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by 안광식

나는 공부를 잘하던 학생은 아니었다. 물론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등학생 시절에 나는 우등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당시 여느 수험생들처럼 주말이면 부랴부랴 책가방을 싸서 도서관으로 향했다. 주로 내가 가던 곳은 서면에 위치한 '부전도서관'이라는 곳이었는데, 도서관이 부산 중심가에 있어서인지 우리 또래들에게는 '핫플레이스'로 통하던 곳이었다. 그래서 열람실이 오픈하는 시간인 오전 9시에 딱 맞춰 가면 문 앞에 길게 늘어진 줄을 볼 수 있으니 적어도 8시 50분 정도에는 도착해야 열람실 한편의 자리 확보가 가능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호기롭게 1시간 정도 공부하고 나면 이내 조금씩 눈이 감겨오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합리화가 시작된다.


"그래, 아침 일찍부터 이렇게 부지런히 공부하는데, 30분만 자고 공부하자"


하지만 일이라는 게 어디 사람 마음먹은 대로 흘러가지만은 않는다. 30분이라고 마음속에 수십 번 되뇌었는데, 정작 일어나 벽에 걸린 시계를 보면 어느덧 2시간이 훌쩍 지나 얼마 뒤면 점심식사를 할 시간이다.


"그래, 공부는 체력이라고 일단 점심을 먹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자"


기지개를 켜고 도서관 밖으로 나오면 부산의 중심가답게 길거리에는 한껏 꾸민 사람들로 가득하다. 당시 나는 용돈이나 받아쓰던 '학생'이었기 때문에 주변에 가장 가성비 좋은 식당을 찾아 배를 채우곤 했다. 남는 돈으로는 오락실에서 즐겨 듣던 노래 한 두곡을 부르고 다시 도서관으로 들어오면 아직도 열람실 앞에는 긴 줄이 보인다.


다시 책상에 앉아 마음을 다 잡고 공부를 시작하면 이게 공부를 하는 건지, 잠과 사투를 벌이는 건지 싶은 순간들이 생긴다. 책상에 엎드리지만 않았지 실제로는 어떤 소득도 없다. 그럴 때면 나는 항상 도서관 근처에 있던 '동보서적'으로 향했다.


당시 부산 서면에는 '영광도서'와 '동보서적'이라는 큰 오프라인 서점들이 있었다. 다행히도 두 곳 중 한 곳이 도서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공부에 집중이 되지 않는 순간이면 주로 '동보서적'으로 향했다. 요즘의 대형서점처럼 한편에 소파나 책상은 없지만, 마음에 드는 책이 있으면 그냥 서서 읽거나 혹은 구석진 곳에 앉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읽어댈 수 있었다. 공부에는 흥미가 없었지만 독서는 참 좋아해서 그랬는지, 나의 고등학생 시절은 도서관보다는 오히려 서점과 더 거리가 가까웠다.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했던 탓에 원하던 대학에 진학은 실패했지만, 그럼에도 그 당시에 쌓인 이런저런 철학들은 대학에 가서 리포트나 발표시간에 빛을 발했다. 역시 어떤 일이든 다 쓸모가 있는 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보통 대학생들처럼 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갔다. 첫 휴가가 하필 중간고사 기간이었던 탓에 친구들은 거의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옛 추억이나 더듬거려보려 서면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도서관으로 향했다. 역시나 그곳은 몇 년이 흘러도 열람실 앞에 긴 줄이 늘어져있었다. 그 모습 외에는 도서관에서의 별 다른 추억이 없었기 때문에 그 모습을 끝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리고는 서점으로 향했다. 다채롭지는 않지만 기분 좋은 추억만 가득한 그곳에서 마음에 드는 책 한 권을 집어 저기 구석 자리에 앉아 책을 읽고 있을 내 모습을 상상하니 어딘가 마음속 한편이 근질거렸다.


하지만 웬걸, 원래 서점이 있던 장소는 어느 큰 화장품 회사가 떡 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처음에는 오랜만에 방문하는 탓인가하여 그곳 주변을 몇 차례 빙빙 돌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그 장소가 맞다는 확신만이 생겼을 뿐이었다. 잔뜩 실망감을 안고 집에 돌아와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검색창에 '동보서적'을 검색했다. 결괏값에서는 얼마 전에 폐점했다는 소식이 눈에 들어왔다.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해 온라인 서점 시장이 커지면서 오프라인 서점의 규모가 작아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더 이상 찾아갈 수 없는 곳이지만, 아직도 내 마음속 한편에 자리하고 있는 그 서점. 나의 10대 시절 에그 장소가 없었다면 나는 지금처럼 책을 읽는 즐거움을 알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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