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by 안광식

어느 금요일 오후, 업무 중에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보통의 전화였을텐데, 그 시각 진동하는 핸드폰 화면 위에 '어머니'라는 이름은 어딘지 평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어머니'라는 이름을 보고 속이 약간 울렁이는 마음이 들 때면 십중팔구 내 예상은 보란듯이 적중한다.


"아들, 집이 왜 이렇게 더럽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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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 싶었다. 전화를 받은 날을 기준이로 일주일 전에 나는 부모님댁을 방문했다. 오랜만에 어머니가 차려주시는 밥과 된장찌개, 그리고 평소 주방에 냄새가 빠지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심정으로 감히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생선 반찬. 오랜만에 들린 집에서 어머니의 손맛으로부터 어쩐지 마음 속 뭔가 뭉클한 감정이 느껴져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당신에게 "언제 찌개 끓여주러 오실거예요?" 라고 물어봤다. 그 질문에 어머니의 답변에서 '금요일' 혹은 '토요일' 정도로 대답하셨던 것 같다. 그리고 금요일 아침, 나는 평소보다 늦게 일어났던 탓에 출근준비에 급급해서 전날 먹고 상 위에 올려둔 치킨 박스와 소주 1병을 그대로 올려뒀고, 침대는 정돈하지도 못한 채 현관문을 나섰다. 어머니는 당연히 '토요일'에 올거라 혼자 굳게 믿고서.


다시 통화로 넘어와서, 어머니는 집 좀 정리하고 살라며 평소보다는 가볍게 잔소리를 하셨다. 원래 우리 어머니는 뭐든 한 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시다. 그래서 일단 잔소리가 시작되면 아주 끝장을 보려고 하신다. 그래도 평소보다는 잔소리가 짧게 끝나서 그런지 몰라도 잔소리가 잔소리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신비한 경험을 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몇 가지 질문들을 하셨다. 방바닥에 머리카락이 왜 이렇게 많이 떨어져있냐며, 요즘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 것 아니냐며 물으셨다. 나는 그 질문에 요즘 신경쓸 일들이 많아서 그런가보다 라고 대답했다. 저번에 챙겨준 반찬은 냉장고에 왜 아직도 그대로 있냐는 어머니의 질문에, 나는 먹고 있지만, 아무래도 혼자살고 조금씩 먹다보니 먹어도 티가 않나는 것이다 라고 대답했다. 글을 쓰고 나서 다시 읽어보니 질문과 대답으로만 이어지는 통화내용이 어딘가 취조내용처럼 느껴진다. 그건 아무래도 내 대답들이 그냥 대답들이 아니라 변명거리 가득한 대답들이니 말이다.


아무튼 업무를 보고있던 중에 걸려온 전화였기 때문에, 통화를 평소만큼 길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정말 몇가지 질문과 그에 대한 대답들을 끝으로 나는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왔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어머니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김치랑 깻잎 작은통에들어났으니 챙겨먹으로 우리아들잘될거라고 엄마는믿어니까 모든일에열심히 힘내고"

(당시 어머니의 메시지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은 것이므로, 오타와 띄어쓰기는 수정하지 않았다)


부모가 자기 자식을 믿어주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다가도, 그런 말을 자식 입장에서 부모로부터 직접 듣게 되면, 누군가 내 앞에 나만 보이는 화면을 세팅해놓고 눈물을 흘리지 않고는 못 베길 영화 한 편을 틀어놓은 것 마냥 마음이 짠 하다. 그래, 나는 부모님의 자부심이다.(드라마 '미생' 대사 인용)


퇴근 후 집에 도착하니 평소에는 그렇게 휑해보였던 책상위에, 딸기가 담긴 접시 위에 투명한 봉지로 싸여있었다. 냉장고에 넣어둔지 일주일이 지난 것이었는데, 딸기는 아끼면 진짜 똥되는 것을 알기에 빨리 먹어야지 먹어야지 하다가도 결국 피일차일 미루곤 했었다. 그리고 마침 그걸 발견한 어머니께서 오늘은 꼭 먹으라고 꼭지 부분을 자르고 봉지에 넣어두셨다가 내가 퇴근 후에 먹기 좋게 나두신 모양이었다.


얼른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어머니가 끓여주고 가신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중 무엇을 먹을까 가스레인지 앞에서 잠깐 행복한 고민을 했다. 그러다 김치찌개를 데우고, 어머니가 요리해주신 계란말이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1분 가량 데우고, 밥그릇에 밥을 옮겨 닮아 몇몇 반찬들과 함께 식탁으로 옮겼다. 그리고 찌개 끓는 냄새에 국자로 국그릇에 얼큰한 냄새를 풍기는 그 녀석을 옮겨 닮고, 다시 식탁으로 돌아와 밥 한 숟가락, 국 한 숟가락 입 안에 넣을 때의 뜨거운 행복이란. 거기다 평소에는 게을러서 눈길도 잘 주지 않던 딸기를 식후에 디저트 삼아 먹고, 평소 드라마라면 관심도 없다가 요즘 들어 챙겨보기 시작한 드라마가 식사 후 딸기를 먹을 타이밍에 맞춰 시작하니 하루의 마무리가 어쩜 이렇게 완벽할 수 있을까.


이토록 해복한 순간을 만들어주신 어머니께 감사드리며. 부모님에게 잘 해드려야겠다는 셀 수 없이 했던 다짐을 다시 새기며. 다들 효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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