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부르는 게 좋은 이유

by 안광식

사랑하는 사람들 간에는 '애칭'이라는 게 존재한다. '자기야' 혹은 아직 결혼도 하지 않았으면서 '여보야'와 같이 듣기만 해도 손끝이 말려들어가는 느낌의 표현들. 그럼에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어느 정도 표현만 할 수 있다면 손뿐만 아니라 발도 내어줄 수 있을 것만 같다.


나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 '~있었다'라고 과거형으로 상대방을 표현하는 일은 언제나 마음 아픈 일이다. 평생 함께할 것만 같은 사람이 더 이상 내 곁에 없는 삶이란 처음에는 오히려 죽는 게 더 낫겠다 싶다가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상처가 난 부위에 딱지가 생기고 어느덧 새살이 돋듯이, 언젠가부터 아프지도 않고 그때의 아픔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 사람과의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고맙고 미안한 것들로 한 가득이다. 내가 가진 것도, 내세울 것도 없던 어느 날부터 시작됐던 우리의 관계는 너의 배려와 헌신이 거름이 되어 이내 꽃을 피울 수 있었다. 당시에 밥은커녕 커피 한 잔 사줄 돈도 없었던지라 우리의 관계가 시작되고 몇 달간 나는 그녀에게 금전적으로 많은 부분을 도움받았다. 당시 그녀는 내가 미안할 틈도 내색할 수 없을 정도로 늘 잘 될 거라며 응원해줬다.


그녀의 바람이 커서였을지는 몰라도 나는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이제 그녀에게 식사를 대접할 수도 있었고, 커피도 사줄 수 있었다. 우리가 사랑했던 시간 동안 그녀에게 표현은 못했지만, 내가 사주는 밥을 맛있게 먹는 그녀의 모습에서 늘 행복했다. 누군가에게 있어 고작 식사 한 끼 대접하는 게 어떤 의미를 부여할 만큼 대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달랐다. 배고팠던 시절에 그녀로부터 늘 받기만 했던 내가, 이제는 그녀에게 조그마한 것 하나라도 베풀 수 있게 됐다는 사실이 늘 고맙게 느껴졌다. 사람은 늘 밥을 먹는다. 그래서 나는 그녀와 만나 함께 식사하는 시간이 언제나 행복했다.


그럼에도 우리의 행복에도 엔딩이 있었다. 우리의 밝은 미래를 위해 열심히 일해왔던 나였지만, 상대방에게는 그 점이 서운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는 깨달음은 어째서인지 늦게 다가온다. 너는 나에게 지금보다 더 큰 관심과 사랑을 갈구했고, 나는 일과 사랑 사이에서 현명한 해답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의 관계는 끝이 났다.


마지막 안녕만을 남긴 순간에 그녀는 내게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왜 오빠는 나를 애칭으로 불러주지 않았어?"


그녀의 물음에 나는 몇 초간을 망설인 뒤에 대답했다.


"나는 너를 이름으로 부를 때가 가장 좋았어"


나의 답변에 그녀는 알겠다는 말을 끝으로 자리를 떠났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사랑을 해보고 이별도 해봤지만, 나는 언제나 어떤 애칭보다는 상대방을 그 사람의 이름으로 부르곤 했다.

우리가 사랑하는 동안 너의 이름을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불러주는 사람이 나이기를 바라서였을까, 그래서 우연히 그녀의 이름을 누군가로부터 듣게 되면 늘 그녀의 행복한 미소가 떠오른다.

오늘 새벽은 그녀가 좋아하던 잔잔히 비가 오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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