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그랬지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아저씨와 총각, 또는 아줌마와 아가씨를 '결혼'이라는 기준을 통해 나눴다. 같은 나이의 사람들이라도 하나의 '사회적 관습'에 의해 그들의 호칭은 이토록 간단하게 나눠졌다. 그런데 요즘은 이를 나누는 새로운 기준이 한 가지 등장했다.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로 남을 훈계하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그들의 나이와는 상관없이 '꼰대'라고 부른다. 어디서 굴러들어 온 말인지 궁금해서 찾아봤다.
꼰대: "권위적인 사고를 가진 어른이나 선생님을 비하하는 학생들의 은어로 최근에는 꼰대질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출처: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사람들 중 자신들에 대한 '욕'이나 '험담'을 듣게 되고도 기분이 좋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때문에 소위 '어른'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나 때는 말이야"와 같은 '요즘'과는 동 떨어진 얘기 때문에 자신들이 '꼰대'라는 말을 듣게 될까 봐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나 또한 학생들이나 동생들이 내게 요즘 힘든 일이 있다며 잠깐 얘기 좀 나눌 수 있냐고 물어보면, 나는 내 말들에 혹시나 오해의 소재가 있지는 않을까 조심스러워질 때가 있다.
그런데 '꼰대'라고 불리거나 생각이 드는 순간은 어딘가 모순적인 부분이 있다. 누군가 "나 때는 말이야"와 같은 말을 할 때 그 사람은 '옛날 사람'과 같은 취급을 받는다. 그렇지만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런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그들의 모습들이 쌓이고 쌓여 현재의 그들이 지금 존재하는 건데, '꼰대'라는 두 글자로 그들의 과거를 정의하는 게 어딘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때랑 우리 때랑은 다르잖아요"
맞는 말이다. 소위 '요즘 사람'들 입장에서는 지극히 당연하다. 그렇지만 이 말을 하는 사람이 10대라고 가정하고, 듣는 이의 나이가 현재 나와 같은 30대라고 해보자. 내 입장에선 눈 앞에 10대의 모습이 '꼰대'같다고 느껴질 것이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나 배려가 부재된 일방적인 소통 방식이, 지금 사회가 정의하는 '꼰대'와 같기 때문이다. 그들의 대화에 틀린 부분은 없지만, 잘못된 부분은 존재한다. 서로의 다름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결핍이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한 번씩 서로의 입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작은 문제가 나중에는 큰 싸움으로 번지고는 한다. 왜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냐고, 내 마음을 왜 이해해주지 못했냐고. '이성'적인 부분에서의 문제들보다 '감정'적인 문제들은 언제나 해결하는데 시간이 훨씬 더 소요된다. 그럼에도 대화를 통해 서로의 입장을 헤아리고 싸움에서 상처 받은 마음에 서로 약을 발라주다 보면 둘의 관계는 예전보다 훨씬 단단해진다.
피할 수 없는 싸움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점은, 내가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일을 계기로 '우리'가 예전보다 더 성장할 수 있을지에 대한 점이다.
그래, 어차피 '꼰대'가 될 수밖에 없다면 사람 좋은 '꼰대'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