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압하다 / 장옥관
그가 밟고 있는 게 축구공인 줄 알았다
가랑비 부슬부슬 내리는 아침나절 판잣집 즐비한 골목길
수상한 소리 속으로 제복이 누군갈 밟고 서 있었다 젖은 흙
바닥에 한 여자를 엎어놓고
구둣발이 얼굴을 밟아 제압하고 있었던 것
등뒤로 한쪽 팔 꺾어 움켜쥔 채
이마에 난 땀 닦고 있었다 으으으으, 뒤틀린 입술에서 끊
힘없이 신음이 새어 나오고 몸빼바지 가랑이가 축축하게 젖
어드는데 몸집 작고 마른 남자 하나가 쪽문 안으로 급히 사
라졌다 내 눈길을 감지한 제복의 동료가 뒤늦게 제지하는
척했다
뭔가 준동하는 게 있었지만 금세 냉정을 되찾았다
공무를 집행하는 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시민의식 때문이라고
다시 말하면, 흙탕에 뒹구는 여자의 뚱뚱한 육체가 혐오
스러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못 본 척 그 곁을 지나쳤다
그런데
그날 이후 아무리 똑바로 누워 자도 새벽잠 깨면 바닥에
뺨 대고 엎어져 있는 나를 발견했다 축구공 껴안듯 지구를
껴안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다만 구둣발 바닥을 핥고 싶었다
아무도 나를 제압하지 않았다 오로지 내가
나를 제압한 것이었다
시의 제목이 나를 ‘제압’했다. ‘위력이나 위엄으로 세력이나 기세 따위를 억눌러서 통제하다'는 의미를 지닌 이 동사가 시의 제목으로 쓰였다는 것 자체가 낯설었다. 시를 읽기 전부터 뭔가 막강한 힘이나 권력에 의해 짓눌려 버릴 것만 같아 스스로 낮은 자세로 첫 행을 읽기 시작했다.
‘그가 밟고 있는 게 축구공인 줄 알았다’는 묘사는 그야말로 편안한 자세로 함부로 여자의 얼굴을 밟고 있는 권력자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하는 느낌이다. 인간의 얼굴이 땅바닥에 닿은 채 다른 인간의 구둣발에 깔려 있는 상황이라니... 참혹하다. 너무 참혹해서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다. 목격자의 마음속에는 분노와 공포심이 일어났으며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는데 차마 아는 척을 하지 못한다.
이 말 못할 아이러니와 딜레마는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 봄 직한 에피소드라 할 수 있다. 저와 같이 끔찍한 상황이 아니라 하더라도 부정과 비윤리에 대해 감지하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하다가 혼자만의 시간에 양심의 가책을 느낀 적이 나도 적지 않았다.
나 하나 나서서 뭐가 바뀔 수 있나 하며 재빨리 ‘냉정(?)’을 찾고 ‘시민의식’을 장착하는 거다. ‘공무’라는 것이 모두 ‘시민’을 위해 집행되는 것이 아니라는 진실을 알게 된 때부터, 어쭙잖은 ‘시민의식’을 가지고 사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알게 된 때부터, 나는 이미 방관자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크고 작은 방관에 대한 자책이 사실은 가장 큰 ‘위압’이 되어 나 자신을 ‘제압’할 때만큼 괴로운 것은 없었다.
미네소타주 플로이드 사건이 불현듯 떠오른다. 경찰관이 무릎으로 플로이드의 목을 죄고 있었을 9분 29초간 ‘공무를 집행하는 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시민의식’ 때문에 ‘냉정을 찾은’ 사람들 가운데 내가 포함되지 않을 수 있는 자신이 없다. '못 본 척 그 곁을 지나쳤'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적 화자가 그랬듯 나 또한 ...
‘그날 이후 아무리 똑바로 누워 자도 새벽잠 깨면 바닥에 뺨 대고 엎어져 있는 나를 발견했다 축구공 껴안듯 지구를 껴안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다만 구둣발 바닥을 핥고 싶었다 아무도 나를 제압하지 않았다 오로지 내가 나를 제압한 것이었다’와 같은 ...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공권력은 결국 ‘자신을 바라보는 감시자로서의 자아’라는 것을 자주 느낀다. 하지만 이와 같은 느낌을 이 시와 같이 표현해 보겠다고 감히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 시의 제목과 이 시에 내재된 분노와 반성과 절규에 ‘제압’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