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일기) 출근길 단상

by 올제

출근길에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사람을 만난다. 엄격히 말하면 만난다고 할 수는 없다. 내가 일방적으로 발견(?)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 21층에서 서류 가방을 들고 정장을 입었으나 운동화를 신은 아저씨가 내려오면 17층에서 내가 탄다. 1층에서 그 아저씨가 성급히 달려 나가는 순간 재빨리 엘리베이터의 닫힘 버튼을 누르고 지하 6층까지 내려가 차에 시동을 건다.


나선형 통로를 면벽 수도하는 기분으로 하염없이 돌아 지상의 세계로 올라오면 그 시각, 내 차를 가로질러 건너는 고등학생이 한 명 나타나고, 우회전할 때 건널목 신호가 깜박거려 꺼지기 직전까지 얼굴이 벌겋게 익어가며 뛰어 이쪽으로 건너오는 몹시 피곤해 보이는 아저씨가 있다.


다시 직진해서 3분 정도 가다 보면 노란 유치원생의 옷매무새를 만져주는 젊은 엄마가 있다. 몇 차례 신호를 받고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동안 가게 문을 오픈하고 유리창을 닦는 아르바이트생이 있다. 혹은 골목에서 몰래 피운 듯한 담배 연기가 사춘기처럼 붉게 새 나오기도 한다.


이와 같은 일련의 풍경은 어제와 내일이 딱히 다르지 않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 이 모든 장면을 스쳐 지나가는 것 같다가 한 번씩은 영화 <트루먼 쇼>의 주인공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배우들이며 모든 시공간은 세트장이라는 사실을 언젠가 알게 될지도 모른다.


아마 서쪽 끝에 세트장의 높은 벽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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