월 8일 1시 21분까지인데 시간은 1시 24분이었다. 3분이 지나서 자전거를 탈 수 없게 된 것이다. 

나는 그냥 들어갈까 했다. 어차피 혼자니 번복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다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다시 한 달 이용권을 끊었다. 날은 추워지겠지만 낮에는 타봐야지 했다. 그리고 탄천을 여유롭게 혼자 달리고 집으로 왔다. 


이렇게 단 3분 때문에 생겨난 한 달 이용권으로 나는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도 자전거를 타기로 한 것이다. 시아버지의 요양병원 퇴원과 종합병원 입원을 위해 시누이와 병원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자전거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누군가 차를 가지고 오지 않아야 시아버지를 둘이 모시고 한 차로 갈 수 있으니 내가 자전거를 타기로 한 거다. 하지만 병원으로 가는 길은 초행길이라 좀 막막한 마음이 컸다. 그래도 잘 해내려고 새벽에도 휴대폰으로 길을 찾아봤다. 네이버 지도 앱도 다시 살려서 보고 또 보고 머릿속으로 길에 익숙해지려고 했다.  


그러나 머릿속 계획과 실제가 일치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나는 나선 길 초입부터 위기를 겪었다. 나를 향해오던 한 무리의 남자들에게 위축되어 중심이 흔들렸는데, 위기는 쉽게 다른 위기를 불러오는 법. 중심이 흔들리고 보니 편평해 보였던 길이 높은 언덕처럼 느껴졌다. 아침부터 외출한다고 옷 챙겨 입고, 노트북에 장갑까지 챙기고, 아들 학원 보내는 등 둥둥 춤을 췄더니 다리 힘이 벌써 빠져있었다.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그깟 3분 때문에 한 달 이용권을 끊고, 결국 이런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말았구나. 아무래도 무리니 이대로 집에 가서 다시 차를 끌고 병원에 가는 게 어떨까? 그러면 병원에 늦지는 않을 텐데.’ 


나는 거의 자전거 핸들을 꺾을 뻔했다. 그렇게 이리저리 핸들을 흔들다가 한순간 ‘다시 가보자!’ 했다. 그깟 3분이 내게 어떤 기회를 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조금 늦더라도 괜찮으니 애초 계획대로 자전거로 가보자고 했다. 시누이도 약속마다 자주 늦게 오니까, 내가 늦는 건 큰일도 아니라고 나를 다독였다. 그리고 다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바람은 거셌다. 추워진 날씨는 바람 때문에 더한 것 같았다. 해가 드는 곳은 바람도 덜하고 따뜻한 거 같았다. 하지만 초행길이 서툰 나는 제멋대로 가는 방향을 바꿀 수가 없었다. 도로에는 자전거가 지켜 달려야 할 방향이 표시되어 있었다. 진행 방향의 왼쪽은 해가 들었지만 역방향 자전거 도로였고, 진행 방향의 오른쪽이 내가 갈 수 있는 자전거 도로였다. 오른쪽은 바람도 거세고, 모두 그늘이 져서 추위가 더했다. 하지만 나는 정해진 규칙이 나를 지켜줄 거라는 믿음으로 안전하게 가기로 했다. 

올림픽 공원을 지나고, 공사 중인 우리나라 최대 아파트 단지 앞을 지났다. 그 두 곳을 지나는 것만도 한참을 간 거 같았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머릿속에 그렸던 지도대로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화면에서만 보았던 동네를 지나고, 학교를 지나고, 아파트를 지나 내가 가려던 목적지 근처까지 다다랐다. 마지막에 따릉이 반납 장소를 바로 찾지 못해서 조금 시간이 지체되었지만 그런대로 많이 늦지 않고, 병원에 도착했다. 


나는 달리며 생각했다. 내가 또 언제 이렇게 자전거를 타고 이런 곳까지 올 수 있을까. 어느 순간부터 아들은 나를 자전거 처음 타는 아이처럼 챙겨주고 걱정한다. 그러면 나는 걱정 말라며 말한다. 

“나 얼마나 조심하는데 이제 다치면 장애 생길 수 있는 거라 정말 조심한다고.” 

“아이, 또 뭐 장애까지 생겨.” 

아들은 나의 말에 꺼림칙해며 인상을 쓰지만 그게 나의 현실이었다. 하지만 난 그 현실 속에서 나의 한계를 조금씩 벗어나는 시도를 하고 있다. 충분히 가능했던 어린 시절에 나는 지금과 같은 맘이 잘 들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처럼 해보려는 열정이 없었던 거 같다. 그렇다면 나의 지금은 젊은 시절보다 못할 것이 없다. 열정이, 도전이, 노력이 나의 노쇠함을 상쇄하는 거다.  자전거로 시작된 외출은 자전거로 마무리를 했다. 병원 입원을 잘 마치고 나는 시아버지가 입고 있던 남편의 잠바까지 자전거에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훌훌 부는 바람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3분으로 시작된 자전거 타기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나로 인해 남편도 자전거를 타고 있다. 남편과 함께 따릉이로 갈 수 있는 곳은 하나씩 도장 깨기를 하듯이 가보고 있다. 가끔씩 자전거를 타고 설렁탕 집에 가고 노천카페에 간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고 야구장과 백화점에도 간다. 흔들리던 3분이었는데 그 3분이 내 생활에 큰 변화를 주었다. 깃털 같은 변화에 열정을 조금 담은 결과가 아닌가 한다. 삶은 이렇게 이어지는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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