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다 보면 가끔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이런저런 일을 겪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각자가 처했던 상황이나 분위기에 기대 그것들을 ‘좋았던 일’, 또는 ‘별로였던 일’ 정도로 기억하는 것 같다.
군대를 제대한 뒤 복학 후 두 번째 학기, 이제 군대에서 몸에 베였던 흙냄새가 조금은 빠졌다고 생각할 무렵에 나는 교양수업으로 사회학 수업을 수강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는 예상하지 못했던 어떤 일과 마주하게 됐다. 당시 사회학 수업에서 조별과제가 있었는데 주제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대략 ‘어떠한 주제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 정도로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때 나는 우리 과 같은 학번의 형과 함께 수업을 듣고 있었다. 우리는 두 명이 한 팀이 되어 리포트를 작성해야 했는데, 이 형은 도대체 무슨 개인적인 일이 그렇게도 많았는지 수업은커녕 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물론 1학년 때도 다르진 않았지만, “군대까지 다녀왔으니 이젠 좀 달라졌겠지”라고 생각했던 내 잘못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리포트 주제도 선정하지 못한 채, 어느덧 교수님께 어떤 주제에 대해 쓸 것인지에 대한 시간이 다가왔다. 물론 그때도 형은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한 팀씩 교수님께 다가가 자신들이 정한 주제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내 차례가 됐을 때, 나는 지금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교수님께 “OSMU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삼고 싶습니다”라고 얘기했다. 참고로 ‘OSMU’(One Source Multi Use)란, 한 가지의 사물이 다양한 형태로 활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수님께서는 내가 이유를 말하기도 전에 괜찮은 주제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리포트 발표까지 이런저런 사례들을 찾아 사회적 현상들과 접목해 대략적인 발표 내용을 정리했다.
발표 당일, 나는 준비한 리포트를 인쇄하여 우선 교수님께 드리고 함께 수업을 듣던 학생들 앞에서 발표를 시작했다. 나름 준비한다고 했는데 자료가 허접하다 보니 발표 내내 긴장감이 밀려와 설명을 어떻게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 “이 강의 학점은 물 건너갔구나”라고 생각한 뒤 발표를 마치고 자리로 들어가려는 순간 교수님께서 내게 질문할 게 있다고 하시며 급히 자리로 돌아가려던 내 발걸음을 멈춰 세우셨다.
“학생, 혹시 블로그 하세요?”
나는 당시 블로그라는 단어를 졸업반 선배들이 요즘은 블로그도 스펙이라는 말을 늘어놓을 때 외에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니요”
“학생은 발표 실력은 엄청 좋은 편은 아닌데, 글은 참 이해하기 쉽게 잘 쓰는 것 같네요. 혹시 생각 있으면 정보성 글을 써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고생 많았어요.”
“네, 감사합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발표를 망쳤다고 생각했던 게 조금 전 일이었는데, 심지어 발표와는 상관없는 교수님의 칭찬 한 마디에 방금 전 발표에 대한 생각들은 온 데 간데 없어지고 뭔가 기분이 좋아졌다. 글을 쓰는 일이라...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일어난 일은 8년 후인 지금까지도 나에게는 글을 쓰는 힘이 되어주고 있다. 글이 나중에 블로그, 잡지, 책 혹은 다른 매체들을 통해 어떤 식으로 전달이 되든 간에 내 글 좋아해 주는 사람은 한 명이라도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이 쓰이게 된 것도 결국 8년 전 누군가가 내게 던져준 칭찬 한 마디로 시작됐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