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일기) 핸들을 잡으면

핸들을 잡으면 나의 차는 그의 길을 가고 나의 눈은 정면을 주시하되 항상 길가에 늘어 선 것들을 살펴보게 된다. 신호가 걸렸을 때 무료함(?)을 달래는 방법이기도 하고 나를 제외한 대상의 모습을 바라보는 심리가 작동했을 것이라고 본다.


이 대상에는 사람은 물론이고 가만히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죄 없는 사물까지 포함된다. 규칙적인 간격으로 휙휙 스쳐가는 길가의 가로수와 전봇대, 도로에 버려져 낙엽처럼 뒹구는 쓰레기, 형형색색의 간판 글씨체, 시시때때로 탈바꿈하는 구름의 모양새 등 거리에는 보이는 것들과 볼 것들이 산재해 있다.


사람들의 모습도 다양하다. 어딘가로 급하게 가야 하는지 동동거리며 계속 시계를 보는 사람, 화가 잔뜩 나서 얼굴이 태양처럼 벌건 젊은 엄마와 길바닥에 앉아 엉엉 우는 아이, 빈 유모차를 밀며 도로와 흡사 평행할 만큼 굽은 허리 위에 인생의 온 짐을 짊어지고 걸어가는 할머니, 길가 좌판에서 빗물에 젖은 천 원짜리를 손가락 벌벌 떨며 펴고 있는 다른 할머니, 그 옆에서 장사가 잘 안 되는지 찰진 욕을 퍼붓는 또 다른 할머니, 그들에게서 잠시 멈추어 제철 과일 한 봉지를 당당하게 사는 또 다른 할머니…….


어느 순간 내게는 자꾸만 할머니들이 보인다. 그들의 인생을 내 맘대로 상상하고 있는 탓일 게다. 빳빳한 새 돈 이만 원을 꺼내 선뜻 과일을 사 가는 할머니가 사실은 가장 가난할 지도 모르지만, 젖은 지폐를 겨우 겨우 펴면서 얼굴의 주름이 더 깊게 파인 할머니가 사실은 가장 부자일 지도 모르지만, 세상의 모든 할머니는 다 아픔으로 와닿는다.


나의 지극히 주관적인 감정 이입일 것이라는 생각을 부정할 수 없다. 운전에 집중해야 하는데 자꾸만 차가 밀려서 다행인 건지 불행인 건지 차가 꼬리에 꼬리를 물듯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복잡하게 살지 말자며 마지막 꼬리를 강제로 툭 잘라냈더니 드디어 도로가 뻥 뚫린다. 타이밍 한 번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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