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일기) 청계사 가는 길에

by 올제

청계사 가는 길에 내관지라는 저수지가 있다. 고즈넉한 곳이다. 사람이 있지만 우연의 일치로 대개 고즈넉한 사람들이 그곳에 있다.


저수지를 따라 걷다 보면 중간 지점에서 잠시 멈추게 하는 것이 있다. 아니다. 그냥 지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나는 멈추고 싶어진다.


잔잔한 물이 흐르고 건너편에 초록의 나무들이 땅 위에서 물 위에서 함께 흐르고 나의 상념도 함께 흐르게 내버려 둘 수 있는 곳이다.


그곳에는 나무로 된 1인용 의자가 뜬금없이 놓여 있다. 그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으면 건너편 산으로 가는 시선을 저수지의 물이 거두고 저수지의 물결로 가는 시선을 작은 조각상이 거두어 버린다.


함께 상념에 젖게 만드는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나무로 된 난간의 꼭대기에 아슬아슬하게 몸을 걸치고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어설프게 구현한 아주 작은 조각상이 있다. (아래 사진을 보시라. 너~무 작아서 눈을 크게 뜨고 보셔야 함!)


몸 전체가 사람의 얼굴만 하여 소인국에서 온 전령 같다.


자칫 그냥 지나칠 수 있으나 생각이 많은 사람에게는 어마어마하게 큰 사람으로 보여 가히 걸음을 멈추게 하고도 남는다.


자, 이제 상대적으로 너무 큰 나무 의자에 기대앉아 그 작은 금속 인간의 포즈를 따라 해 본다..


생각을 하려고 앉았는데 오히려 생각이 사라지려고 한다. 여러 가지 파동이 복합적으로 일렁인다.


저 건너 산속 다람쥐가 나무를 타는 소리. 숲 속 오솔길에 낙엽 부스러지는 소리. 저수지에 윤슬이 햇살과 토닥이는 소리. 잔 돌멩이들이 바람의 소매를 붙잡는 소리. 바람이 내 마음을 간질이는 소리. 모두가 파동이 되어 꼬리에 꼬리를 물던 쓸데없는 잡념을 살금살금 방망이처럼 두드려 부수고 있다.


때마침 오른쪽 데크 바닥에는 뜬금없이 스투키가 심겨 있다. 저 혼자서 이토록 큰 공기덩어리를 정화해 줄 모양이다. 스투키 너도 참.


내관지에는 잡념을 사라지게 하는 크고 작은 존재들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굳이 누가 알아줄 필요가 있겠느냐며, 고즈넉한 미소를 짓고 있다.



*윤슬;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네이버 어학사전)



내관지 산책로 중앙에 있는 쉼터(의자 왼쪽 난간에 소형 조각상, 우측 바닥에 스투키, 한가운데 대형 의자)



#대구 청계사 #내관지 #산책 #로댕 #생각하는 사람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시분석) 슬픈 감자 200그램/박상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