몹시 추운 어느 겨울날의 이야기
추운데 우포늪에 갔다. 전체적인 분위기? 쓸쓸하다. 휑하다. 서글프다. 텅 비어 있다. 인간의 관점에서는 이보다 더 썰렁할 수가 없다. 더없이 넓은 우포늪을 바라보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우리는 청둥오리야. 여긴 창공. 오랜만에 친구들과 떼 지어 비행 중이야. 사실 우린 육해공 안 되는 게 없지. 땅에서 걸을 수도, 물에서 헤엄칠 수도, 이렇게 하늘을 날 수도 있지만 딱히 뽐낼 생각은 없어. 다만 즐거울 뿐.
우린 흰기러기 떼야. 아! 바다에서 까만 기러기만 본 표정이네. 기러기는 까맣다는 편견을 버려 주겠니? 흰색이라 멀리서 보니 웅크리고 있는 눈사람 같지? 이렇게 모여서 그동안 밀린 얘기도 하고 즐거울 뿐. 겨울엔 사람들이 없어서 주인공이 된 느낌이야. 참 좋아. 우리만의 조용한 이 공간 감사하지.
나는 나무. 참, 초록색 잎들은 봄에 다시 만나기로 했어. 지금은 오롯이 내 몸뚱이에만 집중하는 시간이야. 잎들이 나오면 푸르러서 좋고 지금은 혼자여서 또 좋아. 이대로 즐거울 뿐.
나는 억새야. 갈대와 구별이 잘 안 되지? 이름은 내가 좀 거친 편이지만 사실 미모로 치면 갈대 못지않아. 나는 가지런하게 정돈된 아름다움이라고나 할까? 이 겨울에도 고고하게 늪을 바라보는 여유. 즐거운 고독이야. 가을에는 하루 종일 춤을 추느라 좀 피곤했거든. 무대에서 내려온 이 휴식을 맘껏 누리려고 해. 너희는 어때?
그들의 관점에서는 이보다 더 즐거울 수가 없었다. 앙상한 겨울 우포늪은 시야를 가리는 게 없어서 다 잘 보인다. 더 잘 들린다.
추울 때 우포늪에 간 것은 잘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