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몹시 추운 겨울이 있었다.
오랜만에 겨울다운 겨울이었다. 한파가 몰려와 그야말로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을 맞으며 물었다. “오늘 되게 춥다. 근데 러시아는 훨씬 더 춥지?”
러시아에서 잠시 들어와 있었던 후배의 답은 이렇다. “누나, 러시아에서는 말이죠. 지금 공중에 물을 휙 뿌리잖아요? 그럼 바로 얼음이 되지요.”
오랜만에 만난 넉살 좋은 후배는 여전히 넉살이 좋다. 이어지는 이야기를 반신반의하면서 듣는다.
“누나, 러시아에는 국민이 얼어 죽지 않을 권리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어요. 지금 저 길가에 누가 추운데 꽁꽁 언 채로 잠들어 있잖아요? 그럼 경찰이 바로 병원에 데리고 가서 동상 치료를 해서 살리는 거죠.”
법이라는 게 이렇게 훈훈하기도 한 거구나 싶다. 온갖 법조항들이 사람을 옥죄는 사례는 많이 보았어도 법이 사람의 체온을 데워 주는 경우를 최근에 잘 못 본 탓인지 그 또한 긴가 민가 했지만 하여튼 따뜻함이 느껴졌다.
“누나, 러시아 사람들은 월급이 얼마 안 돼요. 하지만 매일 ‘멍 때리는 시간’이 있고 금요일부터는 발레도 보고 주중에 못했던 여유를 마음껏 누리는 루틴을 꼭 지켜요. 저더러 왜 그렇게 바쁘게 사는지 자꾸 물어봐요. 누나도 이제 바쁘게 살지 마세요. 왜 우리는 ‘멍 때리고 있을 자유’를 스스로 박탈하고 살아가는 거죠?”
차를 마시면서 그에게 들은 이야기들은 헤어진 후에도 계속해서 내 마음을 가만가만 두드리고 있다.
‘멍 때리는 시간’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한다. ‘멍 때리며 아무것도 안 할 자유’에 대해 생각한다.
‘어디서든 얼어 죽지 않을 국민의 권리’에 대해 생각한다.
생각이 생각을 물고 와서 그놈의 ‘멍 때리는 시간’을 마련할 수가 없다는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