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잘했어요"라는 말이 듣고싶은 순간들이 있다. 어릴적 숙제를 잘 해가면 가끔씩 선생님들께서 노트 위에 도장을 찍어주실때나 보이던 글이었는데, 최소한 10년 이상이 지난 지금에도 아직 내 마음속에는 어릴적 내가 남아있다.
티비에서는 올 한해도 이제 거의 끝났음을 알려주듯이 시상식 방송이 한창이다. 평소 뉴스 외에 다른 프로그램들은 잘 챙겨보지 않는 탓에, 요즘은 어떤 연예인이 대세이며 또 어느 프로그램이 시청률이 높은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시상식 프로그램에 참석한 연예인들이 단정하고 한껏 꾸민 모습들로 '상'을 받는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올 한 해에는 결과론적으로나마 "요즘은 이 분들이 한 해 농사를 잘 지으셨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각각의 다른 이름들을 가진 상을 수상하고 소감을 말하는 분들을 보면, 그들의 얼굴에서 기쁨, 행복, 슬픔 등의 여러가지 모습들이 겹쳐 보이곤 한다. 나처럼 평소 티비를 즐겨보지 않는 사람들은 기껏해야 연예뉴스 또는 시상식을 통해 누가 누가 잘 나가는지 확인하지만, 소감을 발표하는 누군가에게는 지난 1년간의 과정이 시청자들은 알지 못하는 이런 저런 사연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상을 받고 기뻐해야할 시간에 누군가는 지난 힘든 시간들이 보상으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에 눈물을 흘리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비연예인들에게 '상'이란 대부분 학생시절로 한정된다. 나의 경우에는 학창시절 상을 받아본 적이 많은 편은 아니다. 초등학생땐 미술과 관련된 상 몇개와, 중학생땐 봉사상, 그리고 모범상 몇개를 받아본 게 전부다. 학생 시절의 나는 공부를 썩 잘하는 편은 아니었기에, 학업과 관련된 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이따금씩 담임 선생님들께서 챙겨주신 상들에 방과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즐거웠던 순간들도 있었다. 무엇인가를 이뤄야겠다 하는 욕심을 크게 내본적은 없지만, 나는 이 시기에 '글쓰기'와 관련된 교내 대회에 많이 신청했었다. 어릴적부터 '독서'를 좋아하긴 했지만, '글쓰기'에 큰 관심은 없었다. 단지 중학교 시절에 가장 친하게 지냈던, 그리고 글을 참 잘 써서 국어 시간에 선생님과 친구들의 관심을 많이 받았던 그 친구가 함께 교내 대회에 나가보자 내게 제안했다.
"너 글 잘 쓰잖아"
주저하는 사람들을 움직이는 방법들 중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칭찬'인 것인가, 나는 '운문'과 '산문'도 구분하지 못했던 사람이었는데, 얼떨결에 그 친구와 함께 대회에 참가했다.
당시 글쓰기의 주제는 정확히 생각나진 않지만, 글을 썼던 그 시간 동안 글쓰기에 굉장히 집중해서 썼던 기억은 난다. 그리고 그 시간이 참 재밌었다라는 것 또한 떠오른다.
나름 잘 쓰고 나왔다는 생각에 '수상'에 대한 욕심이 생겨났다. 하지만 열정으로 가득찬 과정이 모두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듯이, 그 대회를 통해 나는 어떤 상도 수상하지 못했다. 그 이후에도 중학교를 졸업하기 전 여러 차례 친구와 함께 글쓰기 대회에 참여했지만, 결과는 매번 똑같았다. 그럼에도 무언가에 도전 해봤다는 사실 자체에 어떤 만족감을 느껴서인지, 시간이 지난 오늘도 그때의 기억은 슬픔 보다는 스스로에게 대견스러운 순간들로 남아있다.
누군가에겐 행복했던, 다른 이들에겐 이런 저런 일들로 가득했던 이번 한 해가 이제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는 날들 사이에 우리들 각자는 같은 시간 동안 다른 시간들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각기 다른 사연들로 가득했던 2019년. 누군가는 빛나고 누군가는 그 빛에 반사된 그림자 한 편에 위치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한 가지 공통점은 존재한다. 결과야 어떻든 각자의 과정에서 우리는 열심히 살아왔다. '상'을 받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로 나누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 존재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손에 아무것도 쥐지 못한 사람이 "참 못했어요"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남들이 내게 주는 상도 좋지만 내가 스스로에게 상을 줄 수 있는 것 또한 멋진 것이 아닐까 싶다. 이번 한 해 열심히 살아온 나,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