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청바지가 방안 가득이다. 쉽게 버리지 못하는 나의 ‘습’이 초래한 일이다. 하지만 쌓아놓고 보니 모두 푸른색이어서 괜히 좋다. 한창때인 것처럼 젊다. 행복한 착시를 가져다준다.
착시는 착각을 낳고 착각은 충격을 낳고 충격은 포기를 낳는다. 포기는 수용에 이르고 수용은 변화에 이르고 변화는 성장을 낳는다.
하나씩 입어보니 허리가 잠기지 않는 거다. 삶이 툭 잘려나간 것 같다. 어떤 옷은 허벅지에서 턱 걸렸다. 더 이상 올라가지 않으니 여기서 멈추라고 말한다. 내 몸이 숨 막히지 않으려면 여기서 포기하는 게 옳다.
허리가 크고 고무밴드가 일부 들어간 바지를 사기로 했다. 왠지 마음도 넉넉해진 것 같은 기분, 나쁘지 않았다. 내 몸과 마음이 숨 쉴 수 있는 청바지를 얼마 전에 주문했다. 배송이 21일 걸렸고 나는 21일만큼 푸름을 잃어 가고 있었다.
만남은 오랜 기다림의 보상 같은 것이다. 이럴 때 배송 완료 문자는 첫눈 같이 반갑다. 새로 산 청바지를 입고 출근을 하려던 참이었다.
허벅지? 스윽 한 방에 들어간다. 바지통? 넓고 편안하다. 드디어 허리를 잠글 차례다. 오른손으로 단추를 잡고 왼 손으로 단춧구멍을 찾아 넣기만 하면 된다. 출근시간이 임박했다. 바쁘다. 급하다.
그런데 아뿔싸! 단춧구멍이 없다. 아니다. 있는데 흔적만 있다. 박음질로 구멍까지 막혀 있다.
삶이란 이렇게 사소한 데서 삐걱거리는 거지. 잠시 또 잊었구나. 시간은 촉박한데 동동 거리면서 칼을 찾는다.
스윽. 슥삭 슥삭. 몇 차례 칼질 끝에 급기야 구멍이 뚫렸다. 허리를 채운다. 편안한 바지를 찾았으나 진정 편안해 지기까지 이 난리 법석을 거쳐야 하는구나. 어쨌든 나는 지각을 하지 않았다.