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신호등에 잠시 멈춰 선 사이 일어난 일이다. 바로 앞에 작은 트럭이 있었고, 트럭의 짐칸은 노란 플라스틱 바구니들이 켜켜이 쌓여 있었다.
그것이 노란 바구니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두꺼운 덮개로 묻혀 있던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준 까마귀 때문이었다.
잠깐 사이에 딱히 앞차의 짐칸 내용물이 궁금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이왕에 오픈된 것이니 판도라의 상자라 해둔다.
그렇다. 갑자기 하늘에서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와 트럭의 모서리에 불안하게 내려앉는다.
운전석에서 나는 본의 아니게 1열 감상을 하게 된 거다. 까마귀는 잠시 주위를 두리번 거린다. 내가 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라도 챈 걸까?
그러다 갑자기 까마귀 발이 천막의 끄트머리를 들춰낸다. 새의 부리는 매섭게 먹이를 낚아챈다. 어느덧 그 까마귀는 공중부양을 한다. 거기 잠시 머무는 가 했더니 휙 날아서 도로의 전신주 위에 잠시 안착한다.
기다리고 있던(?) 다른 까마귀와 서로 작전 성공의 눈빛을 교환하는가 했는데 순식간에 더 높은 창공을 향해 날아가 버린다. 남겨진 그 까마귀도 바로 그 길을 따라 날아간다.
순식간의 일이다. 엉뚱한 타이밍에 난데없는 장소에서 까마귀의 밥벌이 행위를 목격한 나는 적잖이 놀라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
뒤차의 경적소리는 이상한 세계의 여행에 대한 무자비한 경고음으로 들렸다. 차는 다시 움직였고, 까마귀는 빨간 신호등이 없는 하늘에서 새끼가 있는 곳으로 과속 운행 중일 것이다.
아까 그 트럭에서 부리에 콱 깨문 돼지창자의 붉은빛이 오늘따라 태양보다 더 붉게 눈부시다.
어느 날엔가 우리들은 트럭에 남은 플라스틱 상자의 창자를 연탄불에 노릇노릇 익혀서 소주를 부어라 마셔라 하고 있을 것이다.
까마귀와 인간이 먹거리를 공유할 수 있게 한 트럭 운전기사는 막창이라면 진절머리 난다며 손을 저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