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야

by 안광식

평균적으로 나의 퇴근 시간은 저녁 11시다. 고등학생 2학년들까지 수업을 마치고 이것저것 정리들을 좀 하다 보면 어느덧 시간은 막차시간에 가까워져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출근 전 집에서 점심을 먹고 난 이후 저녁식사까지, 대략 11시간 정도의 공백이 생긴다. 퇴근 후 간신히 지하철 막차를 타고 살고 있는 동네에 도착하면 시간은 거의 12시에 가까워진다. 우리 동네는 번화가가 아니기 때문에 이 정도 시간이면 그때까지 문을 열어 놓은 식당들은 거의 없다. 이 상황에서 내가 고를 수 있는 선택 사항들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국밥집에서 돼지국밥 한 그릇에 소주 한 잔.

두 번째, 치킨집에서 순살 후라이드에 소주 한 잔.

세 번째, 집 앞 편의점에서 도시락 먹은 뒤, 집 앞 주차장에서 맥주 한 캔.


나는 첫 번째 선택지가 조금 물릴 때면 두 번째 선택지에 방문하고는 하는데, 저녁 12시가 다 되어갈 무렵에 가게에 들어가면, 가게에는 사장님과 나 둘 정도로 마감시간까지 쭉 이어진다. 나에겐 사실 선택사항들이 몇 개 없어 어쩔 수 없이 자주 찾아가게 되는 식당들인데, 사장님들 마음은 또 다른가보다. 마감시간이 다가올 무렵의 손님은 가게를 마감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마냥 달갑지는 않을 것 같은데, 넉넉한 음식에 소주 한 잔 걸치다 보면 접시에는 사장님의 서비스 안주까지. 허기진 배를 채우려 갔다가 사장님의 인심에 허기진 마음이 채워지는 느낌은 나를 한 사람의 '손님'에서 '단골'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만들었다.


음식에 대한 맛을 표현하는 방법들 중에 '손맛'이라는 것이 있는데, 사전적 정의로는 '음식을 만들 때 손으로 이루는 솜씨에서 우러나오는 맛'(출처: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면 종류의 음식을 먹게 될 때, 기계식 면이나 혹은 수타면을 예로 들어 보자면 '손맛'은 후자에 포함될 것이다. 밀가루 가득한 도마 위에 밀가루로 범벅이 된 옷과 손으로 커다란 반죽을 이리저리 때려가는 요리사의 모습은 한눈에 봐도 다려진 셔츠에 주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신사'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우리는 깨끗한 공간에서 기계식으로 잘 정돈된 면발보다는 여러 번의 거친 손길들을 거쳐 완성된 수타면을 더 정성스럽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단골이 된 국밥집과 치킨집. 내가 방문할 때면 오늘도 손님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허름한 장소들. 이제 나를 그냥 '손님'이 아니라 다음에 또 볼 수 있을 '단골손님'으로 여겨주시는 사장님들로부터, 나는 오늘도 '손맛'보다 더 좋은 '사람 맛'을 느끼고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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