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쓰여지지 않는다. 지난 일주일 내내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시를 쓰겠다고 나선 나를 보며 ”그래서 뭐 하려고? “라며 스스로 묻고 있다.
일 포스티노를 보면서 은유를 생각하고, 패터슨을 보면서 끝없는 기록을 생각했다. 다시 돌아가 일 포스티노의 아름다운 배경과 베아트리체를 생각하고, 패터슨의 덩치 큰 버스를 생각했다.
네루다의 ‘시’를 생각하고, 나도 ‘시가 내게로 왔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시가 내게로 왔다기보다 자잘한 감상적인 글귀들만 내게로 온 것 같다.
간단하지만 깊이가 있거나 짧지만 울림이 있는 시, 아프다고 말하지 않고 아픔을 전해주는 시, 별말도 없이 어깨를 토닥여 주는 시를 써 보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스스로 아파하고 스스로 울고 있으며 스스로 위로받고 싶어 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게 뭐지? 안 되겠다. 영화를 한 편 더 보자. 이창동의 시를 본다. 아주 오래전에 본 기억이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새로운 이 기분은 뭘까 싶다.
이번에는 주인공보다 자꾸 조연들을 보게 된다.
딸아이를 잃은 엄마가 병원 앞마당에서 절규할 때 그 엄마의 고통과 슬픔을 건조하게 지켜보는 사람들의 낡은 어깨와 덤덤한 여름 반바지가 클로즈업되었다.
주인공이 간병하고 있는 회장님의 씁쓸하면서도 강렬한 눈빛이 삶이 뭔가를 생각하게 했다.
시를 배우겠다고 시 창작 교실에 다니는 미자 씨의 메모지보다 함께 시를 배우러 나오는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자기 사는 이야기가 더 크게 들렸다.
주인공 미자 씨의 아프고 힘든 현실보다 매일 같이 예쁘게 차려입은 꽃무늬 블라우스와 챙 모자가 더 신경이 쓰였다.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자꾸만 달라져 간다. 시가 내게로 왔으면 좋겠다.
그래도 조금은 마중을 나갈 수 있게 해 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