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일기) 좀 쉬면 어때서?

by 올제

바쁘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아니, 안 그러면 안 되는 시기였다고 해두는 게 덜 억울하지 싶다.


그래서인지 시간의 틈을 즐기지 못한다. 그냥 잠시 쉬어도 되는데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데 자꾸만 쉬지 않고 자꾸만 뭔가를 찾아다니는 자신을 발견한다. 이것은 진정한 여유가 아니다. 아직 여유가 무엇인지 알려면 한참 멀었다.


갑자기 생긴 평일 오전의 틈. 나는 그래서 그 틈을 비우면 죄책감마저 생길 판이다.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직접 내려서 먹는 자격을 획득하러 간다.


지난 시간에 시험을 친 피로감과 긴장감을 풀어주려는 듯 강사님께서는 오늘 특별 메뉴를 준비해 오셨다.


-여러분, 오늘은 사케라또를 만들어 볼 거예요. 혹시 사케라또가 무슨 뜻일까요?


-사케라는 일본 술에다 커피를 섞어서 만든 음료인가요?


-오, 노~. 사케라또는 이탈리아어로 “흔들다”는 뜻으로 더운 여름철 이탈리아의 대표 여름커피메뉴입니다. 에스프레소 2샷, 얼음, 그리고 시럽을 넣고 쉐이킷, 쉐이킷!!!


그래. 이렇게 쉬어가는 거지.


매일매일 심각하게 또는 진지하게 원두 입자의 크기, 물의 온도, 드립 시간에 신경을 곤두세워 물줄기의 굵기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손 떨림을 지속할 필요가 있을까?


오늘의 사케라또는 마구 흔들어 댈수록 거품이 분수처럼 솟구치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다.


사케라또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거품처럼 마음대로 흔들리는 삶이 뭐 어때서?


거품이 보글 보글이든 부글부글이든 끓어 올라 키 큰 음료 컵을 넘치든 거품이 생기다 말아서 사케라또라고 부르기 민망하게 쪼그라들어 네 맛도 내 맛도 아닌 음료가 되든 뭐 어때서?


나는 이 별것 아닌 장면에서 스스로에겐 별것이라 할 결심 하나를 사케라또 거품 위에 은근슬쩍 올려 둔다.


살면서 “뭐 어때서?”라는 대사를 사용해 본 적이 없는 배우가 아니었나 싶다.


사케라또처럼 수시로 흔들어 댈 온갖 상념들이 그대로 나만의 거품으로 불타오르게 내버려 둘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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