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 이야기가 되는 날까지...
노트북을 챙겨서 집을 나선다. 정확히 말하면 오전 스케줄을 시작하면서 노트북도 챙겨 나온다. 혹시나 글발이 좋으면 어쩌나 하는 어이없는 상상을 하면서 오래 쓸 경우를 대비해 노트북 충전기와 휴대폰 충전기까지 챙긴다.
배가 고프면 생각도 없어지니 점심에 먹으려고 냉장고에서 이것저것 후루룩 닥치는 대로 재료를 꺼내서 빵 사이에 무질서하게 집어넣어 급하게 집을 나선다.
한적한 산에 있다는 카페를 검색해서 운전대를 잡는다. 그곳에 가서 주변의 백색소음을 벗 삼아 자판을 열심히 두드리는 자신을 미리 관찰한다.
한참을 차를 몰고 가다 보니 하필 FM라디오에서 오늘따라 비가 온다며 가슴을 후벼 파는 음악이 덤핑처럼 흐르고 있다. 핸들은 자연스럽게 근처 야산에서 동작 그만.
##체육공원이라며 축구장도 있고 산책로도 있고 주차장은 계단식 논처럼 층층이 잘 되어 있는 곳이다. 시동을 끄고 산을 오르다 제풀에 지쳐 내려오다 운동장 트랙을 몇 바퀴 돈다. 다시 차로 간다. 차창을 내리고 시동을 끄고 관찰을 시작한다.
카페는 포기하고 대낮에 야산 주차장에서 운전석 의자를 한껏 뒤로 밀치고 무릎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써지지도 않는 글을 쓰겠다고 이러고 있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나 말고도 이렇게 시동을 끈 채로 창을 내리고 있는 차들이 더러 보인다.
갑자기 궁금증이 일렁이지만 이 시간에 차 문을 두드리고 “저기요... 제가 좀 궁금해서 그러는데요. 왜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여기서 이러고 계세요?”라고 물어본다면 동네 아줌마를 대표해서 또라이를 자처하는 셈이 될 테니 참겠다.
그런데 정말 궁금해서 그러는데 나보다 오른쪽으로 다섯 칸 더 멀리 떨어져 있는 회색 SUV는 아까부터 왼쪽 팔이 차창으로 흘러내려 있다. 왼손이 땅바닥에 툭. 떨어질 것만 같아 불안감이 음습해 온다.
운전자로 보이는 형체는 묘한 각도로 나무에 가려져 아예 보이지 않고 왼손만 창밖에서 한숨을 쉬고 있다. 담배 한 개비도 끼우지 않는 그의 검지와 중지 사이에서 나는 왜 담배 연기를 보고 있는 걸까?
보이지도 않는 연기가 타 들어가 검지와 중지 사이로 불똥이 떨어질 것만 같다. 그만의 비밀의 방이 갖고 싶어서 도피한 것인가? 그의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바람이 설렘일지 괴로움일지 왜 내 마음대로 읽고 있는 것일까?
오늘따라 바람은 왜 이렇게 스산하지? 비가 오면 왜 우리는 전을 부쳐 먹고 막걸리를 한 잔 하고 싶은 거지? 이게 뭐지? 갑자기 왜 자꾸 궁금해하는 거지?
요즘 나는 하루 종일 궁금하다. 이런 나를 저쪽에 있는 자동차 안에 있을 누군가가 관찰하고 있으면 어떡하나 하고 희한한 걱정을 하는데 노트북은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았고 이곳 야산에서는 도저히 충전할 길이 없다.
삶에도 이런 야산이 있을 땐 충전할 길이 없다는 것만 겨우 알겠다. 할 수 없다. 집으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