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손님의 사연

by 안광식

요즘 부산은 날씨가 완전히 제멋대로다. 이번 한 달 동안 두 번이나 태풍을 겪었고, 이후에는 마치 여름이라도 된 듯 매우 덥다. 당최 오늘은 긴 팔을 입어야 할지, 반팔을 입어야 할지 감을 잡기 힘들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어젯밤 술로 엉망이 된 속을 달래는 날이거나 혹은 평일 동안 회사에서 쌓인 피로를 풀어내는 날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흔히 '남들 쉬는 날 일하는 날'이기도 하다. 예전에 택배기사님들처럼 주말에도 쉬지 못하고 일하시는 분들을 보며 속으로 안쓰럽다 생각했던 적이 많았는데, 요즘 내 상황이 그렇다. 아무래도 입시학원에서 일하다 보니 어느덧 주 6일 출근은 내게 당연한 일이 돼버렸다. 평소 같으면 토요일은 오후 1시 정도에 출근해 3시간 정도 고등부 수업만 하면 됐다. 하지만 요즘처럼 '시험기간'이라도 되면, 오전 10시에 출근해 중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연달아 수업을 하고 저녁 6시 정도에 수업을 마무리한다. 그렇다 보니 가족들과 하루 '두 끼'를 함께 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오죽하면 어머니께서 "한집 살면서 얼굴 보기 참 힘들다"라고 말씀하실까.

주변히 환할 때 출근해서 가로등에 불빛이 들어올 때 퇴근하면, 나의 길가에 아무런 식당이나 들어가서 한 끼를 대충 때우고는 한다. 이왕 먹는 밥이면 맛있는 메뉴를 먹는 게 좋다고 하지만,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정도가 되면 메뉴를 선정하는 일은 크게 의미가 없어지곤 한다. 그렇게 대충 저녁 식사를 마무리하고 난 뒤에는 역시나 카페이다. 나는 집에서부터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한 카페의 단골이다. 원래 이 카페에서는 '아메리카노 한 잔 리필'이라는 혜택이 없어서, 다음 커피 한 잔이 당길 때면 4천 원가량을 더 내야 하지만 가끔 이 곳 사장님이나 아르바이트생분께서 무료로 한 잔을 리필해주시는 걸 보면 나는 확실히 단골이 맞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직업을 갖기 전에 이 카페는 내가 주말이면 하루를 시작하곤 했던 장소였지만,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어느덧 내가 하루를 마무리하는 장소로 바뀌었다. 이제는 이 곳에서 마시는 커피가 '모닝커피'에서 '이브닝 커피'로 변했지만, 그럼에도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입에 담았을 때 나는 고소하면서도 약간 씁쓸한 맛을 느껴지는 순간이면 가지 각색의 학생들과 이리저리 치였던 내 하루도 조금은 잘 볶아진 것 같다는 생각에 어딘지 모를 안도감이 든다.

커피 한 모금 정도를 더 마신 후에는 주문한 커피가 나오기 전 미리 준비해 둔 노트북에 최근 며칠간 내가 기억하고 느낀 감정들을 글로 표현하는 시간을 갖는다. 예전에 티브이에서 신해철 씨가 "어릴 적 시끄러운 저녁 밤에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고 있으면 마치 다른 세상에 나 혼자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라고 말했던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때가 언제였는지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이제는 시간이 꽤 지난 듯 하지만, 지금에도 그가 했던 이 말을 떠올려보면 얼마나 멋지다는 생각이 드는지. 당시에 나는 그의 음악을 거의 들어본 적 없지만 뭔가 멋진 음악을 만드는 사람일 것이라는 이유 모를 생각이 들었다. 때때로 글을 쓰다 보면, 늦은 시간에도 사람들 북적한 카페에서 나 혼자만의 세상에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글을 시작하는 일을 어렵지만 쓰다 보면 어느덧 내 글에 내가 몰입되어 나만 혼자 다른 세상에 있는 느낌. 이런 순간에는 내가 조금 멋지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내 모습에도 겹쳐 보여서 일까, 어쩐지 스스로가 조금 멋져 보인다는 부끄러운 감상에 젖어들기도 한다. 이런 자아도취적인 생각에 살짝 취해 글을 쓰다 보면 어느덧 또 글 한 편이 마무리된다. 맞춤법 검사를 하고 퇴고를 거치면 이제 글을 '완성'이라는 단계에 이른다.

글 한 편을 '완성'이라는 단계에 올려놓기 위한 몇 시간 동안에 나는 한 번씩 니코틴 충전을 위해 한 번씩 밖을 다녀왔고, 진도가 너무 안 나갈 때면 한 번씩 유튜브에서 이런저런 동영상을 보며 혼자 키득거리거나 눈치 없이 새어 나오려는 눈물을 애써 참아내기도 했다. 주변에 글 좀 쓰시는 분들은 작업하는 동안에 뼈를 깎아내는 인고의 시간을 거친다고 하던데, 나는 갖가지 핑계들을 대며 편하게 글을 쓰고 있다니. 스스로가 멋있다고 생각했던 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스스로가 부끄럽다고 생각되는 순간으로 바뀐다.


내일은 일요일이다. 누군가는 이 날을 "일주일 중 첫 번째 날"이라고 말하지만 또 누군가는 "일주일 중 마지막 날"이라고도 한다. 이런들 저런들 상관없다. '일요일'이라는 단어는 앞에서부터 읽든 거꾸로 읽든 똑같이 '일요일'이라고 소리 나는 법이니 말이다. 그러니 괜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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